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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상부한 NO.3는 우리다
송경원 2013-09-03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 등을 제작한 블루스카이 스튜디오

<아이스 에이지4: 대륙 이동설>

여타 신생 스튜디오와 도매금으로 묶으면 섭섭하다. 1986년 문을 연 블루스카이 스튜디오(이하 블루스카이)는 27년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있는 제작사다. 무엇보다 2002년 <아이스 에이지> 이후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며 실적을 쌓아왔다는 측면에서 디즈니-픽사, 드림웍스에 이은 3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로 분류하는 편이 더 타당할 것이다. 디즈니 메인 애니메이터 출신 크리스 웨지가 설립한 블루스카이는 원래 각종 TV와 영화 속 특수효과를 전문적으로 맡아 제작하던 회사였지만 1998년 이십세기 폭스(이하 폭스)와 합병한 이후 제작전문 스튜디오로 전환한다. 당시 폭스는 제프리 카첸버그의 드림웍스보다 한발 앞서 애니메이션 시장에 뛰어들었는데 그 성과가 기대보다 신통치 않았고 그때 폭스의 눈에 든 것이 <죠의 아파트> <에이리언4> 등의 특수효과를 맡았던 블루스카이였다.

탄탄한 기술을 바탕으로

블루스카이의 크리스 웨지는 폭스와 손을 잡은 그해 자신의 첫 번째 작품인 <버니>를 만들어냈다. 그때까지만 해도 블루스카이는 하나의 가능성에 불과했지만 이듬해인 1999년 <버니>가 71회 아카데미 단편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하면서 블루스카이에 대한 평가도 상승했다. 폭스는 블루스카이의 영입 이후로도 여전히 직접 제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2000년 <타이탄 A.E.>의 기록적인 실패로 말미암아 제작은 아예 전문업체에 맡기고 배급만 담당하는 쪽으로 완전히 방향을 선회한다. 이윽고 폭스의 전폭적인 지원을 얻어낸 블루스카이는 2002년 드디어 스튜디오를 대표할 시리즈 <아이스 에이지>를 탄생시킨다.

툭 까놓고 말해 <아이스 에이지>가 혁신적인 애니메이션은 아니었다. 오히려 2001년 먼저 나온 <몬스터 주식회사>와의 유사성을 지적받으며 아류작이라는 비판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내용의 참신함은 제쳐두더라도 CG 기술력만은 픽사 작품 못지않았다. 사실 블루스카이를 여느 신생 제작사들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적어도 3D와 CG 기술력에 관한 한 블루스카이는 이미 업계 선구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21세기 이전 만들어진 3D애니메이션 중 아카데미를 수상한 작품은 <토이 스토리>와 <버니>뿐이란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크리스 웨지가 <버니>에서 선보인 이른바 ‘빛 추적 묘사법’은 당시 CG 기술 전반에 영향을 줄만큼 혁신적인 것이었으며 픽사의 정신적 지주 존 래세터마저 크리스 웨지를 두고 “나만큼 오래 이 일을 했고 독특한 감각을 지녔다”고 높게 평가했다. 창립 당시부터 블루스카이에는 3D애니메이션 1세대랄 수 있는 인력들이 모여 있었고 오랜 시간 축적해온 기술력이야말로 오늘날의 블루스카이를 탄생시킨 첫 번째 힘이다.

<아이스 에이지>의 빛과 그림자

<아이스 에이지>는 6천만달러의 제작비로 전세계 3억8천만달러가 넘는 흥행을 기록하며 블루스카이의 간판으로 자리매김했다. 4편까지 이어진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 모두 1억달러를 넘지 않는 제작비로 만들어졌지만 각각 6억5천만달러, 8억9천만달러, 8억8천만달러에 육박하는 기록을 세우며 북미 애니메이션 최고의 시리즈 중 하나로 우뚝 솟아올랐다. 픽사의 <토이 스토리>, 드림웍스의 <슈렉>에 비교해도 손색없는 시리즈일 뿐 아니라 제작대비 흥행 수치를 비교하자면 <아이스 에이지>를 따라올 시리즈는 전무하다. 이 작품 하나만 가지고도 블루스카이는 충분히 디즈니-픽사, 드림웍스에 이은 3강에 들 자격이 있다.

