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에피소드4: 새로운 희망>, <괴물>(왼쪽부터).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포스터를 기억하는가.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미간을 찌푸린 채 먼 곳을 응시하는 해리슨 포드의 얼굴을, 혹은 깊은 눈매와 멋스러운 잔주름을 기억하는가. 클래식한 화풍으로 표현된 <스타워즈> 시리즈나 <E.T.>와 <백 투 더 퓨처> 시리즈는 어떤가. 비교적 최근작이라 할 수 있는 <헬보이>나 <해리 포터> 시리즈를 떠올려도 좋다. 다만 당신이 정말 기억해야 하는 한 가지가 있다. 이 숱한 명작들을 관통하는 이름, 드루 스트루잔이다.
하룻밤 만에 스케치한 <인디아나 존스> 포스터
1947년 오리건주에서 태어난 드루 스트루잔은 몹시 가난한 유년을 보냈다. 대학에 갈 때가 되어 전공을 정해야 했던 그는 정통 미술과 상업 일러스트 사이에서 갈등했으나 생활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는 길을 택했다. 언젠가 그는 말했다. “나는 가난하고 배고픈 아이였다. 가족들은 나의 꿈이나 재능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아무것도 없던 어린 시절엔 휴지 조각에라도 그림을 그렸다. 나에게 주어진 것은 오로지 그것뿐이었기 때문에.” 대학 졸업 뒤엔 소규모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스탭으로 일하며 뮤지션들의 LP앨범 커버디자인 작업을 담당했다.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지낸 5년이지만 그 와중에도 스트루잔은 나름대로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이어갔다. 비치보이스, 비지스, 블랙사바스, 글렌 밀러 등 당대의 뮤지션들이 이 이름없는 아티스트의 고객이었다. 그러던 중 스트루잔은 앨리스 쿠퍼의 솔로 데뷔 앨범 ≪웰컴 투 마이 나이트메어≫의 커버디자인을 담당하게 된다. 이 앨범 커버는 이후에 ‘<롤링 스톤>에서 꼽은 가장 훌륭한 앨범 커버 100위’(1991) 안에 드는 수작으로 평가받았으나 무명의 아티스트였던 스트루잔의 수입은 여전히 적었다.
스튜디오 일을 그만둔 스트루잔은 친구와 함께 ‘펜슬 푸셔’라는 이름의 디자인회사를 차렸다. ‘펜슬 푸셔’는 펜으로 하는 작업을 업으로 삼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평생을 그림과 함께할 그의 운명은 어쩌면 그 이름에서부터 정해졌는지 모른다. 입에 풀칠조차 겨우 하는 형편이었지만 이때의 8년은 훗날 스트루잔의 아이덴티티와도 같은 에어브러시 테크닉을 연마하는 시간이 돼주었다. 1975년 B급 호러영화 <개미 왕국>으로 본격적인 포스터 아티스트로서의 커리어를 연 스트루잔은 마침내 1977년, 운명과도 같은 조지 루카스와 만나게 된다.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의 개봉을 준비하며 환상적인 우주를 잘 표현해줄 수 있는 아티스트를 찾았다. 에어브러시 작업 전문가인 찰스 화이트 3세가 적역이라 생각해 작업을 맡겼지만 그는 “인물을 그리는 것은 어렵다”는 이유로 스트루잔에게 <스타워즈>의 인물을 그리게 했다. 1978년에 제작한 <스타워즈>의 재개봉 포스터는 스트루잔의 출세작이 됐다. 톰 정과 함께 디자인한 <스타워즈>의 오리지널 포스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조지 루카스는 스트루잔이 그린, 키치한 재개봉 포스터를 대단히 흡족해했다. 그 포스터는 그 뒤로 쭉 조지 루카스의 집에 걸려 있다.
