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마티아스 쇼에나에츠)는 5살 난 아들과 함께 누나 집에 얹혀 지낸다. 힘들게 구한 나이트클럽 경호원 일을 하던 어느 날, 싸움에 휘말린 범고래 조련사 스테파니(마리온 코티아르)를 집에 데려다주며 인연을 맺게 된다. 이후, 범고래 쇼 도중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한 스테파니는 무릎 아래 두 다리를 절단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자신의 처지를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스테파니는 문득 알리가 떠올라 그에게 전화를 건다. 한편, 알리는 과거 복싱과 킥복싱을 했던 경력을 살려 불법 도박 격투시합에 참여하며 돈을 벌고 있다. 그저 각자의 힘든 삶을 이어가던 두 사람이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다.
우리는 불쑥 두 남녀를 만나게 된다. 알리가 어떻게 어린 아들을 떠맡게 됐는지, 스테파니와 그의 동거남은 왜 파국으로 치닫게 된 것인지, <러스트 앤 본>은 별다른 설명없이 두 남녀를 선보인다. 말 그대로 ‘1%의 우정’이랄까. 그런 배경설명이 없기에 그 둘의 기묘한 관계를 그저 운명처럼 받아들이게 된다. “고작 500유로를 벌려고 싸움판에 나서는 거냐”는 여자의 물음에 남자는 “당신도 고래 좋아해서 그렇게 된 거 아냐? 난 그냥 이렇게 싸우는 게 좋아”라고 답한다. 그렇게 그들은 깊은 절망의 끝에서 ‘닥치고 사랑’을 시작한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그 무엇에도 의지하지 못하는, 그러면서도 은근슬쩍 자신감 없는 질투를 표현하는 마리온 코티아르의 연기도 좋고, 아들의 정신연령과 별 차이 없어 보이는 ‘짐승남’을 연기한 마티아스 쇼에나에츠는 단연 ‘발견’이다. 그는 일터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스테파니에게, 사람 앞에서는 온순하지만 다른 동물들에게는 난폭한 포식자인 바로 그 범고래 같은 남자다. 과거의 삶이 어떠했는지 영화는 가르쳐주지 않지만, 짧은 이별을 경험한 그들의 삶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알리의 부상당한 주먹처럼 그저 부러진 뼈가 단단하게 다시 붙듯 그들의 사랑은 영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