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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퉁불퉁 전속력 질주! 이 게임에 초대합니다

미이케 다카시의 <악의 교전> <짚의 방패>를 즐기는 법

<짚의 방패> 촬영현장의 미이케 다카시 감독.

미이케 다카시라는 이름을 듣고 ‘피칠갑 사지절단’의 경이로운 장면들이 즉각적으로 떠올랐다면 여기에 당신이 반가워할 소식이 있다. 미이케 다카시의 신작 두편, <악의 교전>과 <짚의 방패>가 같은 날, 동시에 개봉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1995년에 데뷔한 이후 현재까지 70여편이 넘는 온갖 장르, 온갖 원작을 기반으로 한 영화를 만들어온 그에게서 전체 필모그래피를 관통하는 어떤 일관성을 찾아내려는 건 어쩌면 억지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 두편의 영화는 불과 1년도 안 되는 시간차를 두고 만들어졌음에도 서로 다른 감독의 영화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 굳이 나누어 보자면 두편의 영화 중 <악의 교전>은 이전까지 미이케 다카시가 보여준 영화들의 연장선상에서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영화라고 한다면,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던 <짚의 방패>는 많은 이들의 지적처럼 전혀 ‘미이케’스럽지 않은 영화처럼 보인다.

<악의 교전>

<짚의 방패>에 대한 비판

기시 유스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악의 교전>은 원작소설의 방대한 인물들과 설정, 에피소드를 적절히 추려 영화화 한 작품이다. 그리고 실제로 원작 중 큰 줄기를 제외한 곁가지 이야기들은 ‘악의 교전-서장’이라는 이름의 4부작 스핀오프 드라마로, 미이케 다카시가 아닌 다른 연출자에 의해 제작되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영어교사 하스미(이토 히데아키)는 사이코패스 킬러인 자신의 본성을 숨기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지낸다. 하지만 하스미의 행적에 의심을 품은 동료 교사의 추적으로 정체가 발각날 위기에 처하자 그는 학교 동료들과 자신의 반 아이들을 모두 죽여나가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이상한 점은 하스미의 병적 살인 행각과 그가 근무하는 고등학교 내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이 너무 느슨하게 묶여 있다는 점이다. 물론 ‘사이코패스’라는 안전한 장치는 사건의 인과관계나 논리적인 설명 없이도 이야기를 어느 정도 흘러가게 해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육교사에게 폭행 당하는 여학생이나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아이들 혹은 이지메를 당하는 여학생, 그리고 남학생과 동성애적 관계를 맺는 미술교사 등 여러 등장인물들만큼 정신없이 흩어져 있는 이야기를 하스미 혼자 다 ‘해결’하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영화는 이렇게 여러 문제들을 잘 설명하지 않은 채 혹은 크게 설명할 생각이 없다는 듯 전체 상영시간의 4분의 3까지 그냥 흘 러간다. 그러다 하스미가 ‘드디어’ 샷건을 들고 아이들을 사냥하러 다니기 시작할 때, 문득 미이케 다카시가 이 마지막 30분을 찍기 위해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는 40여명의 아이들이 총에 맞아 살점이 튀고 머리통이 깨져나가며 피가 흘러나오고 몸이 부서져버리는 것을 꼼꼼하게 지켜본다. 말하자면 그는 치밀하게 짜여진 원작 소설의 이야기를 그대로 영화로 옮겨올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다. 이때 소설 속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할 것인가라는 문제 앞에서 미이케 다카시는 경제적인 방식으로 마지막 학살 장면에 도달하기까지 필요한 최소한의 관계만 거슬러 올라가면서 추려낸다. 그리고 하스미가 살인을 저지르거나 또는 살인의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등장하는 <맥 더 나이프>라는 노래로 전체의 이야기를 묶어낸다. 마치 관객에게 최면을 걸 듯 반복해서 들려오는 살인의 노래(<모리타트>)는 영화를 어느덧 무사히 학살 장면까지 이끄는 데 성공한다.

<악의 교전>

하지만 <짚의 방패>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칸영화제에서 영화가 처음 공개된 뒤 언론에서는 이 영화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고,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고 싶어 하는 영화”라거나 “전형적인 인물 설정이나 이야기 전개 방식이 1940년대 미국에서 만들어졌을 법한 진부한 영화”라는 혹평이 이어졌다. 일부에서는 클레어 드니의 신작 <바스터즈>가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고, 아리 폴만의 <더 콩그레스>가 감독주간에 초청되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국에서 이미 한달 전에 공개됐던 <짚의 방패>가 경쟁부문에 초청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 우리가 미이케 다카시에게 ‘만듦새 좋은 예술영화’를 기대했었던 것일까? 오히려 일종의 ‘현상’에 가까운 이러한 반응은 결국 관객이 미이케 다카시 영화에서 무엇을 기대하는지를 극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는 측면에서 흥미로워 보인다.

