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얼 데이 루이스, 제니퍼 로렌스, 앤 해서웨이, 크리스토프 왈츠(왼쪽부터).
현지시각으로 2월24일에 열린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 오스카를 세 차례나 가져갔던 메릴 스트립은 전세계의 수많은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링컨>의 대니얼 데이 루이스를 호명했다. 아카데미 최초 3회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점잖은 말투, 하지만 감격을 숨기지는 못했던 대니얼 데이 루이스는 “스필버그가 링컨 역에 1순위로 선택했던 배우가 메릴 스트립”이었다며 농담 속에 시상자에 대한 존경과 감사를 담았다. 여우주연상은 유력한 후보였던 제시카 채스테인을 제치고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제니퍼 로렌스가 차지했다. 무대에 올라오면서 한 차례 넘어진 그녀는 “이건 정말 미친 일이다”라며 격한 표현으로 기쁨을 드러냈다. 주로 맡아왔던 배역과 달리 똘똘하고 선한 인상으로 마이크 앞에 선 크리스토프 왈츠는 수상소감 끝에 쿠엔틴 타란티노를 바라보며 “너는 겁내지 않고 산을 올라 용을 죽이고 불의 바다를 건넜다”라고 영화 속 캐릭터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 자신에게 두번이나 남우조연상을 안겨준 감독에게 애정과 우정을 한껏 내비쳤다. 크리스토프 왈츠와 마찬가지로 올해 골든글로브, 영국 아카데미, 미국 아카데미 조연상을 석권한 앤 해서웨이는 특유의 함지박만 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연기경력 최고의 해를 보낸 기쁨을 여러 사람과 나누었다.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작 리스트
작품상 <아르고> 남우주연상 대니얼 데이 루이스 <링컨> 여우주연상 제니퍼 로렌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남우조연상 크리스토프 왈츠 <장고: 분노의 추적자> 여우조연상 앤 해서웨이 <레미제라블> 감독상 리안 <라이프 오브 파이> 각본상 쿠엔틴 타란티노 <장고: 분노의 추적자> 각색상 크리스 테리오 <아르고> 촬영상 클라우디오 미란다 <라이프 오브 파이> 음향상 앤디 넬슨, 마크 페터슨, 사이먼 헤이예스 <레미제라블> 음향편집상 퍼 홀버그, 캐런 베이커 랜더스 <007 스카이폴>, 폴 N. J. 오토손 <제로 다크 서티>(공동수상) 편집상 윌리엄 골든버그 <아르고> 미술상 릭 카터, 짐 에릭슨 <링컨> 의상상 재클린 듀런 <안나 카레니나> 시각효과상 빌 웨스텐호퍼, 길리엄 로셰론, 에릭-잔 드 보어, 도널드 R. 엘리엇 <라이프 오브 파이> 분장상 리사 웨스트콧, 줄리 다트넬 <레미제라블> 주제가상 아델, 폴 엡워스 <007 스카이폴> 음악상 마이클 다나 <라이프 오브 파이> 외국어영화상 미하엘 하네케 <아무르> 단편영화작품상 숀 크리스텐슨 <커퓨> 단편애니메이션상 존 카스 <페이퍼맨> 장편애니메이션상 마크 앤드루스, 브렌다 채프먼 <메리다와 마법의 숲> 단편다큐멘터리상 숀 파인, 앤드리아 닉스 파인 <이노센테> 장편다큐멘터리상 말릭 벤젤룰, 사이먼 친 <서칭 포 슈가맨>
리안
“영화의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생애 두 번째 오스카를 쥔 리안은 머리 위를 우러러보며 말했다. 영화 속의 주인공 파이 파텔처럼 리안은 다문화적인 유연성을 지닌 감독이다. 하지만 그는 <라이프 오브 파이>를 통해 자신이 이야기와 정서뿐만 아니라 첨단 기술을 다루는 데에도 탁월한 능력을 지녔음을 입증해냈다. 이번 수상을 통해 그는 3D의 새로운 가능성을 이끌어낸 안목은 물론이고, 호랑이 리처드 파커와 수십만톤의 물을 능숙하게 조련해낸 연출적 역량을 인정받았다. 영화에 참여한 모든 이와 원작자 얀 마텔에게 두루 감사를 전한 리안은 “땡큐, 세세, 나마스테”라고 말을 끝맺어 영화의 교훈을 몸소 실천했다.
아델
새로운 007 가수의 탄생이다. 아델이 출세곡 <Rolling in the Deep>을 함께 작업한 폴 엡워스와 23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 <007 스카이폴>의 주제가로 오스카를 거머쥐었다. 아델을 섭외한 것은 곱씹어볼수록 ‘신의 한수’였다. 왜 아레사 프랭클린이나 에타 제임스와는 자주 비교했으면서, <골드핑거>를 부른 전설적인 007 가수 셜리 뱃시와의 유사성은 생각하지 못했을까. 풍부한 성량, 굵직한 톤에 섞인 약간의 쇳소리, 그리고 드라마틱한 보컬 연출로 아델은 새로운 시대의 007 영화에 어울리는 현대적인 섹슈얼함을 부여했다. 이번 수상으로 <007 스카이폴>은 48년 만에 007 시리즈에 오스카를 선물한 작품이 됐다.
세스 맥팔레인
유쾌한 활력을 불어넣어보려 했으나, 도가 지나쳤다. <19곰 테드>의 영화감독 겸 배우 세스 맥팔레인은 이번 오스카 시상식을 경박함으로 가득 채웠다. 가끔씩 재치있는 멘트를 던져 분위기를 돋우기도 했으나, 초반에 여배우들의 이름과 그들의 가슴이 노출된 작품명을 죽 읊은 노래 <우린 당신 가슴을 봤어요>(We Saw Your Boobs)가 너무 강했다. 객석을 비추는 카메라에는 나오미 왓츠와 샤를리즈 테론의 당황한 표정이 적나라하게 잡혔다.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감상을 이렇게 남겼다. “어이가 없어서 입이 안 다물어지는 대참사였다. 사회자는 무능했고, 연출에는 일말의 위트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