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액터/액트리스
[류현경] 현경아, 나랑 연애하자
김성훈 사진 최성열 2013-06-13

류현경

<앵두야, 연애하자>(감독 정하린, 개봉 6월6일)는 류현경이 2년 전 출연했던 장편영화다. 그가 맡은 28살 앵두는 신춘문예에 번번이 낙방하는 작가 지망생이다. 앵두가 남자친구와 이별하던 날, 부모는 로또 1등에 담청되면서 세계 일주를 떠난다. 앵두는 친구 소영(하시은), 윤진(강기화), 나은(한송희)과 함께 살기로 한다. 영화는 30대를 코앞에 둔 네 여성의 사랑과 우정을 그린 성장담이다. 당시 20대였던 류현경은 “20대와 30대 사이에서 연애, 진로 등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앵두에게 공감해 영화에 출연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류현경은 서른이 넘었다. 2년 전 자신의 모습을 다시 보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니, 지난 2년 동안 배우 류현경에게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얼마 전, 류현경은 <앵두야, 연애하자>를 남몰래 다시 봤다. “지금의 얼굴과 너무 달라 깜짝 놀랐”다. “그때는 제 모습을 너무 많이 보여준 것 같아요. 아무래도 영화 속 공간이었던 집을 빌려 출연한 배우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찍었으니까요. 자연스러운 모습이 좋기도 하지만 카메라를 전혀 의식하지 않아서 제 실제 모습이 많이 까발려진 것 같아요.” 극중 앵두는 29살 류현경을 꼭 닮았다. 머리를 질끈 묶고, 맨 얼굴을 그대로 드러내고 다니는 것까지 빼닮았다. 그때의 류현경은 숨길 줄 몰랐다. 감추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드러내기 위해 안달하지도 않았다. 실제 삶뿐 아니라 영화를 찍을 때도 그랬다. 어떤 캐릭터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하고 준비하기보다 현장에서 의상을 입고 메이크업을 하면 자연스럽게 캐릭터가 완성된다고 믿었다. “그때는 계산하지 않으면서 연기했어요. 그냥 막 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그 태도만으로는 묻어갈 수 없는 나이가 됐어요.” 앵두가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한뼘씩 성장하는 것처럼 그 역시 여러 편의 작품을 겪으며 몇뼘 성장했다. 치밀하게 계산하지 않고, 치열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수중에 지닌 밑천이 금세 드러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카메라 앞에서 철들다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게 <앵두야, 연애하자> 이후 찍었던 SBS 주말드라마 <맛있는 인생>(2012) 때였다. 툭 치면 자동적으로 대사를 쏟아내야 했다. 몇날 며칠 밤을 지새워야 하는 드라마는 상대 배우의 연기와 현장 분위기에 좌지우지되는 류현경과 맞지 않았다. 그때 그는 “현장에 가도 안되는 게 있음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그때부터 마음가짐을 새롭게 했어요. 촬영 전 캐릭터를 철저하게 연구하고 준비해야겠다, 현장에 가서는 상황에 맞게 적응하려고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리고 작업의 과정을 기록해 카메라 앞에서 제대로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렇게 말해도 좋을까. 이제 철든 건가? “하하, 그렇게 철이 들었나봐요.”

