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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찌하여 광화문에 모여 영화를 보게 되었나
이후경(영화평론가) 사진 백종헌 2013-10-03

씨네큐브의 살림꾼 티캐스트에 관한 은밀한 보고서

9월6일 금요일 오후 2시경. 대부분 예술영화관에서는 “죽음의 시간대”로 불리는 평일 오후지만, 씨네큐브 광화문의 풍경은 팔팔하다. 1관 <마지막 4중주>와 2관 <나에게서 온 편지>의 상영을 앞두고 나이가 지긋한 관객이 상영관 앞 벤치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는 풍경까지 벌어진다. 용인에서 온 60대 A씨 부부는 근처에 친구 문병을 왔다가 친구들과 함께 씨네큐브에 들렀다. “얼른 집에 가서 개밥도 줘야 하고 그러니까 친구들끼리 문화생활로는 영화가 제일 편리하지. <아무르> 때 여기 처음 와본 이후로 자주 오는데, 오늘은, 남자들은 <마지막 4중주> 보고, 여자들은 <폭스파이어> 보려고 그래요.” 그런가 하면 여의도에서 온 50대 주부 B씨는 자칭 씨네큐브 “단골”이다. “얼마 전에 <마지막 4중주>를 봤는데 친구가 <나에게서 온 편지>가 더 좋다고 해서 진짜인가 친구랑 같이 확인하러 왔어요.” <마지막 4중주>의 1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씨네큐브의 시계는 오늘도 분주히 돌아가고 있었다.

“‘노인(중년)을 위한 극장은 있다’고나 할까?” 조성규 영화사 조제 대표의 농담은 실상 씨네큐브를 포함한 요즘 예술영화관 풍경을 적절히 요약하고 있다. 스폰지하우스 광화문, 씨네코드 선재, 아트나인, 아트하우스 모모, KT&G 상상마당 등 다른 예술영화관 운영자들도 “주관객층 연령대가 예전보다 상당히 높아졌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이와 같은 현상에 대해 “1990년대 시네필 문화를 이끌고 2000년대 일본영화 붐을 이끌었던 세대가 같이 늙어가고 있는 것”(조성규 대표)이라는 통시적 분석도, “지금은 20~30대는 예술영화의 ‘정보’를 소비하고 실제로 영화관에 가서 티켓을 끊는 이들은 40~50대인 시대”(진명현 KT&G 상상마당 영화사업팀장)라는 공시적 분석도 가능할 것이다. 어느 축으로 재든 현재 예술영화시장의 표본 극장이 씨네큐브인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씨네큐브에서 잘되는 영화는 CGV 무비꼴라쥬를 비롯한 다른 예술영화관에서도 잘되더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곳에서 어느 말년의 음악가와 그의 친구들의 삶을 소재로 한 잔잔한 드라마 <마지막 4중주>가 2009년 이후 소규모로 개봉한 예술영화로는 처음으로 10만 관객을 넘보고 있다.

“1만 넘기면 다행”이라 여기는 예술영화 수입배급업자들 사이에서는 한동안 ‘넘사벽’이었던 숫자 10만. 그 숫자가 넘어볼 만한 벽이 된 것은 티캐스트의 독자적인 시스템 덕분이다. 2009년 9월 씨네큐브 운영에 직접 뛰어든 지 올해로 만 4년 된 티캐스트는 그동안 씨네큐브의 살림살이를 수입부터 배급, 마케팅, 프로그래밍까지 모두 직접 책임져왔다. 그 시간을 거치며 씨네큐브에 최적화된 그들의 예술영화 공정 시스템을 갖추었고, 결과적으로도 태광그룹 자본을 이용한 물량공세 없이 매해 스스로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렇듯 중/장년층 예술영화 관객을 움직이는 티캐스트만의 비밀은 무엇인지, <씨네21>이 신문로1가에 위치한 티캐스트를 직접 찾아가 알아봤다. 다음은 그렇게 작성된 티캐스트에 관한 짧은 비밀 보고서다.

