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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의 공허함으로 훼손되는 육체 <셰임>

브랜든 설리반(마이클 파스빈더)은 외관상 완벽한 남자다. 좋은 직장과 멋진 외모에 잠들지 않는 도시, 뉴욕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통유리 아파트까지 소유한 여피족이다. 그러나 그런 화려한 외면 뒤에 음습한 비밀이 숨어 있다. 그는 섹스 중독자다. 통상적으로 섹스가 타인과의 찰나적이나 소통을 욕망하는 데서 비롯되는 행위라면 그에게 섹스는 소통의 가능성이 차단되었을 때 혹은 소통해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날 때만 가능한 행위다. 그의 깔끔하고 나무랄 데 없는 집 안 곳곳에는 도색잡지들이 숨겨져 있고, 직장과 집의 컴퓨터에는 음란물이 그득하며, 여자친구 대신 콜걸들이 그의 집을 방문한다. 지면(紙面) 위의 벗은 여자들은 당연히 말이 없고 그들의 신체는 오로지 성적 욕망을 자극하기 위해서 조각나 있다. 그들은 브랜든에게 대화를 요구하지도 정서적 교감을 갈망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브랜든의 욕망이 배설되기만을 기다리는 하수구 구멍과 같다. 그의 집을 방문한 콜걸은 그와 물 한잔도 나눠 마시지 않는다. 그것이 브랜든이 안심하고 그들과 섹스할 수 있는 이유다. 그래서 그의 섹스는 격렬하지만 열정적이지 않고 대상이 있어도 자위에 가깝다.

브랜든의 외관상의 완벽함은 동생 씨씨(캐리 멀리건)의 방문으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씨씨는 정확하게 브랜든과 정반대 상황에 처해 있다. 그녀는 일종의 관계 중독으로 자신의 삶을 자기 의지와 능력으로 통제할 수 없기에 늘 의존할 수 있는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밤무대 가수인 그녀는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살다가 브랜든에게 그의 집에 잠시 머물게 해달라로 부탁한다. 브랜든은 씨씨의 어리광과 응석 그리고 무엇보다 ‘오빠잖아’라는 혈연적 유대감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그녀에게 거실 소파를 내준다. 이후 씨씨는 브랜든이 견고하게 유지했던 순수한 ‘자기 위안’의 세계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다. 그에게 무엇인가를 계속 부탁하고, 공감과 위로를 요구하고, 브랜든의 유부남 상사와 관계를 맺고 매달린다. 그녀가 그렇게 하면서도 당당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브랜든이 그녀의 오빠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누군가를 계속해서 책임져야만 했던 브랜든의 트라우마와 누군가에게 계속 짐짝 취급을 당해왔던 씨씨의 트라우마는 서로 원인과 결과일 수 있다. 관계를 기피하든 관계에 매달리든 결국은 그들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외로움과 절망감이다. <헝거>를 통해 인간의 몸이 어떻게 정치적 가치를 수행하는 공간으로 전이되는지를 탁월하게 보여주었던 스티브 매퀸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정신의 공허함으로 훼손되는 육체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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