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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깜짝 놀라실 겁니다
장영엽 2013-08-21

스릴러+공포, 허정 감독과 <숨바꼭질>을 주목하라

상영 편수로만 따지면 불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눈이 번쩍 뜨이는 작품은 없었다. 올해 상반기 다소 실망스러웠던 한국 공포영화의 부진을 잊게 해줄 ‘물건’이 나타났다. 8월14일 개봉하는 <숨바꼭질>은 별 생각 없이 관람했다가 큰코다칠 공포스릴러영화다. 수많은 스포일러와 충격의 반전으로 무장한 채 관객의 심장박동을 뛰게 할 준비를 마친 이 영화는 함께 극장가에 걸릴 대작 블록버스터영화들 사이에서도 의외의 적시타를 칠 가능성을 높게 점칠 만하다. <숨바꼭질>의 매력과 더불어 이 작품으로 상업영화계에 출사표를 던진 재기 넘치는 신인감독 허정의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3년 전이었던가. 전국에 섬뜩한 괴담이 떠돌기 시작했다. 집집마다 초인종 옆에 정체불명의 표식이 있는데, 그 표식이 그 집에 살고 있는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의 숫자를 의미한다는 소문이었다. 남몰래 출구조사를 하는 건 범죄자들의 소행이 틀림없다고 많은 사람들은 믿었다. CCTV를 확인해보아도 표식을 남긴 사람을 알 수 없고,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의문의 부호가 발견되자 급기야 경찰과 방송사가 실체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몇몇 사례는 신문이나 우유를 배달하는 사람들, 혹은 종교단체의 전도사들에 의한 것으로 판명되었지만 완벽한 설명은 아니었다. ‘초인종 괴담’은 그렇게 해결되지 않은 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점점 잊혀져갔다.

<숨바꼭질>은 한때 전국을 강타했던 초인종 괴담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오랫동안 형과 연락을 끊고 살아가던 중년의 가장 성수(손현주)가 형의 실종 소식을 듣고 그가 머물던 낡은 아파트로 찾아간다. 형의 행방을 이웃에 수소문하던 성수는 예민한 기질 덕분에 집집마다 현관에 새겨진 의문의 부호가 거주자의 성별과 숫자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린다. 우연히 만난 (형의) 이웃집 여자 주희(문정희)는 성수에게 “형이 내 딸을 그만 쳐다보게 해달라”며 알 수 없는 말을 건넨다. 어딘가에서 아파트 주민들을 남몰래 ‘관리’하는 그 사람은 누구인가. 현실의 초인종 괴담은 답없는 해프닝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숨바꼭질>에는 헬멧을 쓰고 두꺼운 파카를 입은 정체불명의 괴한이 존재한다. 그 헬멧의 덮개를 열어 괴담의 실체를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숨바꼭질>로 몰입하도록 이끄는 원동력이다.

“이건 스릴러가 아니라 호러물”

현실에 존재할 법하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오싹한 이야기를 괴담이라고 한다면, <숨바꼭질>은 그러한 이야기들의 조각을 모아 납득할 만한 상상력으로 가공한 괴담영화다. 초인종 괴담을 비롯해 다른 사람의 집에 몰래 숨어 사는 사람들에 대한 괴담, 웹캠 괴담(웹캠을 끄지 않고 집을 비웠다가 돌아와보니 녹화 영상에 낯선 사람이 포착되었다는 괴담), 엘리베이터 괴담 등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영화의 주요 대목마다 포진해 있다. 새로운 이야기보다 괴담처럼 널리 알려진 일화에 집중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허정 감독은 <숨바꼭질>을 만들기 이전부터 괴담에 매혹되어왔다고 말한다. “현대사회의 구성원들이 지금 현재 가장 두렵고 불안하게 여기는 어떤 지점을 반영하는 이야기”가 괴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괴담을 읽어가던 도중, 그는 현재 한국사회에서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자리잡은 불안감의 중요한 원천 중 하나가 ‘집’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른 사람의 집을 빌려 살기에도 빠듯한 지금의 한국에서 집을 소유한다는 건 행복한 삶의 필수조건이다. 결국 자기만의 집을 갖게 되었더라도 그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을 텐데, 그 공간을 낯선 존재가 잠식하려 들 때 개인이 느끼는 공포감에 대해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으리라고 허정 감독은 믿었던 듯하다. 그러므로 엘리베이터에서 옷방에 이르기까지, 집 안팎의 장소에 대한 다양한 괴담을 반영한 <숨바꼭질>은 21세기 한국사회에 몸담은 중산층의 가장 큰 불안감을 공략하는 스릴러영화다.

