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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통령으로 대동단결-친구들 모여라
송경원 2013-01-31

10주년 맞아 극장판으로 선보이는 뽀로로, 그 흥행의 비밀을 파헤치다

울던 아기도 울음을 그친다는 아이들의 대통령, 뽀로로가 10주년을 맞아 드디어 <뽀로로 극장판: 슈퍼썰매 대모험>으로 제작되었다. 뽀로로를 사랑하는 아이들이 있는 한 아이들을 사랑하는 부모들은 당연히 극장으로 발길을 향하겠지만 아이들이 왜 그토록 뽀로로를 좋아하는지 정도는 알고 가는 것이 예의 아닐까. 이제 뽀로로도 10살이 되었으니 그간의 발자취를 더듬어볼 때도 되었다. 10년간 번성한 뽀롱마을의 비밀을 한번 파헤쳐보자.

어린이들 사이에서는 그 어떤 연예인보다도 인기가 좋다. 누군가에겐 고마운 육아도우미다. 어떤 이들에게는 그저 아동용 애니메이션일 뿐이다. 혹자는 몸값이 수천억원에 달한다며 호들갑을 떨기도 한다. 대한민국 아동 애니메이션 시장을 지배하고 계신 제정일치 절대왕정의 군주, 통칭 뽀통령, 또는 뽀느님 ‘뽀롱뽀롱 뽀로로’의 이야기다. 2003년 EBS에서 첫 방영될 당시만 해도 이 정도의 반응을 이끌어내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이 이등신의 동그란 펭귄 한 마리는 한국 유아 애니메이션 시장의 지형도를 바꿔놓았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아무도 알지 못하는 세계

거시적인 수치로만 봐도 비교 불가다. 2012년 기준 매출 누적액은 1조원이 넘었고 130여개국에 수출되었으며 브랜드 가치가 7천억원에 육박한다는 분석도 나왔다(2009년 서울산업통상진흥원 기준으로는 3893억원이다). 미시적인 현상으로 보면 더하다. 뽀로로에 얽힌 수많은 간증의 경험담(그렇다. 간증이다. 서너살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서 터져나오는 증언들을 듣다보면 다른 표현이 생각나지 않는다. ‘뽀느님’이라는 말 그대로 가히 종교의 영역이라 할 만하다)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날밤을 새워도 모자랄 지경이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든 문화적인 관점에서든 뽀로로는 하나의 아이콘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우리가 과연 그만큼 뽀로로를 잘 알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회의적이다. 뽀로로를 둘러싼 무수한 반응과 말들에도 불구하고 정작 뽀로로와 친구들이 살고 있는 뽀롱마을의 속사정을 아는 이는 별로 없어 보인다. 단편적인 뉴스로 접하는 숫자와 신드롬에 가까운 소문들을 듣고 그저 피상적으로 대단하다고 한수 접어두고 있는 건 아닌가. ‘대단하다’는 말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여기저기 토스 되고 있을 뿐, 그나마 뽀로로의 대단함을 논하는 근거들도 대부분 숫자에 기댄 까닭에 소위 콘텐츠‘산업’ 측면 또는 ‘신성장동력’이라는 매우 세속적인 기준에서 욕망과 기대가 뒤섞여 있다. 뽀로로를 찬양하는 말들이 ‘<쥬라기 공원> 한편이 자동차 몇대 분량의 수출효과’라며 호들갑 떨던 뉴스들과 겹쳐 보이는 건 지나친 우려일까. 보건소 소아과 벽에 스티커로 강림하시어 겁에 질린 수십명 어린이들의 눈물을 단번에 그치게 했다든지, 주전자에 엉덩이가 낀 세살짜리 아이를 꺼내려 119 소방대원들이 구조작업을 벌이는 동안 아이가 울지 않도록 뽀로로 영상으로 달랬다는 믿을 수 없는 간증 현장의 제보들과의 괴리가 그런 걱정을 더한다. 아이들의 뽀로로에 대한 반응은 그야말로 초자연적이다. 사람들은 이해되지 않는 현상을 목격했을 때 대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마치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 양 적당한 이유를 갖다붙이든지, 아니면 이유 따윈 아예 생각지 않고 그저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그 대단하다는 뽀로로를 제대로 설명하려는 이가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유아용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에 더욱 쉽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뽀로로도 어느덧 10살이 되었다. 아직 10년밖에 안됐냐는 이도 있을 테고, 벌써 10년이라며 놀라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10주년을 맞이한 뽀로로가 극장 진출이라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한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실상 아이들만 알고 있는 세계, 뽀로로 월드의 비밀을 파헤칠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유아용 애니메이션 전성시대

