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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아 바시코프스카] 인디아라는 이름의 통과의례
김성훈 2013-03-07

<스토커>의 미아 바시코프스카

욕망에 안주하거나 이끌려 다니지 않는 여자. 그래서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자신의 묘한 얼굴을 견고히 갖추고 역할의 전형성에서 벗어난 여자. 영화에서 미아 바시코프스카는 대체로 그랬던 것 같다. ‘미아 바시코프스카’라는 생소한 이름을 처음으로 전세계 영화팬들에게 알린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1). 그가 연기한 앨리스는 호기롭게 무기를 휘두르며 당당하게 위기에 맞선다. 비명을 꽥꽥 지르며 이리저리 도망다니기에 바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앨리스와 달라도 한참 달랐다. 구스 반 산트의 <레스트리스>(2011)에서 그는 아름다운 죽음을 기다리는 말기 암 환자치고는 씩씩하고 대견해서 보는 내내 응원해주고 싶었다(그래서 더욱 슬펐다). <에브리바디 올라잇>(2010)에서 맡았던 아네트 베닝과 줄리언 무어 레즈비언 커플의 딸은 또 어떤가. 출생의 비밀이 궁금해 아빠를 찾아나서는 딸 역이었는데, 두 엄마의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며 살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기원을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도와주고 싶을 정도로 안쓰러우면서도 기특했다.

“노, 땡큐”의 단호함

미아 바시코프스카가 <스토커>에서 연기한 인디아 역시 전형적인 사춘기 소녀와 거리가 멀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줄 알고,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들을 줄 아는 소녀. 이제 막 열여덟살을 맞은 인디아는 “남들보다 훨씬 감수성이 예민한 소녀”다. “작은 일도 큰 일처럼 받아들일 만큼 내성적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인디아의 생일날, 자신을 각별하게 아꼈던 아버지 리처드 스토커(더모트 멀로니)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인디아는 어머니 이블린 스토커(니콜 키드먼)와 단둘이 남게 된다. 그리고 존재조차 몰랐던 아버지의 동생 찰리 스토커(매튜 구드)가 모녀 앞에 나타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심신이 지친 어머니는 삼촌 찰리를 반갑게 맞이하고, 세 사람은 한집에 살기 시작한다. 인디아는 엄마와 얄궂은 관계를 가지려는 찰리를 경계하다가도, 스토커처럼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는 찰리에게 조금씩 흥미를 느낀다.

자신을 장막치고 찰리를 바라보는 인디아의 눈빛은 곧 바깥세상에 대한 동경과 경계다. 사춘기라는 알을 깨고 나온 성년 직전의 설렘과 조심스러움이기도 하다. 신중한 걸음걸이, 속마음을 도통 알 수 없는 묘한 표정, 상대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태연한 행동, 무미건조한 말투 등 영화 내내 인디아는 감정을 감추고 또 감춘다. 그런 미아 바시코프스카를 두고 박찬욱 감독은 만족해했다. “간혹 젊고 욕심이 많은 배우들이 자신이 가진 것을 한번에 발휘하고 싶어 하는데 미아 바시코프스카는 기다리고 판단할 줄 안다. 그런 절제된 연기가 관객을 계속 궁금하게 하는 것 같다. 그 점에서 관객과의 만남에서 우위에 설 줄 아는 배우이다. 눈동자만 미세하게 움직여도 관객의 주목을 확 끌어당기는 표현력을 지녔다.” 절제된 연기는 인디아가 속내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인디아, 이블린, 찰리 세 사람의 식사 시퀀스. 엄마 이블린은 끊임없이 인디아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지만 인디아는 “거기까지만”이라는 대답으로 거절한다. 그 말투가 “어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엄마의 지적에 그는 “쏘리” 대신 “노, 땡큐”로 또 한번 쿨하게 받아친다. 어른의 배려 없이 혼자 힘으로 성장하려는 비범한 소녀다. 식사장면과 함께 미아 바시코프스카는 필립 글래스가 작곡한 <네개의 손을 위한 피아노곡>을 매튜 구드와 함께 연주한 시퀀스를 “가장 즐겁게 촬영했던 순간”으로 꼽았다. “인디아의 속내가 직접적으로 드러난다”는 이유에서다. 감정을 절제하는 동안의 마음 고생이 얼마나 컸는지 어림 짐작할 수 있다. “그 장면만 하루 종일 촬영했어요.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이고, 찰리와의 관계에 있어 어떤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장면이기도 했죠. 그런 이유로 많은 노력을 했어요. 특히 <네개의 손을 위한 피아노곡>을 현장에 틀어놓은 채 찍었기 때문에 촬영 내내 귀가 무척 즐거웠어요. (웃음)”

시시 스페이섹처럼 되고파

데뷔한 뒤 지금까지 할리우드와 호주를 오가고 있는 호주 출신의 이 배우가 기특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할리우드를 동경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그는 촬영하지 않는 기간에는 호주에서 여느 소녀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삶을 산다. “할리우드는 폐쇄적인 것 같아요. 반면 고향인 호주에 돌아가면 정상적인 생활을 하면서 안정을 되찾고,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어서 좋아요.” 그러다보니 어딜 가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스타보다는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배우를 닮고 싶어 한다. 미아 바시코프스카는 <캐리>의 시시 스페이섹과 최근 만났던 일화를 들려줬다(그는 시시 스페이섹의 팬으로 유명하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배우가 아니에요. 그의 외모며, 성격이며, 분위기가 영화 속 그가 맡은 인물에게 고스란히 반영되죠. 그래서 시시 스페이섹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차기작은 케이트 블란쳇과 함께 호흡을 맞추는 <캐롤>과 보바리 부인을 맡은 <마담 보바리>. 숨기면서 드러내는 그의 놀라운 마술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참, 감수성이 지나치게 예민했던 영화 속 인디아와 달리 미아 바시코프스카의 열여덟살 시절이 어땠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어린 나이에 영화를 많이 찍었던 시기라서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어요. 결코 인디아 같진 않았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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