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출발은 어처구니없다. 아니, 하늘에서 냉장고가 떨어져 사람이 죽다니? 도대체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얘긴가. 하지만 비극으로 인해 절규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바로 이어지면서, <시암 선셋>은 그의 한심스런 여행길로 우리를 인도한다. 무척이나 복없는 어느 남자의 여행담으로 말이다. 페리는 영국 컬러회사의 연구원이다. 그의 직업적인 희망은 아내와 여행갔을 때 본 ‘시암 선셋’ 색을 만드는 일이다. 아내가 갑작스런 사고, 다시 말해서 허공에서 떨어진 냉장고로 인해 숨을 거두자 페리에겐 불행이 뒤따른다. 그는 휴가를 얻어 여행권을 들고 곧장 호주로 향한다. 여행길에서도 별로 운이 따르질 않는다. 버스가 인적없는 들판에서 뒤집히는 통에 그는 승객과 며칠을 억지로 지내야만 한다. 매력있는 여성인 그레이스와 가까워지지만 그녀는 아쉽게도 이미 남자가 있다.
<시암 선셋>은 색채의 의미를 강조하는 영화다. 페리라는 남자가 찾아헤매는 ‘시암 선셋’이라는 색은 아마도 사랑의 느낌에 가까운 색인지도 모른다. 즉, 이 색깔을 찾아헤매는 페리라는 남성의 여성편력기라고 칭해도 어색하지 않다. 영화는 로맨틱코미디의 영원한 고전인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어느날 밤에 생긴 일>(1934)의 플롯을 되풀이한다. 여행과 우연한 마주침, 그리고 어찌어찌하여 엮어질 수 없는 운명적 커플이 어떻게 성공적으로 결합하는지의 과정을 보여준다. 맛깔스런 주변부 캐릭터는 성사될 남녀의 성공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호주에서 마주친 이상한 여행객, 불친절한 운전기사,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 등 개성있는 인물이 여럿 얼굴을 내민다. <시암 선셋>은 아무것도 새로운 것이라곤 없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는 태도 역시 갖추지 않은 장르영화지만 미운 구석이라곤 없는 훈훈한 코미디물이다. 탁 트인 호주의 풍광만으로도 영화보는 운치가 있다. 재미있는 건 감독 존 폴슨이 스크린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배우이기도 하다는 사실. 직접 출연하고 감독까지 겸하는 그의 최근 출연작은 오우삼 감독의 <미션 임파서블2>다. 믿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