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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입체적인 영화
김혜리 2013-08-09

오노레 도미에의 <삼등 객차>(1862∼64, 맨 위)와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1808년 5월3일>(1814, 위). <설국열차>가 기억에서 끌어내는 두점의 그림이다. 영화에는 그림으로 설국열차의 역사를 기록하는 화백이 등장하는데 그가 그린 ‘꼬리칸’ 사람들은 특히, 도미에가 즐겨 묘사한 고단한 노동자들을 많이 닮았다.

7/5

일부러 암기하거나 메모해두지 않았어도 개봉연도와 관람한 극장을 대뜸 댈 수 있는 영화들이 있다. 학창 시절 본 영화들이 주로 그렇다. 함께 보러간 친구만 기억나도 바로 학년이 나오니까. <지존무상>은 교실 뒷줄의 키 큰 친구들끼리 어울려 단성사에서, <굿바이 칠드런>은 대학 입시를 마친 겨울에 씨네하우스에서, <미드나이트 런>은 파고다극장에서 두 학번 선배였던 사촌오빠와 봤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데뷔작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의 한국 개봉은 1990년 봄이 확실하다. 개봉관은 70mm 스크린을 자랑하던 충무로 대한극장이었다. 확언할 수 있는 까닭은 내가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가 상영 중인 대한극장에 뛰어들어간 날이 대학 입학한 해의 봄, 처음인가 두 번째 ‘가투ʼ(길거리 시위)에 나간 날이었기 때문이다. 소위 운동권, 비운동권이 나뉘기도 전인 1학년 1학기였다. 시내 중심가로 나선 스무살들에게 장대한 포부는 없었다. 우리는 세상이 짐작하듯 비장하지도 철없지도 않았다. 그저 선거에서 뚜렷이 드러난 국민의 의사를 3당 합당으로 가볍게 뒤집어버린 정치인들에게, “아니오. 우리는 동의하지 않습니다”라는 뜻을 표명해야 한다는 데에 동의했다. 가만히 있으면 국민도 그들의 결정을 지지했다고 멋대로 해석할 일이 싫었고, 생업이 있는 어른들은 바쁘니 기운있고 시간있는 학생부터 목소리를 내는 건 당연해 보였다. 이처럼 나름 논리적인 결론으로 나섰지만, 막상 거리에서 최루탄과 곤봉을 든 전경에게 쫓기기 시작하니 내가 왜 지금 이곳에 섰는지 머리가 하얘졌고 그저 눈물나게 무서웠다. 중등 교육과정 체력장을 통틀어 100m를 20초 안에 주파한 적 없는 내 탓에, 2인1조로 짝이 된 선배가 덩달아 붙들릴까봐 심장은 더욱 쪼그라들었다. 대열은 흩어졌고 도망치던 나와 선배는 여차하면 영화 보러 왔다고 둘러댈 요량으로 대한극장의 옆문을 열고 들어가 비상계단에 숨었다. 숨죽인 정적 속에 상영관으로부터 새어나오는 남자와 여자의 대사 소리가 웅웅 들렸다. 얼핏 본 간판은 야한 영화 같았는데 대사도 많네, 무심코 생각했다. 영원처럼 느껴진 그 10여분 동안 나는 엉뚱하게도 벽 너머에서 영사되고 있는 그 영화가 무슨 이야기인지 너무나도 간절히 알고 싶었다.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가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한편의 영화라도 되는 것처럼. 객석에서 그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이 천국에 들어간 사람들인 듯 부러웠던 이해할 수 없는 기분은 무사히 귀가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 무렵 자발적으로 극장에 가서 본 영화가 통틀어 스무편도 안되는 ‘영화 냉담자’였던 내가 며칠 뒤 소더버그의 데뷔작을 혼자 보러 간 사연은 그러했다.

완전히 묻혔던 추억이 불쑥 고개 든 까닭은, <사이드 이펙트>를 개봉하는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에게 보낼 서면 인터뷰 질문을 뽑느라 그의 작품 목록을 되돌아보는 중이어서다. 어쨌거나, 그 시절만큼 내가 본 한편 한편의 영화를 둘러싼 풍경이 선연해지는 날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영화 보는 일이 일상인 직업을 가져서이기도 하고. 숫자로 관을 구분한 어슷비슷한 인테리어의 멀티플렉스가 극장이라는 공간의 실물감을 지워버린 탓이기도 하다. 무슨 영화를 어느 극장에서 봤는지 기억하기 어렵고, 영화와 영화 사이에 나만의 스토리가 돋아날 틈도 좁아졌다. 지하철로 연결된 쇼핑몰의 꼭대기로 올라가 우주선 같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출구를 나설 때마다 나는 허방을 디딘 사람처럼 잠깐 방향감각을 잃곤 한다.

7/6

알폰소 쿠아론 감독(<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칠드런 오브 맨>)의 신작 <그래비티> 제작 과정에 3D 기술 자문을 지원했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지난 7월3일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한 포럼에 참석해 <맨 오브 스틸>과 <아이언맨3> 같은 경우는 3D영화여야 할 필연성이 없다는 발언을 했다. 카메론은, 비단 스펙터클만 위해서라면 3D가 아니어도 1억5천만달러 제작비를 투자한 것만으로 충분하다면서 3D는 3D 고유의 미학과 효과를 필요로 하는 영화에 쓰여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한편의 영화를 3D로 만드느냐 마느냐가 필름메이커의 예술적 선택이 아니라, 티켓 수입을 올리려는 스튜디오들의 상업적 결정 사항이 된 현실을 우려했다. 구구절절이 맞는 이야기지만 <아바타> 이후 지금까지 많은 공적인 자리에서 3D를 영화의 미래로 지목하고 극장주들의 영사 시스템 교체를 부추겼던 카메론의 과거 발언을 돌이켜보면 발뺌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카메론은 본인의 <아바타>처럼 서사 자체가 3D 맞춤형으로 고안된 영화나 <라이프 오브 파이>처럼 스토리텔링의 차원을 시각의 차원에 반영시킬 수 있는 기획이, 상영 인프라의 교체를 정당화할 만큼 자주 나올 거라고 믿었다는 말인가? 일단 입장료가 비싼 3D 스크린이 보급되고 나면, 스튜디오들이 대부분의 블록버스터를 사후적으로 3D로 변환해 파이프라인을 채우리라는 예상을 못했단 뜻일까? 그렇다면 제임스 카메론은 누구보다 순진무구한 예술가다.

