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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혜리의 요즘 뭐 읽어?] 그 방으로 가자
이다혜 2013-07-01

<방의 역사> 미셸 페로 지음 / 글항아리 펴냄

어떤 책은 방에서만 볼 수 있다. <방의 역사>도 그렇다. 나체의 여자가 잠들어 있는 표지 때문에, 혹은 크기와 무게 때문에 마치 가구처럼 길보다 방에 어울린다. 무엇보다 내용이 그렇다.

조르주 뒤비와 더불어 <사생활의 역사>를 함께 집필한 미셸 페로의 <방의 역사>는 역사와 예술을 통해 보는 방의 이야기를 담았다. 예컨대 다수의 문학 작품은 모두 같은 곳, 즉 침실, 좀더 넓은 의미로는 집필실로 불리는 밀폐된 작은 공간에서 태어난다. 그곳은 사색과 회상의 장소다. 게다가 침실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핵심 주제다. 카프카의 작품에 등장하는 “땅굴”에 사는 정체불명의 동물의 머릿속에서는 침실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그는 침실을 꺼리는 만큼이나 고독을, 인적이 드문 공간을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된 방도 있다. 왕의 방이다. 베르사유 궁전에서는 왕의 침실이 단연 중요한 공간이 된다. 1785년 왕의 침실에 장식된 진홍색 벨벳 양탄자들에서 떼어낸 금의 무게는 60kg이나 되었다. 그곳은 왕을 위한 약식 무대이자 신전의 역할을 했는데, 왕이 이 공간을 떠나면 왕의 침실은 사람들에게 공개되었고, 방문객은 왕의 침대 앞에서 경의를 표했다고 한다. 루이 14세 시절에만 해도 왕과 왕의 침실에 접근하는 데만 수백 가지의 규정이 있었지만 루이 16세에 이르면 이런 규정들이 해이해진다. 여기에 대한 미셸 페로의 첨언은 이렇다. “의례가 웃음거리가 되면 만사가 두려워진다.” 어떤 방의 역사는 나라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특히 관심을 끄는 장은 ‘사적인 방’과 ‘닫힌 방’이다. 현대사회에서 맹렬하게 추구되는 공간이자 추방되는 공간으로서의 방들이 여기 등장한다. 우리는 침대에서 인생의 3분의 1 이상을 보낸다. 침대는 밤과 낮의 구분을 구체화하고 개인과 밤의 어두운 결합을 용인해준다. 무엇보다 누군가의 방으로 초대받는다는 것은 사랑의 가능성을 상징한다.

사색에 잠겨 글을 쓰고, 사랑을 나눌 때 방은 낭만적이고 열린 공간이 되지만, 모든 관계를 내부에 묶어두고 잠가버릴 때, 외부에서 훔쳐보기를 허락하지 않는 생각에 빠져 글을 쓸 때(폴린 레아주가 도미니크 오리라는 필명으로 쓴 <O 이야기>가 여기 등장한다), 그리고 처벌이나 치료를 위해 방에 갇힐 때는 섬처럼 고립된다.

미셸 페로는 아프리카나 극동 지방의 침실 혹은 그것에 상응하는 것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고백하고 따로 쓰지 않았다. 그러니 이 책을 덮으며 궁금해지는 책은, 누군가 아시아에서의 방이 갖는 의미를 써주는 일이다. 동양화에서 방은 어떻게 나타나며, 한/중/일의 작가들은 방 안의 삶을 어떻게 묘사했는가 하는 것, 21세기에 속한 당신과 나의 방이 얼마나 한국적이지도 동양적이지도 않은 공간으로 변화했는가 하는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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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방으로 가자 <방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