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학교>가 또 한번 스타 졸업생을 배출했다. 드라마 <학교 2013>의 흥수, 김우빈이 그다. “장혁 만들어주겠다”며 그를 캐스팅한 이민홍 PD의 말은 어느덧 과장이 아니게 됐다. 2011년에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로 연기를 시작한 김우빈은 2년 새 <신사의 품격> <학교 2013>을 거치며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복을 풀어젖힌 청춘의 아이콘으로 대중의 눈을 사로잡기 시작한 그는, 곽경택 감독의 신작 <친구2>의 주연을 맡아 ‘진짜 남자’ 연기에 도전할 예정이다. 1편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은 동수(장동건)의 아들로 분해 신세대 건달의 진수를 보여주고 싶다는 김우빈을 만나 신작 <친구2>와 그간의 이야기를 들었다.
교실 맨 뒤쪽 창가 자리에 앉은 남자아이의 이미지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본다. 그들은 대개 존재만으로도 반 친구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고, 말보다는 행동이 앞서며, 교실보다는 학교 밖 세상에 마음이 이끌려 종종 어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고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말해왔던 것 같다. 187cm의 훤칠한 키에 선 굵은 인상과 낮은 목소리, 그리고 어떤 고집이 엿보이는 눈빛. 김우빈은 창가 자리에 앉을 남학생을 찾는 이들이 마음속으로 그려왔을 듯한 이미지를 지녔다. 데뷔작이었던 드라마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미친 미르’부터 <신사의 품격>의 동협, 최근작 <학교 2013>의 흥수에 이르기까지 그는 학교의 테두리 안에 머물지만 쳇바퀴 돌 듯 살아가는 또래 학생들의 삶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역할을 맡아왔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그러한 이미지 안에 어떤 감정들을 담아내느냐다. 배우로서의 김우빈이 빛나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단정치 못한 교복 차림의 삶에도 어른을 흉내낸 겉멋과 ‘가오’ 너머의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점을 이 배우는 일깨워줬다. <학교 2013>의 흥수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의 꿈이 무산되고 악에 받쳐 “막살기” 시작한 흥수는, 가장 좋은 친구였으나 과거 자신에게 가한 상처 때문에 멀어진 남순(이종석)이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 그런 그가 결국 담벼락 밑에서 남순에게 “나한테 축구 말고는 너밖에 없었는데. 축구 날리고 죽고 싶었을 때 너라도 그냥 있었어야지!”라며 울부짖을 때, 시청자의 마음도 함께 저려왔다. 김우빈에게는 이미 어른의 외양을 가졌으나 여전히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마음을 지닌 청춘의 성장통을 보는 이의 마음에 이식하는 재주가 있다. 그건 마음먹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뛰어난 기교 덕분에 가능한 것도 아니다. 오로지 특정 배우에게만 허락된, 태생적인 재능 같달까. 언젠가 <학교 2013>의 이민홍 PD가 고독하고 쓸쓸한 느낌이 좋아 그 느낌 하나만으로 김우빈을 캐스팅했다고 말한 것처럼, 그에게는 타고난 특유의 어둠과 여운이 있다. 그러니 유아인의 뒤를 이을 청춘배우가 지금 막 탄생했다고 말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김우빈의 개성은 12년 만에 제작을 가동한 영화 <친구2>의 새로운 주연배우를 물색하던 곽경택 감독마저 사로잡았나보다. 쪽대본을 받으며 <학교 2013>의 밤샘 촬영 중이었던 김우빈은 매니저가 <친구2>의 대본을 들고 메이크업 장소로 들어오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현중아(김우빈의 본명이다-편집자), 하며 형이 봉투를 건네는데 <친구2>가 딱 써 있는 거다. 난리가 났지. 그때부터 심장이 뛰고. <학교> 대본은 봐야겠는데….”
비디오를 수없이 돌려보며 조연 캐릭터의 대사들까지 모두 외울 정도로 <친구>를 좋아했던 김우빈에게 <친구2>의 캐스팅은 “꿈을 꾸는 듯한” 제안이었다. “<친구>에서 가장 멋지다고 생각했던” 준석 역의 유오성이 직접 옆에서 대본 리딩을 하고 있다는 신기함에 자기 파트를 놓치기도 했다는 일화를 들으면 영락없는 신인배우 같지만, “<친구2>와 곽경택 감독님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는 각오만큼은 허투루 넘길 말이 아니다.