2003년 11월 뽀로로가 나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 시장의 불모지, 아니 단순한 소비시장에 불과했다. 전세계적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는 대표적인 캐릭터들, 예를 들어 ‘곰돌이 푸우’나 ‘꼬마기관차 토마스’ 등도 지속적인 애니메이션 채널을 확보하진 못한 상태였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아동용 채널의 수요를 확장시킨 것은 영국의 <꼬꼬마 텔레토비>다.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의 오랜 노하우를 지닌 영국 <BBC>는 대상 아동의 연령, 취향, 방송 목적에 따른 다양한 프로그램을 세세하게 구분하고 있는데, 그중 특히 <꼬꼬마 텔레토비>는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대표적인 프로그램이었다.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영유아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깨닫고 본격적으로 제작에 불이 붙기 시작했는데 그 선두주자가 바로 <뽀롱뽀롱 뽀로로>다. 2003년 당시만 해도 한국 애니메이션은 일본의 모델을 벤치마킹하여 완구산업과의 연계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중의 부정적 인식(교육에 유해한 콘텐츠라는 것과 질적으로 수준이 떨어진다는 오해)이 팽배해 있던 때라 유아용 애니메이션을 위한 시간 편성은 전무했다. 뽀로로는 바로 그 점을 파고들었다.

뽀로로는 당시 애니메이션으로는 이례적인 전략적 접근이었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현재 오콘, 아이코닉스 엔터테인먼트, SK브로드밴드(옛 하나로텔레콤), EBS가 공동으로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는 뽀로로는 저작권의 구성원들이 증명하듯 시작 단계부터 철저히 필요에 의해 기획 구성된 프로젝트다. 아이코닉스가 기획을 하고, 오콘이 제작을 맡았으며, 교육방송인 EBS를 통해 배포함으로써 에듀테인먼트로서의 이미지를 제고하였다. 여기에 콘텐츠가 필요했던 하나로텔레콤이 투자를 하며 밑그림이 완성되었다(당시 대북사업에 참여하고 있던 하나로텔레콤의 영향으로 뽀로로 시즌1의 52편 가운데 22편은 북한의 삼천리총회사에서 담당했다). 그 결과 첫해 로열티로만 1억3천만원을 벌어들였고 2005년부터 본격적인 흥행가도에 돌입하여 현재는 2천여개의 관련 상품, 연간 5천억원대의 시장을 움직이는 거대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지금이야 아이들이 ‘선물공룡 디보’ 인형을 들고, ‘로보카 폴리’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뽀로로 월드에 놀러가는 것이 그리 신기한 풍경이 아니지만 몇년 전만 해도 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새롭고, 거대하며, 안정적인 시장이 탄생한 것이다. 그렇다면 뽀로로가 이토록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노는 게 제일 좋은’ 눈높이 공감

뽀로로의 성공 요인에 대한 몇 가지 가설 중 설득력있는 몇몇 의견이 있다. 첫째로 동물을 의인화한 디자인이 아이들의 친밀감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곰돌이 푸우를 비롯한 디즈니의 대표적인 캐릭터들을 떠올려보면 일견 타당한 분석이다. 아이들이 동물 캐릭터를 좋아하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고 실제로 이등신의 둥근 체형이나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디자인은 아이들의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요소다. 유아용 애니메이션 대다수가 디자인에서 비슷한 노선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꼭 동물이 아니라도 괜찮다. 요컨대 핵심은 친밀감과 의인화에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과는 다른 존재와 대화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고 아이들의 경우 이같은 욕망이 좀더 적극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뽀로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유아의 행동패턴까지 공유하고 있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감정이입할 수 있는 극도의 유사체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등신의 캐릭터들이 뒤뚱거리며 걷는 모양새는 유아들의 걸음 그대로다. 뽀로로와 친구들의 각각의 성격 또한 아동집단에서 나타나는 성격들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크롱크롱’이란 말밖에 하지 못하는 아기공룡 크롱은 자신보다 어린 아이를 연상시키고, 작품 속 뽀로로는 실제로 형처럼 크롱을 챙긴다. 늘 수줍은 비버 루피, 듬직하고 조용한 백곰 포비 또한 어느 집단에서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캐릭터들이다. 뽀로로의 서사는 기본적으로 곰돌이 푸우와 유사한 측면이 있는데, 푸우 또한 각기 다른 개성의 친구들이 모여 서로의 다름을 깨닫고 어울리는 담백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제작진 역시 기획 단계에서 푸우를 어느 정도 염두에 뒀음을 숨기지 않는다. 이른바 ‘아이들의 일상’이다. 뽀롱마을은 자신들만의 독립된 공동체이며 나름의 방식으로 문제를 맞닥뜨리고 각자의 성격을 존중하여 어른들의 도움 없이 문제를 해결해내는 세계다. 그것은 대여섯살의 어린아이들이 실제로 겪을 법한 과정에 대한 체험이고, 이 지점이 공감의 직접적인 통로가 된다. 그렇게 아이들을 흉내내려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세계를 고스란히 옮겨왔기에 뽀로로는 아이들의 욕망을 대변할 수도 있다.

