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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토리얼] 어둔 밤에 손짓하기
이영진 2013-07-08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영화를 예술영화전용관에서 상영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 7월4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미래창조과학부와 함께 발표한 ‘콘텐츠 산업 진흥계획’의 일부다. 제한상영관이 없는데 제한상영가 등급을 부여하면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영화계 안팎의 볼멘소리에 대해 그동안 묵묵부답으로 일관해왔던 정부가 제도 개선 의지를 밝힌 것이다. “창조시대에 걸맞은 등급심의 제도를 마련하겠다”는 취지에 따라 영화부문 이외 분야에서도 심의제도 완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게임물 등급분류에 있어 민간 자율성 확대, 뮤직비디오 사전 등급분류제도 폐지, 만화업계의 웹툰 자율심의 제도화” 등도 주요 내용에 포함됐다.

규제보다 지원을, 심의보다 자율을 강조한 문체부의 이번 발표는 일단 박수를 보낼 만하다. MB정부가 출범 초기 보였던 광폭 행보와 비교하면 특히 그렇다. 5년 전, 문체부는 주요 업무를 모두 물리치고 대운하 사업, 4대강 정비 사업, 촛불시위 대응 등 ‘정부의 주요 정책들을 홍보’하는 데에만 열을 올렸다. 그것뿐인가. 노골적인 코드 인사와 공공성을 훼손하는 정책을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로 추진해 전 국민적인 비난 여론에 직면했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문화 분야에 있어 별다른 공약을 내놓지 않았던 현 정부가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일정한 청사진을 내놓은 것은 다행이고 반길 일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뜯어보면 기대는 이르다. 아니, 실망할지도 모른다. 올해 영화진흥위원회가 선정한 전국의 예술영화전용관은 모두 19개 극장(스크린 수 25개)이다. 서울 지역 예술영화전용관은 9개 극장(스크린 수 10개)에 불과하다.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는 영화가 전국의 예술영화전용관을 모두 차지한다고 해도 스크린 수가 25개관을 넘지 않는다. 참고로 예술영화전용관은 정부 보조금 없이는 운영이 어렵고, 대부분 단관 극장이라 여러 편의 영화를 교차 상영한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뒤 결국 재심의를 받기 위해 <뫼비우스>의 문제 장면을 삭제했던 김기덕 감독은 이번 정부의 발표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영등위의 제한상영가 등급 부여에 대한 비판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정부는 보다 명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영화인들은 제한상영관이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땅을 치는 것이 아니다. 제한상영가 등급이 창작자들의 표현의 자유와 성인 관객의 권리를 명백히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본질이다. 정부가 이를 모르지 않는다면,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영화를 예술영화전용관에서 상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이번 발표는 여론에 떠밀린 미봉책일 뿐이다. “창의적 콘텐츠 산업 육성으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창조경제 견인”을 목표로 한다고 정부는 말했다. 영화인들이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정부의 의지는 의심과 불신의 눈초리를 피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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