문제는 <아이스 에이지>를 사이에 둔 다른 작품들과의 격차다. 블루스카이는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와 다른 작품들을 교차로 제작하는 패턴을 취하고 있는데 <아이스 에이지> 이후에 제작한 <로봇>(2005), <아이스 에이지2>(2006) 이후의 <호튼>(2008), <아이스 에이지3: 공룡시대>(2009) 이후의 <리오>(2011), <아이스 에이지4: 대륙 이동설>(2012) 이후의 <에픽: 숲속의 전설>(2013) 모두 평균 수익 3억달러를 넘지 못했다.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로 돈을 벌고 다른 작품들로 새로운 시리즈를 만들고자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지만 좀처럼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한 셈이다. <아이스 에이지>가 거둔 블루스카이의 성취가 고스란히 한계로 작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이같은 격차의 원인을 단순히 완성도의 문제로 단정지을 순 없다. 도리어 블루스카이의 장편애니메이션들의 진정한 가치는 작품의 주제나 흥행 여부에 관계없이 일정 이상의 안정된 완성도로 신뢰를 얻어왔다는 데 있다. 독자적인 물리엔진으로 구현한 사실적인 묘사와 빛의 난반사를 잡아내는 자체 프로그램은 여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쉽게 구현하지 못하는 풍부한 질감을 화면 위에 되살려낸다. 주제와 이야기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어도 화면의 퀄리티만은 관객을 실망시킨 적이 없고, 그것만으로도 일정 부분 만족스러운 면이 있다.

진짜 문제는 <로봇> <호튼> <리오> 모두 나름의 야심을 가지고 출발했지만 좀처럼 그 이상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데 있다. 블루스카이를 업계 3위로 보는 이유는 단순히 그 규모가 디즈니-픽사, 드림웍스의 절반 수준에 못 미치기 때문만은 아니다. 빼어난 기술력에 비해 작품이 품고 있는 개성, 창의력, 상상력이 다소 부족하다는 것이 더 큰 이유다. <아이스 에이지>를 제외한 다른 작품들은 블루스카이라는 이름을 가리고 디즈니-픽사나 드림웍스 작품 속에 섞어놓아도 전혀 위화감이 없다. 그만큼 훌륭한 완성도를 선보인 셈이지만 거꾸로 말해 익숙하고 진부한 틀에서 벗어나질 못한 셈이다.

원초적인 웃음, 그들만의 장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루스카이의 작품들은 일단 재미있다. <아이스 에이지>의 매머드 매니와 나무늘보 시드, 검치호 디에고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에는 만담부터 슬립스틱까지 코미디의 거의 모든 요소가 집약되어 있는데 블루스카이 작품의 모든 캐릭터들은 이런 고전적인 개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직관적이고 알기 쉬운 캐릭터들이 펼치는 만화다운 몸 개그,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를 보는 것 같은 감각, 그 원초적인 즐거움이야말로 블루스카이의 첫 번째 정체성이다. 블루스카이의 상징이랄 수 있는 송곳니 다람쥐 스크랫이 도토리 한알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블루스카이의 정신 그 자체인 셈이다. 최고의 기술력과 웃음이라는 알기 쉬운 목표가 있는 한 블루스카이의 입지는 당분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남은 건 디즈니-픽사와 드림웍스가 가보지 못한 길로 발을 디뎌보는 것뿐이다.

도토리 한알을 위한 도전

블루스카이의 대표 캐릭터 <아이스 에이지> 송곳니 다람쥐 스크랫

<아이스 에이지>의 전체적인 이야기와 상관없지만 전 시리즈에 걸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캐릭터가 있다. 바로 도토리 한알에 목숨을 거는 송곳니 다람쥐 스크랫이다. 스크랫의 에피소드는 일종의 보너스 영상에 해당하지만 이제 스크랫이 없는 <아이스 에이지> 시리즈는 상상할 수도 없다. 4편까지 모든 포스터에도 빠짐없이 등장함은 물론 <노 타임 포너츠>(2006)라는 단독 출연작까지 있는 명실상부 블루스카이의 간판스타다. 도토리 한알을 위해 심해에도 들어가고, 사랑도 배신하며, 스카이다이빙도 마다하지 않는 이 집념의 다람쥐가 펼치는 슬립스틱코미디야말로 블루스카이의 정신 아닐까. 블루스카이의 창립자이자 <아이스 에이지>의 감독 크리스 웨지가 전편에 걸쳐 직접 목소리 출연 중이니 비록 그토록 원하던 도토리 한알은 아직 얻지 못했지만 창조주의 사랑만큼은 독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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