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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더글러스] 탐욕의 화신이 돌아왔다

마이클 더글러스

마이클 더글러스가 연기한 가장 강력하고 힘 있는 인물 중 하나가 <월 스트리트>(1987)의 주인공 고든 게코다. “탐욕은 좋은 것”이라는 매혹적인 말로 이 영화를 보았던 당대의 출세 지향적 젊은 관객을 무한정 자극했던 월 스트리트 금융가의 악덕 증권 브로커, 그러나 끝내 영화 속 자신은 파멸을 면치 못했던 인물. 더글러스는 이 인상 깊은 악역을 통해 생애 처음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손에 쥐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때였다.

20년쯤 지나 속편에 해당하는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2010)가 제작되었을 때 더글러스는 동일 인물로 다시 출연한다. 감옥에서 출소한 고든은 자신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밑천으로 강연하고 책을 팔며 산다. 강당에 학생들을 앉혀놓고 월 스트리트의 병폐에 관해 이것저것 짚어가던 고든은 연설의 마무리가 필요한 시점에 이르자 비장의 비유 하나를 꺼내든다. “그런 건 암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싸워서 이겨내야 할 질병 같은 것이지요. 그런데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요? 세 단어로 말할 수 있습니다. (연단 위에 놓인 자신의 책을 집어들며) 내, 책을, 사세요!”

이 능청스러우면서도 유머러스한 말솜씨가 돋보이는 장면을 찍을 때만 해도 더글러스 자신을 포함하여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 시기에 그가 구강암 말기이며 그의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때를 맞았다는 사실을. <월 스트리트: 머니 네버 슬립스>의 홍보 시즌이 다가왔을 즈음 더글러스는 병에 대해 알게 됐고 <데이비드 레터먼 쇼>에 나와 이를 공식 인정했으며 이내 치료에 집중하기 위해 활동을 접어야만 했다. 하지만 복귀는커녕 이미 말기에 이르렀다는 암을 이기는 것초차 쉬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1970년대 초에 데뷔했고 2000년대에는 <트래픽>이라는 걸출한 대표작도 있었지만, 사실 더글러스의 전성기는 <로맨싱 스톤>(1984), <위험한 정사>(1987), <월 스트리트>, <블랙 레인>(1989), <원초적 본능>(1992), <폴링 다운>(1993), <대통령의 연인>(1995)을 거치던 1980년대 초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였다. 매력적인 쾌남에서 비열한 악당 그리고 팜므파탈에게 협박받는 유약한 남자에 이르기까지, 그는 말 그대로 한 시대의 멋진 남자주인공 중 하나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그의 이름을 알린 가장 큰 사건은 연기가 아니라 그의 사생활, 캐서린 제타 존스와의 결혼이었고 시간은 정처없이 흘러갔으며 그러는 사이 2010년에 발견된 암은 배우로서 그의 연기 인생에 종지부를 찍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 “반드시 병을 치료하고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던 그가 약 2년 만에 완치를 선언하고 정말 돌아온 건 놀라운 일이다. 그것도 자신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독특하다고 기록될 만한 인물 리버라치로 말이다. 더글러스에게 리버라치 역을 제안했던 감독 스티븐 소더버그는 훗날 고백했다. “<쇼를 사랑한 남자>에서 마이클 더글러스는 정말 훌륭한 연기를 해냈다. 그런데 나도 내가 그때 왜 리버라치 역할로 더글러스에 꽂혀 있었는지는 설명을 잘 못 하겠다.” 더글러스와 리버라치,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조합이 직감적으로는 정답이었던 모양이다. 소더버그가 이 역할을 제안했을 때 더글러스가 했던 첫 반응이야말로 리버라치와 더글러스의 만남이 얼마나 흥미로운 것인지 역설적으로 알려준다. 제안을 들은 더글러스의 반응은 이거였다. “아니, 이 사람이 지금 나를 놀리려고 이러는 건가?”

“탐욕은 좋은 것”

리버라치가 누구여서 그랬던 걸까. 그는 1970, 80년대를 풍미한, “레이디 가가와 마돈나와 엘튼 존 이전에 존재했던 위대한 쇼맨”이었다. 피아니스트가 검은 정장을 입으면 피아노 색깔과 혼동되어서 눈에 띄지 않는다는 이유로 화려한 흰색 의상을 입기를 고집했고 치렁치렁한 금반지를 손가락에 끼고서도 기가 막힌 연주 기교를 선보였으며 여는 쇼마다 거의 언제나 전회 매진되는 쇼맨십의 제왕이자 국제적인 인기 스타였다. 한편으로 그는 시종일관 게이라 의심받으면서도 그를 두고 게이라는 기사를 낸 신문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승소하고는 평생 동안 운명의 여인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순수남으로 스스로를 포장하곤 했던, 게이였다.