이는 오프닝의 가사에서도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노는 게 제일 좋아, 친구들 모여라.” 뽀로로의 서사는 이것이 전부다. 여기에 더이상 무슨 의미와 분석을 더할 필요가 있는가. 좋은 게 좋은 것, 재미있으니까 재미있는 것. 그것이 놀이의 본질적인 요소다. 5분 내외로 완결되는 이야기 구조는 어른들의 눈높이에서는 단순하기 이를 데 없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기승전결이 있는 갈등해결의 서사다. 게다가 짧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종종 비어 있어 그 자리는 아이들 스스로가 상상력을 동원하여 메워야만 한다. 아이들끼리 해결하는 세계, 무언가를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 세계, 뽀로로의 핵심은 거기에 있다. 상이한 것들이 사이좋게 함께 놀 수 있는 곳이 뽀롱마을이고 아이들은 뽀로로를 통해 다른 존재와 교감하는 방법을 익힌다. 그곳에는 유아들의 생존과 성장의 드라마가 있다. 여기에 “왜 이렇게 아이들이 좋아할까”라는 질문을 더해봤자 “뽀로로는 왜 나이를 먹지 않는가, 백곰이 왜 펭귄을 잡아먹지 않는가, 사막여우가 왜 극지방에 있는가”라는 질문과 다를 바 없다.

오히려 뽀로로의 전략적인 지점이 어른들을 향한다. 에듀테인먼트로서의 가치, 즉 교육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부모의 강박을 달래기 위해 플랫폼을 EBS로 선정했고 각 화에 짧은 교훈을 하나씩 넣어둔 것. 대개 아이들의 겉모습만을 흉내낸 애니메이션들이 교육적인 목적 위에 달콤하고 자극적인 재미를 덧씌웠다면 뽀로로는 반대로 어른들을 달래기 위한 ‘교육적’이라는 위안을 제공한다. 그야말로 아이들에 의한, 아이들을 위한, 아이들의 대통령답다.

아이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뽀로로가 극장판으로 나왔으니 흥행은 당연한 것처럼 보일 테지만 사실 문제가 그리 단순하진 않다. 무엇보다 유아 애니메이션 시장 자체가 굉장히 보수적이기에 플랫폼을 바꾼다는 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3~4살의 유아들에게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 뽀로로의 경우 원래 TV시리즈로 제작되었기에 5분 내외의 짧은 작품이었던 것에 반해 극장판은 70분 넘게 아동을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어려움도 있다. 5분의 서사를 70분에 담아야 하니 이야기는 당연히 복잡해질 것이고 눈높이도 올라갈 수밖에 없다.

극장판에 대한 우려와 가능성

다행히도 뽀로로 극장판은 처음으로 돌아가서 이 어려운 매듭을 풀려 한다. 재미있는 이야기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통한다는 단순하고 간단한 진리. 디즈니의 <라이온 킹>의 흥행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뽀로로 극장판의 이야기 구성은 제법 높은 연령대에서 봐도 그리 밋밋하지 않다. 어른들은 어른들 나름대로 동심으로 돌아가 즐길 수 있고,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좋아할 요소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층이 두터운 이야기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3D의 완성도다. TV시리즈 뽀로로의 강점 중 하나도 3D 배경의 탁월한 묘사였다. 낯선 광경에 대한 신선함은 그걸로 충분한 스펙터클이다. 뽀로로 극장판에서는 그간 테마파크 등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수차례 공연했던 외전 격의 작품들을 통해 축적된 노하우와 그 반응을 토대로 그야말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3D 화법을 시도한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충분히 검증된 독자적인 기술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뽀로로 극장판의 성패가 중요한 건 단지 10주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곰돌이 푸우>나 <토마스와 친구들>의 사례에서 보듯 유아용 애니메이션 역시 그 최종 콘텐츠는 결국 영화가 될 수밖에 없다. <뽀로로 극장판: 슈퍼썰매 대모험>은 브랜드가 다음 궤도에 접어들 수 있는가에 대한 중요한 척도가 될 작품이다. 언젠가 뽀로로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부모가 되어, 다시 아이들의 손을 잡고 극장을 찾아와 뽀로로를 함께 관람할 그날을 향한 진짜 첫걸음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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