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마케터들의 업무 환경을 개선하겠다. 직업인으로서의 영화마케터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5월30일 CGV압구정에서 열렸던 영화마케팅사협회(Korean Film Marketers Association, KFMA) 창립총회에서 초대 회장으로 선출된, 영화홍보대행사 영화인 신유경 대표가 영화마케팅사협회의 목표를 밝혔다. 영화마케팅사협회에는 영화인, 퍼스트룩, 올댓시네마, 딜라이트, 더홀릭컴퍼니, 레드카펫, 무비앤아이, 메가폰, 시네드에피, 언니네홍보사, 영화사 하늘, 이가영화사, 이노기획, 엔드크레딧, 워너비펀, 필름마케팅 팝콘, 호호호비치, 흥미진진 등 총 18개 영화홍보대행사, 93명의 영화마케터가 가입했다. 창립총회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6월5일, 논현동에 위치한 영화인에서 신유경 초대 회장을 만나 영화마케팅사들이 조합을 만든 이유와 앞으로의 활동 계획부터 물었다.
-영화마케팅사협회의 초대 회장을 맡았다. =이리저리 상황을 재고 있었다면 못했을 것 같다. 워낙 즉흥적인 판단을 즐기는 성격이라 감행할 수 있었던 것도 있고, 협회가 이제 막 생겼는데 너무 망설이면 삐거덕거릴 것 같았다. 2011년 한국영화기자협회에서 주는 올해의 영화홍보인상을 받으면서 “영화마케터로서 내가 얻은 노하우와 경험을 후배들이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에 사용하고 싶다”고 소감을 남긴 적이 있다. 20여년간 영화마케터로 일하면서 내가 받은 혜택에 대해 책임져야 할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올해 3월 첫 임시모임을 가졌다. =2011년 기준으로 총 40개의 영화마케팅사가 사업자로 등록됐지만 현재는 18개사로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몇년 사이 회사들이 절반이나 문 닫은 이유가 무엇이겠나. 매년 물가는 상승하고, 경력에 따라 직원들에게 연봉 인상도 해줘야 하는데 지난해부터 홍보 대행료가 동결됐다. 업무는 늘어났는데 대행료가 그대로면 결과적으로 매출은 지속적으로 떨어진다. 올해 2월에 한국영화단체연대회의 2차 포럼이 있었다. 그때 한국영화단체연대회의 이춘연 대표가 마케팅사협회를 만들어 연대회의에 들어오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자는 취지로 CJ엔터테인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쇼박스, NEW 등 투자배급사와 마케팅사를 한자리에 불러모았다. 첫 모임에서 직접적인 성과는 없었지만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었다.
-협회 결성을 위한 준비에 있어 가장 주력한 건 뭐였나. =협회의 성격과 회원 범위를 어떻게 하느냐가 핵심이었다. 모이는 이유가 마케팅사들의 현실적인 문제 때문이니까 일단 마케팅사와 소속 직원들 중심으로만 구성하기로 했다. 언제 시작을 할지, 이사진을 어떻게 구성할지는 그다음 과제였다. 본연의 업무로도 워낙 바빠서 2주에 한번씩 모이거나 이메일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창립총회에서 발표한 활동 계획은 협회 소속 마케터들의 업무 환경 개선과 자긍심 고취, 두 가지 사항이다. =매체 환경이 워낙 다양해져서 기사검색만도 어마어마한 일이다. 인터뷰도 진행해야 하고, 영화 한 편당 보도자료를 100개 넘게 써야 한다. 각 업체들이 요구하는 정보도 때맞춰 넘겨줘야 한다. 꼼꼼히 살펴서 좋은 기획을 내고 싶어도 시간에 쫓겨 불가능하다. 근무시간 넘기는 건 일도 아니다. 개봉이 가까워지면 집에도 못 들어간다. 청운의 꿈을 안고 일을 시작한 마케터들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지치지 않을 수 있겠나. 우리에겐 직원이 자산이다. 한 사람이 오래 일을 해야 전문화되고, 그런 인력이 모여 하나의 시스템으로 안정화가 될 텐데 일찌감치 지쳐서 나가버리니 심각한 문제다. 직원들이 “대표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하며 찾아오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머리가 아파온다.