수입-꼭 맞는 ‘교양주의’ 영화를 찾아서

티캐스트 사전에 선구매 후수습은 없다. 박지예 극장영화사업팀장, 송유진 콘텐츠사업팀 과장은 철저히 씨네큐브 고정 관객의 성향을 고려해 1년에 4~5편 정도만 선택한다. 그중 그들이 우선적으로 찜하는 작품군은 “칸영화제 수상작 혹은 초청작”이다. “주목하고 소개할 만한 동시대 젊은 작가들 혹은 거장의 반열에 올라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선호한다. 그러다보면 살 때는 작품만 보고 샀는데 운 좋게도 나중에 상까지 받아오는 영화들이 있다. 시나리오만 있는 상태에서 산 <아무르>는 해외 세일즈사도 미하엘 하네케 감독이 올해도 황금종려상을 받긴 어렵지 않겠냐며 범퍼(수상 시 추가되는 조건부 개런티-편집자)를 걸지 않았는데, 운이 좋았다.”

물론 유럽 작가주의 영화가 만능 씨네큐브 영화는 아니다. “톰 티크베어의 <쓰리>는 스리섬이 나오긴 해도 전통적 로맨스와 다른 방식으로 남녀관계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줄 거라 기대했는데 역시나 잘 안됐다. <토리노의 말> <엉클 분미> 같은 하드코어 예술영화도 씨네큐브에서는 쉽지 않다.” 일정 수준 이상의 작가영화 중에서도 “삶, 죽음, 가족, 사랑 등의 주제를 대중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영화”여야 한다. 그런 작품이 많지는 않을 터. 그래서 이번 칸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손에 넣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도 2년 전부터 물밑 작업을 시작했다. “2011년 말 감독이 내한했을 때 신작 소식을 듣고 끈질기게 들이댔다. 나중에 17개 회사가 달려들어 프로듀서 면접까지 가긴 했지만, 우리한테는 가격 올려달란 말은 안 하고 이 영화에 맞는 마케팅 플랜을 보여주길 바라더라.” 이렇듯 집중해서 소수의 작품만 선택하다보니, 한 관계자는 “이 영화는 티캐스트가 사가겠구나, 보이는 일련의 교양주의 영화들이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부산 아시아필름마켓(AFM)에서 건진 <마지막 4중주>는 그 범주에 특히 잘 들어맞았던 영화였다. “교양이라는 표현, 우리도 좋아한다”며 박지예 팀장도 흔쾌히 동의했다.

배급-여름영화 겨울영화 따로 없다

수입 전략이 곧 배급 전략이다. “직원 4명이서 모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1년에 4~5편, 1번에 1편 개봉이 한계다. 그래서 5월 가족의 달에 가족영화 1편, 7월 말 여름방학에 장르영화 1편, 추석 직후에 로맨스영화 1편, 연말연시 혹은 겨울방학에 따뜻한 드라마 1~2편으로 정해놓고 처음부터 거기에 맞춰 영화를 산다. 칸에서 가을영화 겨울영화 한편씩, AFM 가서 봄영화 여름영화 한편씩, 하는 식으로.” 2013년 여름방학 전까지 씨네큐브 라인업은 송유진 과장의 설명대로다. 특히 지난해에는 그 “평범한 공식에 따라” 의외의 흥행도 일궈냈다(7월 <케빈에 대하여>, 9월 <우리도 사랑일까>, 12월 <아무르>). 하지만 올여름 그들은 공식을 깼다. “살 때는 가을이나 겨울영화로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마지막 4중주>”를 최고 성수기인 7월 말에 배치한 것이다. “우리에게도 이례적인 선택이었다. 여름 성수기에 딱 맞는 영화도 아니고, 무명 감독에 배우들도 아는 사람만 알고, 국내 클래식 애호층이 있긴 하나 두텁지는 않으니까. 그럼에도 음악영화나 가족영화처럼 보일 수도 있는 15세 관람가 영화라면, 오히려 방학 때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러올 수도 있겠더라. 그게 틈새시장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마지막 4중주> 한국 개봉 포스터, <마지막 4중주> 오리지널 포스터(왼쪽부터).

