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김정원의 피카추
[김정원의 피카추] 우리나라 대통령은…

<화이트 하우스 다운> 등 할리우드영화 속 미국 대통령의 모습

<화이트 하우스 다운>

<에어 포스 원>

1989년에 개봉한 영화 <굿모닝! 대통령> 예고편에는 커서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하는 소녀가 나온다. 믿기 어렵겠지만, 그게 바로 이 영화의 마케팅 포인트였다. 게다가 주연이 이상은이라고! 그게 예고편의 전부였다. 그런데도 소녀들은 신이 나서 영화를 보러 갔다. 나도 꿈이 대통령이라고 말해볼까, 고민도 했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한국에서 여자가 대통령이 된다는 건 SF영화에나 나올 법한 미래의 일이었고, 감히 그런 꿈을 가진다는 것만으로도 똑똑한 소녀로 보일 수 있었다.

그리고 20년이 흘러 ‘소녀’ 가장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나이 스물일곱이 소녀라면 나는 결혼 적령기). 이야, 여성 대통령이다!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선진국이 되었다며(그럼 파키스탄이나 필리핀도 선진국) 대한민국은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는데…. 그 여성 대통령이 실종되었다.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상심한 대한민국의 여성 국민은 다른 나라 대통령이 나오는 영화를 보며 그리운 마음을 달래기 시작했던 것이다.

어디에 숨었나 찾을 수 없을 만큼 그녀가 칩거하고 있는 청와대가 미지의 공간이긴 하다. 청와대보다 개방적이라는 백악관도 그 속을 모른다는데,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인디펜던스 데이> <2012>로 미국 대통령을 향한 애정을 과시했던 독일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는 백악관의 사적인 공간까지 구경했다고 자랑하며 본격 백악관 투어 영화 <화이트 하우스 다운>을 만들었다. 그는 내부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지만 워낙 “카메라 같은 기억력을 가졌기 때문에 이제 가이드보다도 웨스트윙을 잘 안다고” 한다.

<인디펜던스 데이>

<대통령의 연인>

에머리히만 미국 대통령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영화 포털 사이트 IMDb를 찾아보면 미국 대통령이 등장하는 영화는 260편으로, 교황이 등장하는 124편과 영국 왕실이 등장하는 38편을 압도한단다. 하긴 직업이 같은 한국 대통령도 미국 대통령을 참 좋아하더라, 사귀러 간 것도 아닌데 악수하면서 따뜻한 눈빛을 보냈다고 막 신문에도 나오고. 따뜻한 눈빛 하면 역시 <대통령의 연인>의 셰퍼드 대통령이다. 비서가 해주겠다는데도 굳이 자기가 직접 애인에게 꽃을 보내겠다며 꽃집 번호 내놓으라고 떼를 쓰는 그는 1990년대 비디오방을 휩쓴 로맨틱 가이였다.

하지만 영화에서 그리는 대부분의 미국 대통령은 로맨틱하고 가정적인 동시에 강한 남자들이다. <ABC>가 뽑은 최고의 대통령 영화 10편에 들어간 <에어 포스 원>의 마셜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많은 전우를 구출한 베트남 참전 용사 출신이다. 최정예 경호 인력이 탑승한 에어 포스 원을 단번에 제압한 테러리스트들을 혼자서 한 시간 반 만에 제압하고 비행기 운전도 직접 하는 기특한 대통령. 남들이 보기에는 황당무계한 영화였지만 역시 독일 감독인 볼프강 페터슨에 의하면 문짝이 떨어진 비행기 안에서 멀쩡하게 서서 싸우는 장면을 비롯한 이 영화의 모든 격투는 과학적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인디펜던스 데이>의 휘트모어 대통령도 전투 조종사 출신으로, 외계인이 쳐들어오자 직접 자기 집을 되찾으러 간다. 그의 반대파는 “정치가 전투인 줄 안다”고 욕하지만, 그리고 냉정하게 생각하면 욕먹을 만한 일이긴 하지만, 둘 중 하나라도 제대로 아는 게 어디인가. (2008년을 기점으로 대통령 보는 눈이 많이 낮아졌다.) <화이트 하우스 다운>의 소여 대통령도 안경만 쓰면 로켓포를 아주 제대로 쏜다.

그런데 딴 나라 대통령들이 집 지키는 영화들을 보다보니 어딘가 낯이 익었다. 누구였더라, 저 사람들처럼 로맨틱하고 가정적이고 강한 데다 특전사 출신이었던 사람이 있었는데…. 심지어 대통령 후보였는데….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그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할리우드영화 한편 보는 것처럼 짜릿했겠지만, 그냥 <굿모닝! 대통령>이나 추억하고 말았다.

관련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