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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날갯짓 ‘파닥파닥’ 5년 뒤를 기대하라
이주현 2013-03-05

애니 ‘범람’ 시대, 한국의 극장용 창작애니메이션의 현주소를 살피다

<사이비>

“애니메이션 전성시대? 빛 좋은 개살구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오성윤 감독은 단호하게 말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관객 220만명을 극장으로 불러모으면서 한국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오성윤 감독은 한국에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이 여전히 험난하다고 말한다. 다른 애니메이션 감독들도 애니메이션 수입/배급업체들이 현재 누리고 있는 호황이 자신들과는 별개의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생각해보자. 겨울방학 시즌을 맞아 일주일에 한두편씩 꾸준히 애니메이션이 개봉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애니메이션은 <뽀로로 극장판: 슈퍼썰매 대모험>이 유일하다. 애니메이션 ‘범람’ 시대에 한국에서 극장용 창작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감독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들은 또 현재 어떤 작업을 진행 중인지 제작 상황을 살펴봤다.

오성윤 감독은 <마당을 나온 암탉>으로 ‘대박’을 터뜨렸다. 오성윤 감독의 차기작은 많은 영화인들의 관심사였다. 하지만 그는 “그 관심이 한국 애니메이션 전반에 대한 관심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잘라 말했다. “투자 환경이 좋아진 것 같지 않다. 투자자들을 만나면 여전히 실사영화에 비해 애니메이션은 리스크가 크다고 한다.” 현재 오성윤 감독은 유기견에 관한 애니메이션을 준비 중이다. “철저히 가족용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관객의 연령대가 다양하지 않았다. 이번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 생각이다.”

오성윤 감독은 애니메이션 범람 시대에 살아남는 법을 ‘가족용 애니메이션’에서 찾는다. 유아용 애니메이션에는 한계가 있고, 어린이만을 타깃으로 해선 한국 애니메이션이 성장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극장용 <뽀로로>가 흥행에서 크게 선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예로 들며 “유아용 TV애니메이션 시리즈가 극장용으로 만들어질 때는 또 다른 영화적 가치를 창출해내야 한다”고 했다. “제작비가 커지니까 중국, 캐나다, 미국 등 외국으로 눈을 돌리는데, 개인적으로는 내수시장에서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영화를 만드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국내에서 평가받지 못한 작품들이 외국에서 얼마나 좋은 평가를 받을지 의문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판권은 46개국에 팔렸다. 오성윤 감독 은 판권이 팔린 국가의 수나 수익보다 중요한 건 “우리의 정서가 담긴 애니메이션을 외국인들이 눈여겨봤다는 사실”이라면서 앞으로 “가족문화의 가치를 염두에 둔 가족애니메이션을 장르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4년쯤 뒤면 오성윤 감독의 그 시도와 결과물을 두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연상호 감독의 <사이비> 올해 개봉

장형윤 감독은 중편 <무림일검의 사생활> 이후 6년 만에 장편애니메이션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를 내놓는다. 아니, 내놓을 예정이다. “6월쯤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작업이 끝날 것 같다. 배급 전쟁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올해 안에 개봉하는 게 목표다.”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얼룩소로 변한 청년과 소녀로 변한 인공위성 ‘우리별 1호’가 만나, 청년의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는 이야기다. 장형윤 감독 특유의 감성과 스토리텔링 기법이 그대로 담겨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는 아직 배급사를 찾지 못했다. 스튜디오 ‘지금이 아니면 안돼’를 꾸려가고 있는 장형윤 감독은 저예산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스튜디오는 배급과 관련해 걱정이 많다고 말한다. “메이저 배급사 입장에선 큰돈이 안되는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지금은 블록버스터 실사영화, 중소 규모의 실사영화와 예술영화와 경쟁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해외 애니메이션들과도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장형윤 감독은 소설 쓰는 늑대가 주인공인 자신의 단편 <아빠가 필요해>의 장편 버전도 기획 중이다. 그는 애니메이션 감독은 늘 다음 작품을 겹쳐 준비하기 때문에 제대로 쉴 시간이 없다고 말하면서, 프랑스의 폴리마주 스튜디오가 어쩌면 이상적인 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폴리마주 스튜디오는 장편과 단편, 실험작품과 상업적인 작품을 고루 만든다. 상업적인 작품을 만들어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 그 수익으로 돈 안되는 영화 여러 편을 만들고, 돈 떨어질 때쯤 다시 돈되는 영화를 만들고, 그래야 감독도 좀 놀 수 있지 않을까. (웃음)”