드라마 <맛있는 인생>을 기점으로 확실히 그의 연기는 달라졌다. 한국영화 역사에서 가장 섹시한 대사를 읊던 향단이(<방자전>(2010))를 제외하면 그녀가 20대 때 연기한 캐릭터의 매력이 번뜩 떠오르지 않는다. 섹스를 글로 배웠던 주인공 최강희 옆에서 제대로 섹스어필한 매력을 펼쳤던 경선(<쩨쩨한 로맨스>(2010)),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 때문에 가출을 일삼는 엄마 사이에서 제멋대로 구는 여고생(<굿바이 보이>(2010)) 등을 떠올리려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맛있는 인생> 전에 연기했던 캐릭터는 어쩌면 무색무취에 가까웠는지 모른다. 반면 <맛있는 인생> 이후의 출연작에선 비중과 상관없이 캐릭터의 입체적인 면모가 더 풍성하게 살아난다. 올해 개봉했던 <전국노래자랑>의 미애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류현경의 무색무취한 캐릭터에서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마산 출신인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경상도 사투리는 영화 속 공간인 김해 어디서나 볼 법한 사람의 말투였다. 남편 잘못 만난 탓에 미용실을 운영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던 미애의 얼굴에는 ‘고생’이라는 단어가 딱 새겨져 있었다. 덕분에 가수가 되려는 남편 봉남(김인권)의 꿈이 더 욱 애절했고 봉남, 미애 부부 사이에 긴장감이 형성되면서 이야기는 중심을 지킬 수 있었다.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단순히 나이를 먹어 가능했던 게 아니다. 과거에 비해 캐릭터에 접근하는 방식이 더욱 끈질겨졌다. 촬영 들어가기 전 그는 이종필 감독을 따로 만나 “이번 작품만큼은 화면 속 제 모습을 보고 창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각오를 드러냈다. 프리 프로덕션 때부터 감독과 시나리오작가를 붙잡고 늘어지며 대사를 일일이 수정했다. 그의 ‘설레발’은 시나리오 각색에만 그치지 않았다. 출연 횟수가 그리 많지 않음에도 스탭들과 함께 촬영지인 김해 숙소 생활을 자처했다. “진상이었어요, 진상. 촬영 초반, 서울에 잠깐 올라왔는데 너무 이상한 거예요. 그러고는 다시 촬영장에 갔는데 사투리가 안 나오더라고요. 불안해서 제작진에 얘기해 원룸을 한달 계약해 그 곳에서 생활했어요. 촬영이 있는 날에는 촬영하고, 없는 날에는 김해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어요. 미애 같은 분들이 어디에나 있더라고요.” 그 때 본 수많은 미애의 모습이 류현경의 얼굴 여기저기에 녹아들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만족할 만한 결과물을 얻기 위해 촬영 들어가기 전부터 끝날 때까지 스스로에게 엄격하게 대하고, 긴장감을 유지한 건 <전국노래자랑>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2년 동안 달라진 건 또 있다. “맡고 싶은 역할이 따로 없고 들어오는 대로 연기했던” 그도 이젠 연기에 조금씩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제게는 다양한 모습이 있어요. 그런데 들어오는 시나리오는 여전히 한정되어 있어요. 그럴 때마다 오디션에 참가해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싶은 거예요.” 요즘 그의 연기 욕심은 “제 나이대의 캐릭터를 만나는 것”이다. “<굿바이 보이>의 여고생 역할을 27살 때 했는데, 17살 때 연기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거예요. 앵두를, 미애를 선택한 것도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하고 싶은 욕구 때문인 것 같아요.” 그의 바람대로라면 조만간 멜로드라마나 로맨틱코미디에서 연애를 하는 류현경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연애를 하는 삼십대의 류현경이 어떤 여자인지 무척 궁금하다. “현경아, 나랑 연애하자”고 고백 하고 싶을 만큼 그의 매력에 빠질 준비가 되었다.

magic hour

류현경이 꼽은 <앵두야, 연애하자>의 그 장면

<앵두야, 연애하자>에서 류현경이 연기한 앵두는 항상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친구다. 류현경은 “그런 앵두가 친구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또 다른 친구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게 통쾌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장면이 앵두가 친구들과 함께 친구 소영과 소영을 괴롭히는 유부남이 있는 경찰서에 쳐들어가 소란을 피우다가 유치장 신세를 지는 시퀀스다. “영화의 주요 공간인 집이 아닌 곳에서 친구 넷과 함께 등장하는 게 좋았어요. 촬영 후반부에 찍어 다른 배우들과 호흡이 잘 맞았어요. 조금 오글거릴 수 있는 장면이지만 저도 모르게 한마음이 되는 순간이었어요.”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