공교롭게도 그저께 ‘라디오 타임즈 닷컴’에는 <BBC>가 올 연말부터 3D 개발 프로그램을 3년간 중지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올라왔다. 그동안 공룡 다큐멘터리, 어린이 드라마, 런던올림픽 개막식 중계, 여왕 연설 등을 3D로 시험 방송해온 결과, 3D 텔레비전을 보유한 영국 내 잠재 시청자(150만 가구)의 반응이 저조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3D 부서 책임자는 영국의 미지근한 3D 선호도에 관해, 동시에 다른 일을 하면서 시청하는 TV 특성상 입체안경을 찾아 쓰고 정좌해서 몰입하는 과정을 시청자가 귀찮아해서인 것 같다는, 어처구니없이 단순하면서도 납득이 가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리고 침통하기는커녕 자못 홀가분한 말투로 “잠깐 멈추어 서서 사태를 관망하기 적절한 시점”이라며 자기는 원래 일하던 부서로 복귀한다고 밝혔다. 기업이든 공공기관이든 블루오션에 한번 깃발을 꽂으면 우격다짐으로 시장을 만들어서라도 수익이든 명분이든 짜내는 광경만 보고 살아와서인지, 신선하다.

7/8

<미스터 고> 역시 3D가 이야기와 밀착된 영화라고 하긴 어렵다. 공과 배트가 객석쪽으로 날아와 야구장 관중석에 앉아 있는 환각을 안겨주는 깜짝 효과 정도다. 하지만 정작 3D는 <미스터 고>의 성취와 실패에서 결정적 변수는 아니다. <미스터 고>의 최대 강점은 미덥게 구현되고 이물감 없이 인간 세계에 녹아든 디지털 고릴라이고, 최대 약점은 영화 속 인물들이다. 성충수 에이전트부터 고릴라 링링의 단짝 소녀 웨이웨이에 이르기까지 <미스터 고>에는 우리가 마음을 붙일 만한 캐릭터가 없다. (웨이웨이도 엄격히 말하면 링링의 학대자 중 한명이다.) 꼭 호감이 가야만 관객이 극중 인물에 마음을 붙이는 건 아니다. 요는 매력이다. 매력은 캐릭터가 일관성이 있거나, 이해할 만한 과정을 거쳐 변모할 때 발생한다. 영화 속 인물이라고 모두 착하고 옳을 필요가 없음은 말하나마나다. 단, 모든 인물이 예외없이 밉상일 경우 약간 어려워지긴 한다. 더 정교한 드라마와 더 단단히 빚어진 캐릭터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스터 고>의 인물들의 특징은 편의적으로 느끼고 움직인다는 점이다. 극중에서 손쉬운 이익을 보는 선택을 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스토리의 편의에 따라 성격이 갈지자를 그린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프로야구에 종사하는 극중 인물들은 하나같이 스스로도 돈밖에 모르면서, 남을 공격해야 할 때는 바로 “돈밖에 모른다”는 이유로 비난한다. 눈앞의 이익에 태도가 표변한다는 면에서 그들은 서로 성격을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닮았다. 인물들 또한 별로 합리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링링을 포획하러 출동한 경찰은 그물을 쏘아놓고는 고릴라가 그물을 잡아채면 감탄한다. 이름이 주어지지 않는 익명의 관중도 링링에 대해 태도나 ‘여론’을 형성하지 않는다. 홈런을 치면 환호하고 구장 지붕으로 기어오르면 잡히기를 바라고 묘기를 보여주면 다시 즐거워한다. 고릴라의 묘사도 편의적이다. 눈물이 필요한가 스릴이 필요한가에 따라 그들은 존엄한 생명체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영화는 링링과 레이팅을 인간의 말을 잘 듣는 친구와 인간에게 대드는 맹수로 갈라 끝내 그들끼리 혈전을 벌이게 한다. 야구라는 특정 종목의 쾌감과 스포츠영화로서 <미스터 고>의 재미는 깊은 관련이 없다. 중요한 것은 홈런과 점수와 승부다. 감동은 설정만으로 붙잡기에는 너무 미끄러운 목표다. 이기느냐 지느냐, 내 편이냐 아니냐가 시종 가장 강력한 잣대인 드라마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지속되는 감동을 만들 확률은 시즌 꼴찌 팀의 승률보다 낮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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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테러 라이브> 윤영화 앵커의 헤어스타일링

캐릭터의 외양을 발명하길 즐기는 하정우는 머리칼을 가만 못 놔두는 배우다. 우정 출연한 영화들 속 모습이나 <러브픽션>의 구주월을 보라. 차기작 중 ‘앙드레 김’ 전기영화도 있으니 앞으로도 그의 ‘헤어쇼’는 창창하다. <더 테러 라이브>에서 윤영화 앵커의 헤어스타일은 방송인답게 정석에 가깝지만 상황과 감정을 민감히 반영해 뺀질거림에서 헝클어짐까지 세분화된 단계의 변화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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