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백색의 회벽으로 된 외관이 아름다워 백로 성이라고도 불리는 일본 효고현 히메지성에 가면 오키쿠 우물이 있다. 이 우물은 ‘사라야시키’라는 괴담의 무대로 유명하다. 괴담의 기승전까지는 몇 가지 버전이 있으나, 결은 하나다. 오키쿠라는 시녀가 있었다. 오키쿠는 주인마님에 의해 열장 이 되어야 하는 귀한 접시 중 한장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갇힌다. 그녀가 스스로 우물에 몸을 던졌다고도 하고, (히메지성의 우물 앞 표지판 설명에 따르면) 매질당 해 죽은 뒤 시신이 우물에 던져졌다고도 하는데 그날 이후 밤마다 우물가에서 접 시 세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장, 두장, 세장… 한장이 모자라. 다시 세봐야 지. 한장, 두장….” 유사한 이야기가 일본 각지에서 발견된다고 하는데, 에도시대에 는 가부키로 각색되어 공연되기도 한 인기있는 괴담이었다. 이노우에 히로미와 박 지선이 엮은 <일본기담>을 읽고 있자면 요괴전문가이자 소설가인 교고쿠 나쓰히 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그의 책 중 <항설백물어>가 바로 ‘항간에 떠도는 백 가지 기묘한 이야기’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백물어(百物語)는 일본의 한 풍습으로, 사람들이 한밤중에 모여 촛불을 들고 기묘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뜻한다. 자기 이야기를 마친 사람은 촛불을 끈다. 그렇게 마지막 촛불이 꺼지면 귀신이 찾아온 다. 일본 에도시대의 유명한 괴담집 <회본백물어>에 등장하는 설화를 모티브로 한 소설 <항설백물어>는 고전 요괴 설화를 재해석한 명작으로 평가받아 나오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일본기담>과 교고쿠 나쓰히코의 또 하나의 접점은 <일본기담> 에 소개되고 있는 ‘우부메 이야기’다. 젊은 사무라이가 밤의 숲에서 아이를 품에 안 은 젊은 여인을 만났다. 여인은 아이를 잠시만 봐주면 남편을 찾아오겠노라고 했 다. 어째서인지 아이가 점점 묵직해졌다. 팔이 떨어져나갈 듯했지만 이를 악물고 버티자 아이의 무게가 깃털처럼 가벼워졌다. 그러자 여인이 나타나 감사인사를 하 며, 그 무게를 견딘 사무라이 덕에 자신이 성불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못다 이 룬 사랑과 억울함은 죽어서도 쉬 지울 수 없는 어떤 것인 모양이다. 오래전 이불을 뒤집어쓰고 <전설의 고향>을 보던 마음으로 읽기 좋은 책.
[도서] 슬프고 무서운
글
씨네21 취재팀
2013-08-15
<일본기담> 박지선, 이노우에 히로미 지음 / 청아출판사 펴냄
1 / 3
- 에서 책구매하기
-
ㆍ슬프고 무서운 <일본기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