마케팅-보이지 않는 관객까지 유혹하라

많은 관계자들이 티캐스트의 흥행 비결로 ‘극장의 힘’을 꼽는다. 10년 넘게 쌓아온 고정 관객층이 확고하다보니 “씨네큐브에만 들어가면 못해도 1만”이라는 이야기도 나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극장의 힘만으로 ‘10만’이 가능할 리 만무하다. “<코스모폴리스> <홀리모터스>처럼 전통적인 시네필을 상대로 한 영화들은 예전처럼 3만~4만명은커녕 1만명 선에서 끝난다. 소위 예술영화 ‘코어’ 관객이 딱 그만큼인 거다. 반면 ‘약간 특별한 영화를 보러’ 예술영화관을 찾는 중간층 관객은 두터워졌다. <마지막 4중주>의 흥행은 그 중간층의 수요에 민첩하고 정확하게 대응한 마케팅 덕분인 것 같다”는 한 관계자의 지적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그 ‘범’ 예술영화 관객층을 상대로 한 티캐스트만의 유혹의 기술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기본기만 한 게 없다. 제목-포스터-예고편을 ‘쉽고, 정확하고, 명쾌하게’ 뽑을 것. <You Will Meet a Tall Dark Stranger>라는 제목들을 그대로 한글로 옮기면 ‘유 윌 미트 어 톨 다크 스트레인저’처럼 그냥 외국어처럼 들리는 영화제목이 나온다. 이래서는 영화의 여운도 안드로메다행이다. 그래서 바꾼 제목이 <환상의 그대>. <Incendies>도 <그을린 사랑>으로, <Take This Waltz>도 <우리는 사랑일까>로, <A Late Quartet>도 <마지막 4중주>로 바꿨다.

“원제에 비해 심심하다는 불만도 있다. 하지만 그런 제목을 통해 예술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에게도 영화를 좀더 쉽고 정확하게 소개할 수 있다. 그래서 마케팅 회의 때마다 다같이 평범해도 오래 음미할 수 있는 표현을 고민한다”고 고아라 극장영화사업팀 마케팅 담당자는 밝힌다. “<우리도 사랑일까>는 춤에 관한 영화로 오해받을 가능성이 있어서 알랭 드 보통풍의 로맨틱한 제목으로, <마지막 4중주>도 ‘말년의’라는 직역보다 ‘마지막’이 영화의 내용이나 정서와 더 잘 맞아 바꿨다.” “티캐스트 영화들은 늘 제목에서부터 감정으로 전달되는 무언가가 있다”는 주희 엣나인필름 이사의 평가도 과언은 아닌 듯하다.

포스터도 영화를 담는 하나의 그릇이 돼야 한다. “<우리도 사랑일까>는 오리지널 포스터도 예쁘지만 평범한 로맨틱코미디로만 비칠 염려가 있어 사랑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는 느낌으로 바꿨다. <마지막 4중주>의 경우에는 배경색이 원래 검정이었는데 자칫 실제 공연 포스터처럼 보여서 따뜻한 느낌이 들면서도 영화의 정서가 배어나는 베이지톤으로 바꿨다.”

이벤트 전술을 짤 때도 보이지 않는 관객을 고민한다. <앤젤스 셰어: 천사를 위한 위스키>는 위스키 바 동호회를 대상으로, <마지막 4중주>는 클래식 마니아들을 상대로 사전 시사를 갖고 입소문을 유도했다. 특히 <마지막 4중주>는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같은 공연문화시설의 협조를 구해 공연장 중심으로 일찍부터 홍보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이렇게 유입된 관객 중 대다수의 중년 관객이 얼마 뒤면 씨네큐브의 ‘단골’이 돼 있다.