더글러스도 그를 기억한다. “우연히 그를 두세번 본 적 있다. 아버지(고전기 할리우드영화의 대표 배우 커크 더글러스)가 팜스프링스의 리버라치 집 근처에 집을 갖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는 쇼맨십에 매우 유능했다. 그의 인기는 거의 텔레비전 쇼의 인기 덕분이었고 그 쇼를 통해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그를 알게 됐다. 그는 아마도 카메라를 보고 직접 이야기한 첫 번째 사람이었을 것이다. 관객을 자신의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그의 대단한 능력 중 하나였다. 그는 자신의 퍼포먼스 스타일과 자신의 공연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에 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쇼를 사랑한 남자>가 엔터테이너로서 리버라치가 얼마나 가치 있는 인물이었는지에 관하여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진 않다. 그보다는 리버라치의 알려지지 않은 사생활 혹은 리버라치의 가장 중요한 연인이었던 스콧 도슨(맷 데이먼)과의 들끓는 애증이 이 영화의 주된 관심사다. 젊고 순진했던 개 조련사 스콧은 우연히 리버라치와 만나고, 리버라치가 지닌 매력과 부에 빠져들어 그의 연인이자 집사이자 아들이 된다. 따라서 <쇼를 사랑한 남자>는 리버라치의 사랑과 욕망의 러브 스토리로 온통 가득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더글러스는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너는 단순히 따라 하는 사람이 아니다. 너는 완벽히 리버라치처럼 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보다는 균형을 유지해야만 하며 반드시 편안해야 할 것이며 맷 데이먼에게 정말로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더글러스는 자신의 그 다짐을 잘해낸 것 같다. 스콧을 유혹하고 사랑하는 그날들의 리버라치는 더없이 다정하고 뜨겁게 표현됐으며, 스콧에게 등돌리는 그날들의 리버라치는 더없이 차갑게 표현됐다.

언젠가 영화사가인 데이비드 톰슨은 더글러스가 맡아온 인물들에 관하여 “유약하고 부덕하며 탐욕스러운”이라는 묘사를 동원한 바 있는데, 대개 맞는 말들이다. 아니 거기에 배우 더글러스의 매력이 있었다. <쇼를 사랑한 남자>의 리버라치 역시 그 몇 가지 묘사에 충분히 걸맞을 만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것 한 가지를 꼽자면 탐욕스러움이다. 더글러스가 리버라치 역할을 맡기로 한 것은 암 덩어리가 발견되기 이미 수년 전에 계획된 일이었으니 그가 암에 걸리지 않았다면 <쇼를 사랑한 남자>는 더 빨리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암 투병 이전과 이후의 영화는 과연 같았을까. 리버라치의 육체의 쇠약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꺼지지 않는 성애적 탐욕이라는 대조가 지금보다 더 잘 그려질 수 있었을까.

그런 점에서 더글러스가 <쇼를 사랑한 남자>에서 취한 자세는 전에 없는 과감함이다. 그는 고도의 양식화된 연기 퍼포먼스를 시도했고 또 성공했다. 과감하게 꾸민 것이다. 하지만 그 꾸밈보다 더 중요한 시도는 과감하게도 숨기지 않은 것이다. 더글러스는 자신의 병마, 그걸 이겨내기 위한 독한 치료가 남긴 육체의 쇠약함을 숨기지 않고 여기저기 드러낸다. 그 때문에 노년에 접어든 리버라치의 성애의 탐욕은 오히려 더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전달된다. 리버라치라는 인물로 돌아온 더글러스의 영화적 복귀의 행로도 그때 칭송할 만한 것이 된다. 더글러스는 이미 2013년 에미상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고 어쩌면 상복은 이제부터 시작일지도 모르며 인간 역정의 드라마를 높이 사는 오스카에까지 그 흐름이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상을 주고 안 주고는 심사하는 사람들의 소관이리라. 다만 더글러스의 연기 인생과 이 화려한 복귀에 대해서만 말하자면, 역시나 그에게 “탐욕은 좋은 것”이다.

magic hour

그 무언가가 무엇인 순간

마침내 스콧 도슨이 리버라치의 집에 눌러살게 되자 스콧을 시샘하는 이 집의 집사는 너도 그의 수많은 애인 중 하나이며 곧 버림받을 것이라고 모욕을 준다. 스콧이 리버라치를 찾아가 집사의 행동에 대해 불평을 하려던 찰나, 그는 리버라치가 숨겨온 깜짝 놀랄 만한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천연덕스러운 리버라치는 “나는 자기 속상해하는 얼굴 보기 싫은데. 자기가 슬픈 얼굴을 하면 나까지 슬퍼진단 말이야. 자기가 몇달간 날 행복하게 해줬는데 난 자길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한 거잖아. 나한테는 자기 행복이 전부야 스콧”이라며 이제부터 자신의 중요한 ‘그 무언가’를 관리해주는 사람으로 곁에 남아달라고 부탁한다. 그 우스꽝스럽고도 기괴한 순간이 <쇼를 사랑한 남자>의 매직 아워다. 하지만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에 대해 우린 아직 말할 수 없다. 그 순간의 난처함을 즐기는 건 당신의 권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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