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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생과 예술이 그 자신만의 것은 아니다 <러시안 소설>
장영엽 2013-09-11

“오빠는 러시안 소설 같아요.” 선배 작가의 딸 가림이가 한 말이 성환(경성환)의 마음속에 내내 남는다. 도대체 ‘러시안 소설 같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좋은 배우> <페어러브>의 뒤를 잇는 신연식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 <러시안 소설>은 영화 속 소녀가 던진 대사 같은 영화다. 느리고, 게으르고, 복잡한. 혹은 길고 등장인물이 많은. ‘러시안 소설’을 수식하는 다양한 말들이 영화 속을 오가지만 그 무엇도 가림이 성환에게 한 말의 의미와 완전히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손에 잡힐 것 같으나 이내 손가락 사이로 새어나가버리고 마는 말과 생각들, 그리고 의도치 않게 삶 속으로 침투해 들어오는 누군가의 관념들. <러시안 소설>은 소설이라는 장르를 둘러싼 예술가들의 삶을 조명하며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인생과 언어, 생각들이 흘러들고 섞여 거대한 원류를 이루는, 강물 같은 예술의 본질에 대해 탐구하는 영화다.

영화는 소설가 지망생 신효(강신효)의 젊은 시절을 조명한 전반부와 그가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27년 만에 깨어나 갑자기 유명세를 얻게 되는 후반부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전반부의 신효는 실력은 없으면서도 언젠가는 위대한 소설가 김기진 선생에게 인정받겠다는 투지로 가득한 인물이다. 그는 김기진 작가가 지은 젊은 작가들의 공간 우연제에 머물며 다른 작가들과 어울리게 되고, 그러한 도중에 네편의 소설을 쓰게 된다. 그를 사랑하는 재혜를 제외하고 아무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신효의 재능은 그가 어떤 사고로 인해 27년 만에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뒤 비로소 빛을 발하게 된다. 젊은 시절의 신효가 쓴 <러시안 소설>은 어느새 위대한 작품이 되어 있는데, 중년의 신효는 곧 소설의 결말이 자신이 쓴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는 김기진 선생의 아들 성환, 한때 연인 사이였던 재능있는 소설가 경미, 자신을 사랑했던 여인 재혜 중 누가 <러시안 소설>을 고쳐 썼는지 추적하기 시작한다.

등장인물도 많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녹아들어 있는 이 작품을 몇 마디로 정의하기란 어렵다. 하지만 영화 속 대사처럼 한 사람의 인생과 예술이 그 자신만의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러시안 소설>이 전달하고자 하는 건 분명하다. 어디까지가 신효의 소설이며 어디서부터 그를 둘러싼 사람과 삶의 단면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는 이 작품은 유려하게 과거와 현재, 인생과 소설 사이를 넘나들며 삶과 예술을 구획짓는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추상적이고 복합적인 주제를 어렵지 않은 방식으로 섬세하게 풀어내는 신연식 감독의 연출력에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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