연상호 감독은 올해 <사이비>를 선보인다. <돼지의 왕>이 개봉한 지 1년 반 만이다. 장편애니메이션 제작기간이 짧아야 3~4년인 것을 고려하면 연상호 감독의 작업 속도는 상당히 빠르다. 그 속도의 비결을 물었더니 그는 “열심히 하니까”라는 무심한 대답을 들려준다. “일단 투자가 한번에 이뤄진 게 제일 컸다. 기획부터 프로덕션까지 11개월쯤 걸렸는데, 제작비가 많이 들지 않아서 투자를 잘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연상호 감독도 인정했다. “우리는 엄청 싸게, 빨리 만든다.” 그럼에도 해외에서 애니메이션을 사들이는 가격이 워낙 낮아 “기간을 길게 잡고 작업하는 다른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은 힘든 싸움을 한다”고 덧붙였다. 사이비 교단을 둘러싼 스릴러물 <사이비>는 올해 상반기 개봉예정이다.

‘연필로 명상하기’의 안재훈 감독은 <소중한 날의 꿈>을 끝내고 바로 한국단편문학시리즈 작업에 들어갔다. 안재훈 감독은 관객과의 소통방법을 꾸준히 고민하면서 묵묵히 스튜디오를 굴려가고 있는 경우다. 한국단편문학시리즈 중 <메밀꽃 필 무렵>은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다. 지금은 <봄봄>과 <운수 좋은 날>의 작업을 진행 중이다. 교육방송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는 이 단편 시리즈는 세편이 하나로 묶여 극장에서 개봉될 예정이다. 장편 <도래샘 숲>도 기획에 들어간 상태다. <도래샘 숲>은 서울에 살고 있는 도깨비와 정녕들이 사람들에게 실망해 자신들의 터전을 뜨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안재훈 감독은 제작비가 마련되는 대로 꾸준히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했다. 그는 “제작기간이 길다든가, 인지도가 낮다든가 하는 애니메이션이 갖는 한계가 분명히 있지만 그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선배 감독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메밀꽃 필 무렵>

<마당을 나온 암탉> 흥행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난해 <파닥파닥>으로 신선한 감각을 뽐낸 이대희 감독은 로봇과 한 소녀가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을 준비하고 있다. “쉽게 설명하면 로봇이 나오는 <레옹>이다.” 지금은 각본을 최종 정리하고 있는 단계. <파닥파닥>이 좋은 평을 들었기에 차기작 작업에 들어가기가 훨씬 수월했겠다고 하자 이대희 감독은 “눈물을 흘리며 데굴데굴 굴렀다”는 의외의 대답을 들려줬다. “<파닥파닥>이 흥행에선 쫄딱 망했다. 거의 재기불능이었다. <파닥파닥> 개봉 전후로 바뀐 게 있다면 그전엔 시나리오를 써서 투자사를 찾아가면 문전에서 쫓겨났는데 지금은 제작사나 투자사에서 시나리오가 완성되면 가져오라고 먼저 손내미는 것 정도다.” 일단은 2015년 개봉을 목표로 새 작업에 매진할 계획이라고 한다.

오성윤 감독은 말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원 오브 뎀(One of Them)이 될 거란 말이 있었는데 결국 그 말이 맞았다.” 애니메이션 한편의 성공이 애니메이션판 전체를 바꾸진 못했다는 뜻이다. 상황은 그리 좋아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경쟁해야 할 상대도 많아졌다. 크리에이티브를 고민하며 오늘도 묵묵히 펜을 들어 그림을 그리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언제까지 희망의 근거라고 여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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