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미국의 어느 밤,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소녀 렉스(레이븐 애덤슨)는 자기보다 약간 사정이 나은 친구 매디(케이티 코시니)의 창문을 두드린다. 그 뒤로 두 소녀는 주변에서 아버지, 삼촌, 선생님, 또래 남자아이들로부터 온갖 몹쓸 짓을 당한 다른 친구들을 모아 비밀동맹 ‘폭스파이어’를 결성한다. 폭스파이어는 세상을 향한 복수를 꿈꾸며 자신들을 억압하는 남성, 권력, 자본에 맞선다. 렉스는 그 복수를 혁명의 수준으로 발전시키려고 한다. 하지만 그녀들의 치기어린 이상은 다시 현실이라는 울타리에 갇히고 만다.
리얼리스트 로랑 캉테의 필모그래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준작이다. 조이스 캐럴 오츠의 동명 소설에서 소재를 가져온 점, 비전문배우들을 기용한 다큐멘터리적 연출법, 매디라는 내레이터를 내세워 중요 사건들을 중계하는 방식, 시대와 체제에 문제제기를 하는 동시에 낙관주의를 거부하며 개인과 집단의 갈등을 오롯이 드러내는 주제 등은 낯익은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원작에 나와 있는 1950년 미국의 풍경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그 풍경을 할리우드영화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억하려 했다는 점 정도가 다르다. “아메리칸드림을 거부”하는 캉테의 시선은 낭만적인 데가 없고 때때로 차갑기까지 하다.
아메리칸드림에 대한 저항이라는 개념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 반성, 혹은 반성에 대한 반성은 미국영화의 자장 안에서도 조금은 오래된 이야기다. 그러므로 소외계층의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해온 프랑스 감독이 이 주제를 건드렸을 때 관객은 그 문제의식을 갱신할 만한 어떤 이미지나 방법론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폭스파이어>는 미국적 주류 감성에 대한 반론이나 캉테라는 이름을 새로 들여다보게 하기에는 다소 평범한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