범인의 겉모습이 어느 집이나 빈번하게 드나드는 택배 서비스 직원의 옷차림과 다르지 않은 점이 공포의 체감도를 높인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러 정체가 밝혀지기 전까지 헬멧과 파카로 무장한 채 침묵을 고수하는 <숨바꼭질>의 범인은 올해 상반기 개봉한 모든 한국 공포영화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라 할 만하다. 흥미로운 점은 끔찍한 특수분장이나 과도하게 잔혹한 살인 장면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영화 속 범인이 충분히 섬뜩하게 묘사된다는 점이다. 그 섬뜩함은 현관문 바깥에 존재한다고 생각해왔던 인물이 방 안으로 들어와 우두커니 서 있거나, 과격하게 집으로 진입을 시도할 때 불현듯 찾아온다. 사적인 공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검은 헬멧의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이질적인 정서를 더욱 고조시키는 건 이 영화의 사운드다. 호들갑스러운 음향으로 일회성 쇼크 효과를 노리는 수많은 공포영화와 달리, <숨바꼭질>은 오히려 중요한 대목에서 아주 작은 소음마저 완벽하게 차단해버리는 방식으로 긴장과 주목도를 끌어올린다. 특히 첫 번째 희생자가 방 안에서 범인을 발견하고 살해당하기까지의 숨막히는 침묵은 마치 가위에 눌려 손과 발을 움직일 수 없을 때처럼 무기력의 공포를 선사한다.

<숨바꼭질>은 스릴러영화로서의 호흡도 꽤 만족스러운 편이다. 개봉 전 영화를 미리 본 많은 이들이 “이건 스릴러가 아니라 호러물”이라는 평을 쏟아낸 건 이 영화가 호러 장르의 영화만큼이나 관객을 자주 놀라게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숨바꼭질>은 예측 가능한 공포의 순간을 마련한 뒤 기습적으로 또 다른 충격의 장면을 보여주며 관객의 허를 찌른다. 미로 같은 아파트, 그 공간의 부분을 조명하며 아직 채 보지 못한 공간의 다른 부분에 대한 두려움을 자극하는 촬영기법도 관객의 조바심을 키우는 데 한몫한다. 스포일러이기에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이중, 삼중으로 체감하게 되는 반전의 스릴과 공포는 이 영화에 장르적인 재미를 더한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남발되는 반전에 피로감을 느끼는 관객도 있을 것이다.

허점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도 분명 있다. 사실 <숨바꼭질>은 이야기의 구조만 놓고 보자면 허점이 많은 영화다. 괴한의 침입에 맞서며 왜 성수는 경찰의 힘을 빌리지 않을까. 언제든지 조금만 기지를 발휘하면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법한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가족구성원에게만 의지한 채 자꾸만 위기상황을 만들어내는 성수의 가족을 지켜보고 있자면 답답하다. 인물의 행동과 그 행동을 유발하는 원인이 촘촘하지 못하다보니, 의문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채 다음 장면으로 건너뛰게 되고 그런 상황이 거듭되며 생기는 이야기의 공백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숨바꼭질>은 허점보다 그 매력을 높이 사고 싶은 영화다. 가족이 단란하게 숨바꼭질 놀이를 즐기던 스위트 홈이 탈출구 없는 작은 지옥으로 탈바꿈하는 건 순식간이다. 옷장 속을, 구석진 베란다를, 현관의 도어록을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살펴보게 만드는 <숨바꼭질>은 며칠간의 꿈자리를 뒤숭숭하게 만들 악몽이 아니라 익숙한 장소를 볼 때마다 오래도록 기억될 여운을 안기는 스릴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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