<레이더스>(1981), <람보>(1982), <괴물>(1982), <블레이드 러너>(1982), <백 투 더 퓨처> 시리즈 등 80년대에 제작된 영화 포스터의 대부분은 스트루잔의 손을 거쳤다. 스트루잔의 작업속도는 무척 빨랐다. 스튜디오는 급박한 일이 생기면 무조건 스트루잔을 찾아왔다. 스트루잔의 포스터 중에서도 손꼽히는 명작인 <괴물> 포스터는 단 하루 만에 완성됐다. <레이더스>를 작업하면서는 스티븐 스필버그와도 손잡게 됐다. <레이더스>는 대흥행을 했으나 <인디아나 존스: 마궁의 사원>(1984)의 포스터는 다른 사람에게 맡겨졌다. 그 포스터는 스필버그의 마음에 차지 않았고, 대안은 하나뿐이었다. ‘빠른 손’ 스트루잔은 역시 하룻밤 만에 스케치를 그려왔고, 그 결과는 알다시피 지금과 같다. <스타워즈>나 <인디아나 존스>가 아니더라도 스트루잔에게 한번 맡겨진 시리즈는 두번 다시 다른 사람에게 가지 않았다. 스트루잔은 빠른 손의 아티스트였을 뿐 아니라 완벽한 아티스트이기도 했다.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 못지않게 프랭크 다라본트 감독과도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다. 다라본트와의 인연은 <쇼생크 탈출>(1994), <그린 마일>(1999), <미스트>(2007)의 포스터와 DVD 커버로 쭉 이어졌다. 다라본트는 <미스트>의 주인공, 데이빗의 직업을 영화 포스터 아티스트로 설정하는 것으로 스트루잔에게 보답했다. 스트루잔을 향한 다라본트의 경의의 표시에 다름없었다.
새 <스타워즈>의 포스터를 기대하며
스트루잔이 언제나 상승세를 탄 것은 아니다. <캐논볼2>(1982)는 처참하게 흥행에 실패했는데 몇몇 영화 관계자들은 스트루잔에게 실패의 책임을 돌렸다. 포스터에 인물을 열세명 그려넣은 것이 불길하기 짝이 없다는 이유였다. 결국 스트루잔은 <캐논볼2>의 비디오버전 커버에 인물을 한명 더 그려넣었다. 이때의 혹평을 스트루잔은 오래도록 기억한 모양이다. <구니스>(1985)의 포스터를 그릴 땐 절벽에 매달린 인물들 ‘일곱명’의 구도가 숫자 7의 모양이 되도록 그리는 센스를 발휘했다. <구니스>는 어마어마하게 흥행했고, 스트루잔의 명성은 다시 하늘로 치솟았다. 1991년에 맡게 된 <스타트렉> TV시리즈의 25주년 기념 포스터는 스트루잔 커리어의 절정이었다. 그는 다시금 완벽한 걸작을 만들어냈고, 지금까지 만들어진 스트루잔의 모든 작품들은 불멸의 가치를 얻었다.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뒤에도 그는 여전히 순수하고 열정적인 아티스트였다. 하지만 스트루잔은 2008년 9월, “컴퓨터그래픽으로 모든 디자인이 해결되고 있다. 나와 함께 일했던 아티스트들은 더이상 작업을 하지 않는다”며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스트루잔은 가끔 영화 포스터나, 기념 일러스트 등을 그렸고 자신의 뒤를 이을 예술가들을 위한 DVD도 제작했다. 2015년부터 연이어 개봉할 <스타워즈> 시리즈의 포스터도 스트루잔이 작업할 가능성이 크다. 그가 아니라면 이토록 완벽한 <스타워즈>의 포스터를 누가 그릴 수 있단 말인가.
<인디아나 존스: 마궁의 사원>, <구니스>(왼쪽부터).
히치콕의 왼팔
그의 경쟁자 솔 바스(1920~1996), 타이틀 디자인
드루 스트루잔처럼 반(半)영화인으로서 깊은 인상을 남긴 이는 또 있다. <싸이코> 샤워실 장면이 어쩌면 히치콕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가정해보면 어떨까. 영화 타이틀 시퀀스를 독립적인 디자인 영역으로 개척한 디자이너 솔 바스의 아이디어였다는 설도 나돈다. 뉴욕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그는 1946년, 캘리포니아에 자신의 스튜디오를 열었다. 할리우드와 연이 닿은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장기인 그래픽디자인을 영화디자인에 접목한 그의 디자인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오토 프레밍거 감독의 <황금팔을 가진 사나이>(1955)의 타이틀은 그의 과감하고 실험적인 디자인이 잘 녹아든 대표작이다.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1958)과 <싸이코>(1960)의 타이틀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상징적이고 명료한 디자인 방식은 기업로고를 제작하는 데도 적격이었다. 60년대 이후로는 AT&T, 벨 시스템, 콘티넨털 항공, 유나이티드 항공, 워너 커뮤니케이션 등 거대 회사의 로고 제작도 도맡았다. 타이틀 디자인의 세계로 가자면, 그 유명한 <007>의 오프닝 타이틀 디자인을 담당한 모리스 바인더(1925∼91)도 빼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