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정보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61-06-15
- 성별남
소개
90년대 후반, 프랑스영화에 새로운 기운이 생겨났다. 인간의 사적 세계를 미분해 들어가던 그곳 영화의 주류적 흐름과 달리 정치·사회문제를 선정적일 만큼 정면으로 부각시키는 영화들이 나왔다. 로랑 캉테는 99년 38살의 나이로 뒤늦게 데뷔하면서 알랭 기로디, 로베르 게디기앙과 함께 이런 기류의 대표주자로 올라섰다. 데뷔작 <인력자원부>는 당시 논란이 된 주 35시간 노동제 도입을 강행하려는 회사에 파업으로 맞서는 노조의 투쟁을 다뤘다. 비전문배우들로 출연진을 꾸리고 음악도 쓰지 않고 영화의 무대를 주인공의 집과 공장으로 제한한 채 이야기를 좁혀 담백하게 끌고갔다.
모처럼 만에 노동문제를 진지하게 다룬 영화를 들고 나타난 캉테는, 수십년간 줄기차게 노동계급을 위한 영화를 만들어온 영국의 켄 로치를 떠올리게 했지만 그의 어법은 켄 로치보다 차가웠다. 켄 로치처럼 조그만 희망이라도 남겨놓고 북돋우려는 모습이 그에겐 없었다. <인력자원부>는 노조 파업의 결과가 불명확한 채로 끝난다. 거기서 명확해지는 건 대안계급의 가능성은 사라져버리고 사실상 ‘루저’가 돼버리다시피 한 지금 노동계급의 현실이다. 아버지가 30년 동안 다닌 공장에 경영 실습을 나온 대학생 아들이, 경영자로 아들이 성공하기를 바라며 파업에 불참한 채 선반을 돌리는 아버지에게 격렬한 비난을 퍼붓는 장면은 한 시대 한 계급의 긍지가 안팎에서 함께 무너져버렸음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평단에 이 영화가 급부상한 건 무엇보다 그 섬뜩한 현실의 리얼리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영화 <시간의 사용자>는 캉테와 켄 로치의 거리를 더 드러냈다. 이 영화는 해고당한 사실을 숨기고 살아가는 전직 경영 컨설턴트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가족들에게 저개발국에 투자하는 유엔기구로 직장을 옮겼다고 거짓말하고는 친구들로부터 별도의 사설펀드를 만들겠다며 돈을 모은다. 영화는 주인공의 대책없는 거짓말 행각의 이면에 직장과 가정으로부터 도피하려 하지만 또 한편에서 이전의 관성을 따르려 하는 중간 부르주아의 심리를 중계한다. 노동·사회문제와 무관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영화의 무게감은 개인의 실존쪽에 더 실린다. 두 번째 영화에서 캉테가 주목한 건 구체적인 사회문제이기보다 인간과 사회라는 근원적인 요소의 함수관계였다.
<시간의 사용자>
<필름 코멘트>는 이 영화를 두고 “<인력자원부>보다 덜 독특하다”면서 “<시간의 사용자>의 매력은 표현주의적 미장센”이라고 평했다. 그 말처럼 <시간의 사용자>에선 배경이 되는 교외 주차장, 쇼핑몰, 현대식 고층건물 같은 공간이 동시대성을 전한다. 푸른 화면 톤에 실린 공간의 모습과 그곳을 배회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교직해 사회와 개인의 괴리감, 소외 같은 느낌을 길어낸다. <시간의 사용자>은 2001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사자상’을 받았고 미국에서 개봉한 뒤인 2002년 <빌리지 보이스> <필름 코멘트> <타임> 등에서 뽑은 그해의 영화 ‘베스트 10’에 들면서 캉테를 세계적인 감독으로 격상시켰다.
2001년 12월 광주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한국에 왔을 때 캉테는 켄 로치와 자신을 비교하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켄 로치는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감독이지만 나와 비교할 점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는 투사였고 영화마다 메시지가 분명하다. 나는 질문은 던지지만 대답은 주지 않는다.” 그는 또 “어떤 사회적 그룹과 그 안에 속한 개인 사이의 갈등은 나의 주된 관심사다. 노동자 계급을 택한 건 그런 갈등이 더 부각될 수 있어서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프랑스 근교 소도시에서 태어나 영화학교 이덱을 나왔고, 막스 오퓔스의 아들인 마르셀 오퓔스의 조감독으로 유고 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 <철야>를 찍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