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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가 죽는지 알고 있다
김성훈 2013-08-22

절대 변하지 않는 재난영화의 7가지 불문율

재난영화 좀 본 관객은 누가 살아남고, 죽는지를 유심히 지켜보곤 한다. 다른 장르가 그렇듯이 재난영화 역시 어떤 규칙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규칙성을 바탕으로 재난영화의 7가지 불문율을 꼽아봤다. 물론 예외 없는 불문율은 아니다.

1. 가장 행복한 날을 조심하라

재난영화에는 ‘재해용 달력’이 따로 있다? 그게 아니라면 재해가 기념일이나 휴가철만 골라 일어나는 사실을 설명할 도리가 없다. 여름 성수기의 해운대를 집어삼킨 쓰나미가 있는가 하면(<해운대>(2009)), 산타클로스인 양 크리스마스에 찾아와 선물을 주긴커녕 초고층 빌딩을 잿더미로 바꾼 화재도 있다(<타워>(2012)). <포세이돈 어드벤쳐>(1972)의 거대한 해일은 새해 축배를 드는 사람들이 가득한 배에 찾아와 “해피 뉴 이어!”라는 탄성을 “살려달라!”는 울부짖음으로 바꿔놓았다. 어쨌거나 달력에는 재해가 모습을 드러낼 기념일이 아직 많이 남았다.

2. 과학자가 하는 말을 허투루 듣지 말 것

사람들을 빨리 대피시켜야 합니다.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지요. 재난영화에 나오는 과학자들은 재난을 예측해 쉴새없이 위험을 경고한다. 하지만 두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 그들의 말을 귀담아듣는 사람은 거의 없다. 치사율 100%의 강력한 위력을 가진 바이러스균이 아프리카 열대우림 지역의 오지 마을을 휩쓸고(<아웃브레이크>(1995)), 빙하기가 와서 지구의 모든 것이 얼어야(<투모로우>(2004)) 사람들(특히 정치인들)은 뒤늦게 후회한다. <투모로우>에서 “멕시코로 대피해야 한다”는 잭 홀 박사의 경고에 한 정치인이 “당신은 과학이나 제대로 하세요. 정치는 우리가…”라고 우쭐댔다. 그 말을 들은 미국 대통령은 이렇게 일침을 가했다. “정치인한테 맡겨서 재난이 이렇게 커졌잖소. 정치로 효과를 보지 못할 때마다 과학을 탓하곤 하지.”

3. 무리를 따라가면 큰일난다

남들이 ‘예스’할 때 혼자 ‘노’를 외치기란 쉽지 않다. ‘안전한 곳을 찾으러 갈 것이냐’와 ‘지금 있는 곳을 지킬 것이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특히 그렇다. <포세이돈 어드벤쳐>에서 포세이돈호가 전복되어 기관실로 가자고 스콧(진 해크먼) 목사가 제안하자 많은 사람은 남아 있는 쪽을 택했다. <투모로우>에서 빙하기를 피해 도서관에서 벗어나자고 누군가가 선동하자 많은 사람은 그의 말을 따랐다. ‘멘붕’ 상태에서는 사람의 숫자가 적은 쪽보다 많은 쪽이 훨씬 안전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전자의 남아 있는 사람들은 곧바로 새어든 바닷물에 잠겼고, 후자의 따라나간 사람들은 금방 얼음이 되었다.

4. 사람 목숨도 계급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돈과 지위가 있다면 어떤 재난에도 살아남을 확률이 높다. <타워>의 국회의원(박정학)과 그의 아내는 애완견과 함께 119 구조 헬기에 우선 탑승해 화재 현장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2012>의 부호와 권력가는 무려 10억달러에 달하는 방주의 탑승권을 구입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5. 커플은 싱글보다 불행해질 확률이 높다

커플은 재난영화의 희로애락 중 ‘애’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많은 감독이 커플을 갈등이나 비극적 장치로 활용한다는 얘기다. <포세이돈 어드벤쳐>의 노부부가 애틋한 것도 그 때문이다. 행동과 판단이 빠른 젊은 사람들에 비해 그들은 힘겹게 장애물을 통과하고, 그럼에도 서로 손을 놓지 않는 모습은 아름다우면서도 슬프다. 반면, <에어포트>의 기장과 스튜어디스 불륜 커플이 비행기 사고를 당하며 도덕적인 심판(?)을 받는 건 꽤 흥미롭다.

6. 아이는 절대 죽지 않는다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인 재난영화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는 부류의 인간이 딱 하나 있다.바로 아이다. <대지진>(2010)에서 보여준 일곱살 쌍둥이 팡떵과 팡다의 생존력은 기적적이다. <해운대>의 김 박사(박중훈) 부부의 딸 역시 기적처럼 나타난 구원의 손길이 아니었더라면 초고층 빌딩만 한 쓰나미의 습격에 무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것을 휩쓸고 간 자리에도 인류의 씨앗 혹은 미래만큼은 남겨둔다.

7. 영웅은 모두를 위해 희생한다

성공했든 실패했든 노아의 방주에 탄 무리에는 영웅이 있기 마련이다. 영웅은 가부장의 모습이기도 하고(<연가시>의 아버지 재혁(김명민)), 정신적인 지주 역할을 하기도 한다(<포세이돈 어드벤쳐>의 목사(진 해크먼)). 각기 다른 모습을 한 영웅들의 공통점은 남성이라는 것. 이 사내들은 재난으로 급조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다가 끝내 희생한다. 그게 장르로서의 재난영화의 쾌감이자 오랜 클리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