-업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표준계약서 도입이 시급해 보인다. =일하는 항목이 수치화돼야 표준계약서를 만들 수 있는데 우리 일은 업무를 수치화하기가 쉽지 않다. 갑자기 파업을 하는 식으로 업계의 질서를 한번에 무너뜨리고 싶지도 않다.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 중이다. 가령 개봉일이 연기됐을 경우 마케터의 일도 늘어나는 셈인데 이에 대한 기회비용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을까. 스코어 경신할 때마다 수고했다고 대중없이 주는 인센티브보다는 업무량에 대한 정확한 추가 대행료를 책정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마케터들의 직업적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선 업무 과정상의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 =과정을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 의사결정자가 적었던 예전엔 양질의 아이디어도 더 많이 내게 되고 판단도 빨랐는데, 요즘은 상대해야 할 클라이언트가 많아지면서 의사결정 과정이 비효율적으로 변했다. 밑에서 수많은 사람이 의견을 조율해 내놓은 아이디어를 위에서 싫다고 한마디 하면 다시 처음부터 진행해야 한다. 늘 바쁘고 급하게 일이 진행되다 보니 조금만 더 손보면 괜찮은 기획이 될 것도 그냥 넘겨버린다. 또 예전엔 마케터가 했을 기획을 요즘은 대형 투자배급사 마케팅팀이 많이 가져가서 정작 우린 잡무만 하는 경우가 많아졌으니 성취도나 만족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영화인 신유경 대표가 영화마케팅사협회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었을 때 후배 마케터들은 “그만한 적임자도 없다”는 반응이었다. 클라이언트와 대행사가 수직적 관계를 맺고 있는 다른 산업에 비해 오랫동안 파트너 관계를 구축하려고 노력해 온, 그의 도도한 기질이 후배들이 떳떳하게 일을 하는 데 많은 힘이 되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 성격을 잘 모르는 대기업 투자배급사의 한 임원은 “홍보대행사 대표가 실장처럼 일하지 않고 대표 행세를 한다”고 오해를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사람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그의 둥굴둥굴한 성격”이 올댓시네마 채윤희 대표같은 선배 마케터와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어린 마케터 사이를 원활하게 연결하는데 적합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어쨌거나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며 카피라이터의 꿈을 키워온 그가 93명의 동료 마케터의 권익을 챙겨야 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1990년 이화여대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백화점 판촉팀에 들어갔다가 금방 그만두고 나왔다. =적성에 안 맞았나보다. 방송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에 광고론을 들으며 카피라이터로서의 꿈을 키웠다. 예전에 천호동에 목산백화점이라고 호텔과 같이 운영하는 백화점이 있었다. 판촉도 마케팅이니까 판촉팀에 입사했는데 백화점의 존폐가 불투명해져서 얼마 안 있다가 나오게 됐다. 마침 우진필름에서 영화기획실 카피라이터를 모집하기에 냉큼 들어갔다.
-우진필름에서 썼던 카피가 궁금하다. =오래전 일이라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인도차이나>와 <라스트 모히칸>의 카피를 쓰고 자랑스러워했던 것 같다. 카피보단 마케팅 컨셉이나 전략 기획을 더 잘했다. <라 빠르망>과 키에슬로프스키의 ‘세 가지 색’ 시리즈가 특히 만족스러웠다. ‘세 가지 색’은 ‘삼색의 사랑의 열병’이란 컨셉으로 <레드> <화이트> <블루>로 기획했다. <에린 브로코비치>의 경우 당시 로맨틱코미디 열풍이 불 때였는데, 그 바람에 편승하지 않고 ‘통장에 16달러밖에 없던 여자의 성공기’라는 컨셉으로 진행했던 기억이 난다.
-1995년 우진필름에서 나와 삼성영상사업단이 유일한 클라이언트였던 홍보대행사 ‘무한’을 설립했다. 마케팅에 관한 개인적인 비전이 있었나. =젊을 때라 별 생각이 없었다. (웃음) 그땐 영화사에서 자체적으로 마케팅을 할 때라 홍보대행사가 따로 없었다. 마케팅만 전문으로 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 우진필름에 있다 수입사 베어엔터테인먼트를 차린 이서열 대표가 <중경삼림>을 보여주었다. 당시 상당히 낯선 영화였지 않나. 그분은 마땅찮아했는데 내 눈엔 너무 재밌는 거다. 홍보할 사람도 없던 김에 내가 가져왔다. 첫 작품이 잘되니 일이 몰리더라. 그렇게 마케팅한 영화들이 <바베트의 만찬>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라 빠르망> <일 포스티노> 같은 아트영화들이었다. 삼성영상사업단의 B라인이었지. (웃음)
-1999년 ‘무한’을 접고 삼성영상사업단 김충원 전무와 함께 영화인을 설립했다. ‘무한’에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나름 고민했을 것 같다. =역시 큰 고민은 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는 생각이 난다. 한집하고만 하면 안된다는 것. 왜냐고? 클라이언트가 망하면 우리도 망하니까. (웃음) 영화인은 마케팅사로 출발한 건 아니었고, 여러 업무 중 마케팅을 내가 맡게 됐다. 사업팀이 안 하려고 했던 <록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 <엑시스텐즈> 같은 영화를 당시 배급이사였던, 현재 CJ CGV 김정아 상근 고문이 가져와서 하게 됐다. 두편 다 잘돼서 비로소 메이저영화를 할 수 있었다.