프로그래밍-평일 점심 전후를 공략하라

아무리 좋은 영화를 수입하고 개봉 시기를 잘 잡고 제목과 포스터를 잘 뽑고 입소문을 열심히 퍼뜨려도, 결국 관객은 보고 싶은 시간에 보고 싶은 영화가 있어야 티켓을 산다. 그런 점에서 관객을 극장으로 유인하기 위한 마무리 피치는 프로그래밍이다. 특히 1주 동안 2개관에서 3~5편을 번갈아 걸어야 하는 씨네큐브에서 프로그래밍은 더욱 까다로운 문제. 최경미 극장영화사업팀 과장은 “씨네큐브 관객의 특성에 맞춰 오전 10시 반부터 밤 10시 반까지 알차게 6회차만!”이라고 티캐스트의 전략을 요약한다.

그중 티캐스트만의 러시아워는 점심시간 전후, 1회차와 3회차. “그때 오시는 분들이 대부분 40대 이상에 영화 보고 점심 먹고, 점심 먹고 영화 보고, 하는 패턴을 갖고 있다. 그래서 1, 3회차에 그분들이 좋아할 만한 영화를 배치한다. 예를 들어 지금은 <마지막 4중주>나 <나에게서 온 편지>를 건다. 반면 <코스모폴리스>나 <홀리모터스> 같은 영화는 좀더 젊은 관객 비율이 높은 저녁 시간대에 배치한다.” “북촌 못지않게 공연예술문화를 즐기는 40대 이상 여성들이 미술관, 레스토랑, 카페로 자리를 옮겨가며 여유를 즐기는 문화가 형성돼 있는 광화문 일대의 지리적 이점을 십분 활용하는 전략이다.”(진명현 팀장)

이 간단한 프로그래밍만으로도, 놀라운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2012년 전체 좌석점유율을 상영회차별로 보면 3회차와 6회차 모두 50% 내외로 별 차이가 없다. “조조 상영 때마다 100명 이상 들었다”는 <마지막 4중주>의 평일 좌석점유율도 평균 30% 이상이다. 주말 전체 평균과 20%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럼 평일 중 가장 바쁜 회차는? 바로 3회차다. 평일 3회차가 평일 전체 평균보다도 10% 이상, 심지어 주말 6회차보다도 높은 점유율을 자랑한다.

티캐스트 4인방

“균형이 중요하다” 박지예 극장영화사업팀장

극장영화사업의 총지휘를 맡고 있다. 동숭씨네마텍 출신의 영화 수입 업무 13년차. “대기업 자본으로 시장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라인업도 중/장년층 관객에게만 치우지지 않도록 영화사적으로 중요한 작품들까지 균형 있게 소개하려 노력한다.”

“극장도 생물체 같아서” 최경미 극장영화사업팀 과장

프로그래밍과 극장 업무를 맡고 있다. 백두대간 시절부터 씨네큐브를 보살펴왔다. “극장도 생물체와 비슷하다. 애정을 갖고 보살피면 시들어가던 애도 되살아나고, 내가 힘들어하면 얘도 비실거린다. 요즘엔 무럭무럭 자라주어 기특한 마음.”

“나란 여자 승부욕 있는 여자” 송유진 콘텐츠사업팀 과장

수입, 배급 실무를 보고 있다. 스폰지하우스 출신의 영화 수입 업무 11년차. “찜한 작품이 있으면 새벽 3시에도 안 자고 전화를 기다릴 만큼 승부욕이 있는 편이다. 하지만 작품성만으로 밀어붙인 작품이 잘되면 피곤도 가시는 게 이 일이다.”

“<환상의 그대>는 아쉬워” 고아라 극장영화사업팀

마케팅 실무를 맡고 있다. 영화사 숲에서 시작한 6년차 마케터. “난해하게 느꼈던 영화가 예상보다 잘될 때마다 자주 반성하고 있다. (웃음) 가장 아쉬운 작품은 <환상의 그대>. 메시지를 보기보다 발랄한 로맨틱코미디로만 풀었던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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