<친구2>에서 그는 1편에서 죽음을 맞이한 동수의 아들 성훈을 연기한다. 아버지 동수조차 그 존재를 알지 못했던 성훈은 “상처가 생활화되어 있을 정도”로 아픔이 많은 남자다. 성훈에 대한 김우빈의 첫인상은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건달이긴 한데, 마냥 폼잡고 겉멋 들었다고 하기엔 그 속을 헤아리기가 너무 어려운 아이였다. 한마디로 복잡했다. 지금도 성훈이를 이해해가는 과정에 있다.” 이제 당분간 <친구2>에 ‘집중’하지 않겠냐는 기자의 말을 김우빈은 ‘올인’으로 정정했다. 그는 영화를 위해 잡아놨던 스케줄도 취소하고 울산 사투리와 씨름하고 있는 중이다(<친구2>는 부산을 무대로 했던 <친구>와 달리 울산과 부산이 같은 비중으로 중요하게 묘사되는 영화라고 인터뷰 자리에 동석한 김병인 PD가 귀띔했다). 그런 그에게 지금의 최우선순위는 “성훈의 일대기”를 작성하는 것이다. 매번 새로운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인물의 일대기를 작성한다는 그는 최근 “2010년의 건달은 어떤 모습일지”가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라고 말한다. <친구>가 네 친구의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되기까지의 성장담을 조명했다면, <친구2>는 세 세대를 풍미했던 건달들의 이야기다. 2010년을 살아가는 성훈과 80년대를 주름잡았던 준석(유오성), 60년대에 활동했던 준석의 아버지 철주(주진모)가 이 영화의 세 주인공이다. 이미 곽경택 감독의 페르소나로서 ‘진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줬던 유오성, 주진모와 달리 김우빈에게 <친구2>는 본격적인 성인 연기를 검증받아야 할 작품이다. 영화 속 성훈은 그가 주로 연기해오던 캐릭터보다 10년을 훌쩍 뛰어넘은, 스물여덟살의 남자이기 때문이다. 올해로 스물다섯이 된 김우빈의 현재와 더 맞닿아 있는 나이. 교복을 벗고 슈트를 입을 그의 성인 연기는 배우 김우빈의 잠재력을 가늠할 수 있는 향후의 척도가 될 거다.
고작 2년 전, 데뷔작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촬영할 때만 해도 “상대방의 대사도 들리지 않았고, OK 사인이 나기만을 기다렸다”는 김우빈은 <신사의 품격>에서 하늘 같은 선배들의 배려를 배우고, <학교 2013>에선 연기의 즐거움을 알아가며 무섭게 성장하는 중이다. 그러나 누구도 확신하지 않았던 모델에 대한 꿈을 키운 중학교 시절부터, 그는 매일 규칙적으로 계란 30개와 닭가슴살을 먹고, 친구들이 공부할 시간에 운동을 하며 무섭게 자신을 단련해온 사람이기도 하다. 이제는 “좋은 사람,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김우빈이 평소 가장 좋아하는 말은 “신은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자에게만 시련을 준다”는 것이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김명민)가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했던 이 대사엔 이어지는 말이 있다. “신은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에게만 시련을 줍니다. 고로 우린 신에게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갑시다. 가서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 얼마나 대단하고 멋진 사람들인지 보여줍시다.” 이는 <친구2>에 ‘올인’하며 즐거운 시련의 순간을 보내고 있는 김우빈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magic hour
<학교 2013>에서 흥수가 남순이와 라면을 먹으며 화해하는 장면이 있었다. 촬영 30분 전에 대본을 받았는데, 대사도 많고 해서 외우기 바빴다. 종석이와 한번도 안 맞춰보고 촬영에 들어간 건 처음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상대 배우의 눈을 보며 호흡을 맞춰봤다. 그런데 대사를 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막 나더라. 그게 어떤 느낌인지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쫙 소름이 돋았다. ‘이게 뭐지?’ 하고 스스로 되뇌었다. <학교 2013>을 찍으면서 유독 그런 강렬한 순간들이 많았다. 이전까진 현장에서 긴장도 많이 하고 떨었는데, <학교 2013>은 또래 배우들이 많고 나 스스로도 욕심낼 수 있는 장면들이 많았던 것 같다. 담벼락에서 남순이와 울면서 속얘기를 하고 화해하는 장면, 그리고 억울하게 경찰에 연행되는 흥수에게 남순이가 “너 아니잖아. 왜 너야?”라고 묻자 “막살았으니까”라고 말하는 장면도 굉장히 가슴 아프면서도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