-2002년 7월 영화인을 인수했다. =강제규필름 최진화 대표가 김충원 전무의 삼성영상사업단 사수였다. 최 대표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김충원 전무를 부르자 김 전무가 가겠다고 하는 거다. 나는 어떡하라고. (웃음) 어떡하긴, 팔자려니 하면서 영화인을 인수해 독립했다.
-보통 대표가 실장 역할을 하는 다른 홍보사와 달리 영화인의 대표 자리는 대표 역할에 집중한다. =처음에야 이 일 저 일 안 가리고 다 했지. 하지만 1년차 신입이 해야 할 일과 3년차 대리가 해야 할 일은 구분돼야 하는 게 맞다. 회사가 안정적으로 굴러가려면 인력이 안정돼야 한다. 직원들에게 일을 맡길 때 그들의 능력을 의심하면 안된다. 윗사람의 믿음이 있어야 아랫사람도 잘할 수 있다. 이미 바깥에 시어머니들이 많은데 나까지 그들의 시어머니 노릇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웃음)
-누군가는 신유경 대표가 왜 전처럼 현장에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는지 불만을 내비치기도 한다. =한명이 해도 될 일을 굳이 두명이 하는 게 싫다. 한번쯤 현장에 응원하러 가는 건 일로도 볼 수 있지만, 현장에 가는 게 업무에 관한 충성도를 가늠한다는 데엔 동의하지 못하겠다. 사무실에서 좋은 기획을 생각하는 게 오히려 나의 할 일인 것 같다. 내가 현장 가서 발로 뛰고 일하면 7, 8년차 실장들이 내 뒤치다꺼리만 하게 될 텐데 그건 좀 아니지 않나.
-지금은 매체 환경이 다양해졌다. 각기 다른 성격의 창구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나. =일단은 생산해내야 하는 콘텐츠의 양이 너무 많아져서 전체적인 업무의 질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매체의 영향력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그에 맞게 우리의 대응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80여개 매체가 모두 같은 선상에 있기 때문에 최대한 공평하게 대응해줘야 한다. 가령 해외 정킷에 참여할 수 있는 인원이 15명밖에 안되면 아무 매체에도 그 자리를 안 주게 된다. A를 보내면 B에서 항의가 들어올 텐데 그게 곤란해서다. 일본의 경우 매체들이 인터뷰 신청서를 제출한다. 배우 누구를 이런 관점에서 이렇게 인터뷰를 할 예정이며 예상되는 비용은 얼마라는 식이다. 이런 체계가 필요할 것 같은데 우리나라 매체에 그렇게 해달라고 하면? 난리나는 거지.
-촬영 현장 공개가 드물어진 지 몇년 됐다. =한마디로 비용 대비 효율성이 떨어져서다. 한 군데를 열면 우르르 오겠다고 하는데 너무 많아진 기자들을 일일이 통제하기가 힘들다. 제작여건상 현장에선 보러 오라고 하루 빼주는 것도 어려우니까 당연히 많은 인원을 현장에 데려갈 수가 없다. 기사 내보내는 문제로도 매체쪽에서 수많은 대응을 요구한다. 그래서 웬만하면 열지 않기로 한 거다.
-한 홍보사가 같은 날 개봉하는 두 영화의 홍보를 동시에 맡는 현상도 벌어진다. =전적으로 그건 개봉일 연기의 문제다. 개봉일이 다른 영화를 동시에 맡고 있었는데 한 영화의 개봉이 밀려서 같은 날 두 영화가 만나는 경우는 우리도 정말 난감하다. 셋이 하던 일을 다섯이 해도 힘에 부친다고 하지 않았나. 개봉시기가 되면 바쁘니까 다른 팀이 내부 업무를 도와주곤 했는데 두팀이 같은 날 개봉이면 서로 돕지도 못하고 상황은 더 힘들어진다.
-어쨌든 18개 마케팅사와 93명의 회원을 이끌게 된 입장에서 어깨가 무거울 것 같다. =별로 안 무거웠는데 인터뷰를 거듭하면서 무거워졌다. (웃음) 일을 기획하고 벌이는 걸 워낙 좋아해서 괜찮은데 자꾸 주변에서 축하 문자가 온다. 내가 겁도 없이 덥석 일을 벌였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