<짚의 방패>는 기우치 가즈히로의 동명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일본 재계의 한 거물이 자신의 손녀딸을 잔인하게 죽인 연쇄살인범 기요마루(후지와라 다쓰야)에게 100억원의 현상금을 건다. 이에 경찰은 물론이고 전 국민이 기요마루를 죽이기 위해 달려든다. 목숨에 위협을 느낀 기요마루는 경찰에 자수하고, 이제 특수요원 메카리(오사와 다카오)와 시라이와(마쓰시마 나나코)는 그를 1200km 떨어진 도쿄 경시청으로 산 채로 이송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많은 이들의 지적처럼 이야기 구조는 정말 모든 것들이 다 들어가 있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감이다. 그리고 이 지점이 아마도 <짚의 방패>를 미이케 다카시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가장 이질적인 작품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이 이야기에서 미이케 다카시를 매혹시켰던 것은 기요마루를 이송하는 과정의 스펙터클이 아니라 사이코패스 살인마 기요마루를 중심에 두고 주변 모든 사람들이 잠재적 킬러가 된다는 역설적인 설정 그 자체였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여기에는 기요마루에게 딸이 살해된 할아버지의 복수도 있고, 100억원이라는 돈이 절실한 사람도 있으며,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싶어 하는 경찰도 있다. 각자의 이유가 어찌되었든 이들의 목표는 ‘살인’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앞서 지적한 것처럼 <악의 교전>이 잘생기고 유능한 교사가 아무런 이유없이 학생들에게 총질을 해대는 마지막 장면을 향해 말 그대로 울퉁불퉁 달려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짚의 방패>

<짚의 방패>

그가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어 하는 이야기는…

그러므로 미이케 다카시 영화를 만날 때 우리가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이 작품이 얼마나 ‘미이케 다카시 스타일’을 담고 있는가라거나 이번에는 어떤 장르에 도전했는가 혹은 장르의 완성도가 얼마나 높은가가 아니라 여기에서 미이케 다카시는 과연 무엇에 매혹되었는가일 것이다. 이때 매혹의 대상은 하나의 이미지(<악의 교전> <이치 더 킬러>)이거나 사운드(<오디션> <착신아리>)일 수도 있고 <짚의 방패>처럼 이야기의 설정 자체일 수도 있으며 혹은 다루고 있는 시대(<할복: 사무라이의 죽음> <이조> <13인의 자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매혹이 미이케 다카시를 끊임없이 새로운 장르, 새로운 이야기, 새로운 이미지로의 모험을 이어가게 한다. 따라서 미이케 다카시의 필모그래피에서 한편 한편의 완성도의 성패를 따져보는 대신에 그의 ‘매혹의 행로’를 천천히 따라가본다면 미이케 다카시를 탐구하는 새로운 지형도를 그려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매력적인 설정을 위해서 미이케 다카시는 기꺼이 영화의 많은 (때로는 너무 많은) 부분을 내놓는다는 점이다. 때문에 그의 영화들은 종종 믿기 힘들 정도로 완성도에 대한 기복이 심하며,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마치 만화나 게임 속 캐릭터처럼 계속되는 사건에서도 거의 변하지 않는 경직된 모습을 보인다. 악역으로 설정된 인물들은 철저하게 자신이 맡은 역할을 ‘클리어’하며, 주인공들은 자신의 미션을 흔들림 없이 수행해낸다. 한 인터뷰에서 미이케 다카시는 자신에게 영화를 만드는 것은 마치 자신이 만들어놓은 세계에서 ‘인형놀이’를 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고 언급했는데, 다소 섬뜩하게 들리는 이 말이 <짚의 방패>의 많은 부분을 설명해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때로 미이케 다카시의 영화들이 만화같이 느껴지거나(물론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들도 있지만) 현실성이 부족한 듯 보이는 것은 그가 어떻게 하면 이 인형들을 살아 움직이게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대신 인형에게 어떤 색깔의 옷을 입힐지에 더 관심을 두었기 때문은 아닐까? 어쩌면 관객이 <짚의 방패>에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것은 바로 이 어긋남 혹은 오해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미이케 다카시가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것을 그에게 기대한다면 당신은 이 영화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할 것이다.

<짚의 방패>

현재 진행형의 미이케 다카시

<두더지의 노래> <아웃사이더>

<짚의 방패> 이후 미이케 다카시가 준비하고 있는 작품은 총 3편이다. 그중 흥미로워 보이는 두편을 소개한다. 먼저 첫 번째는 야쿠자 조직에 잠입하는 수사관 이야기를 다룬 <두더지의 노래>이다. 이 영화는 2005년에 연재를 시작하여 현재까지 350만부 이상 판매고를 올린 다카하시 노보루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작품으로, 지난 3월에 촬영을 끝내고 2014년 2월에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쿠타 도마가 야쿠자 조직에 잠입하는 수사관(일명 두더지)으로, 쓰쓰미 신이치가 야쿠자 조직의 보스로 출연한다. 이쿠타 도마가 머리를 금발로 탈색했다거나, 가미지 유스케가 7시간에 걸쳐 온몸에 표범무늬 타투를 그려넣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원작자인 다카하시 노보루조차 만화에서만 가능하리라 생각했었는데, 라고 말했다고 하니 미이케 다카시가 만들어내는 또 한번의 ‘코스프레 캐릭터’들을 기다려보자. 미이케 다카시 자신도 이 영화를 두고 “5분에 한번씩 사건이 일어나 화면에서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일본판 <미션 임파서블>이 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홈페이지가 오픈되었는데 미이케 다카시 팬이라면 충분히 즐거워할 만한 소식들을 확인할 수 있다(http://mogura-movie.com/).

2015년 개봉예정인 <아웃사이더>는 영어 대사로 진행되는 첫 번째 미이케 다카시 영화로, 우리에게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 <로우리스: 나쁜 영웅들>로 잘 알려진 톰 하디가 2차대전 이후 일본의 야쿠자 조직에 들어가는 전직 미 G.I 요원 역을 맡았다. 조엘 실버가 제작자로 참여한다는 소식도 눈에 띈다. 한 인터뷰에서 미이케 다카시는 “이제까지 수차례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어보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없다면 별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대답했는데, <아웃사이더>에서 얼마나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고 보여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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