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영화를 만들 수 있고,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취지로 2009년에 시작된 초단편영화제가 올해 5회째를 맞는다. 초단편이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모집된 작품의 러닝타임은 ‘국제경쟁 5분 이하, 기획경쟁 10분 이하’로 전체 10분이 넘지 않는 짧은 작품들이다. 분량은 짧지만 모두 상영시간 이상의 기량을 발휘한다.
초청된 작품 수는 총 106편으로, SESIFF 국제경쟁부문 58편, 모바일 국제경쟁 15편, 10분 영화 국제경쟁 33편 등으로 구성된다. 영화들 대개는 예상만큼 경쾌하고 재기발랄하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사회에 대한 문제제기, 삶에 대한 탐구로 가득 차 있는 것도 특징이다.
드라마 경쟁부문에서 우선 눈에 들어오는 작품은 필리핀의 에스피아 감독이 만든 <바퀴>다. 누군가가 사랑을 고백하려고 마련한 ‘반지’를 매개로, 이를 훔치려는 사람과 우연히 줍는 사람간의 얼터너티브한 의미들이 생성된다. 한정된 장소에서 누군가가 죽으면 또 어떤 이는 살아난다. 누군가가 기회를 박탈당하면 다른 사람이 기회를 얻기도 한다. 얇은 심도의 DSLR 카메라가 만들어낸 유려한 화면들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이다.
크로아티아의 카닉 감독이 만든 <사자찾기 놀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를 생각나게 하는 이 영화는, 발칸전쟁 당시 지뢰를 밟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 아빠가 벌이는 ‘사자잡기 놀이’의 일화를 담는다. 한정된 장소를 배경으로 거대한 시대적 요소를 품어내는 감독의 기량에 놀라게 된다. 한편 한국의 현조 감독이 연출한 <마포에서 서강까지>는 5분간의 긴 플랑세캉스로 촬영된 디지털 영상물이다. 마포대교에서 서강대교까지 이르는 짧은 시간 동안, 자전거를 탄 두명의 남녀는 세밀한 감정을 주고받는다. 5분짜리 영화가 담을 수 있는 형식적, 이야기적 특성을 모두 포괄한 것이 영화의 장점이다.
국제경쟁의 다큐멘터리 부문에 초청된 작품들의 면모 또한 화려하다. 주제 면에서도 깊이 있지만, 표현의 간결성도 돋보이는 수작들이 포진해 있다. 스웨덴의 유스케 감독이 연출한 <구름이 몰려올 때>는 채 2분이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인간의 검은 욕망과 사회의 그릇된 구조에 대한 생각을 끌어내는 애니메이션이다. 반복되는 구절 “네가 내 얼굴을 본다면, 악마를 보게 될 것이다”로 시작되는 영화 <데블> 역시 비슷한 주제를 다룬다. 인종차별이나 종교적 차별에 끌려다니는 우둔한 우리의 행태를, 영화는 악마에 빗대 표현한다. 포스트 펑크음악을 배경으로, 약 7분 동안 파운드 푸티지 필름이 리드미컬하게 연결되는 이 영화의 장면들은 단연 압도적이다.
한편 코미디 국제경쟁에 초청된 단편 <할머니의 밀입국>은 살아생전 독일 땅을 밟아보길 소망했던 할머니의 유골이, 죽어서 유럽 땅에 도착하지만 그마저도 저지당하는 행정의 아이러니를 다룬다. 이 블랙코미디를 통해 터키의 갈립 감독은, 가족을 넘어 국경의 문제까지 다양한 인간군상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리고 <낮과 밤, 그리고 끝까지>처럼 짧지만 강력한 사랑의 정서를 전달하는 감성적인 작품과, <진짜 재밌는 이야기>류의 웰메이드 드라마, <좀비의 노스텔지아> 같은 현대적 장르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이 다채롭게 모인 것도 이번 영화제의 특징이다. 특별 초청된 작품들의 목록도 흥미롭다. 그중 그림자극을 소재로 도시를 홍보하는 영상 <캘커타가 당신을 놀라게 합니다>나 <언니들의 와일드 쇼>처럼 인신매매가 횡행하는 현실의 오류를 폭로하는 기획영상이 주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이 밖에 ‘포르투갈 데이’ 등 다양한 부대행사가 함께 마련된 이번 영화제는 강남구와 동작구 일대에서 9월 26일부터 30일까지 닷새 동안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