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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사나이 슈퍼맨!
이화정 2013-01-22

<맨 오브 스틸> Man of Steel

감독 잭 스나이더 / 출연 헨리 카빌, 에이미 애덤스, 러셀 크로, 케빈 코스트너 / 개봉예정 6월13일

예고편을 돌려보고 또 돌려봤다. 이럴 수가! 없다. 빰빠바 빠빰빠빠~. 존 윌리엄스의 <슈퍼맨> 로고송이 빠졌다. <슈퍼맨>이 이럴 순 없다. 잠깐만, 호들갑 떨지 말고 현실을 직시해보자. 이건 크리스토퍼 놀란이 제작한 영화다. 각본이 <배트맨> 삼부작의 역사를 쓴 데이비드 S. 고이어니, 크리스토퍼 놀란의 사적, 공적 파트너인 에마 토머스 역시 빠질 리 없다. 한스 짐머는 이 구성의 화룡점정이다. 땅이라도 뒤엎을 듯한 전조를 내비치는 예고편의 장중한 음악은 그러니까, ‘지금까지 <슈퍼맨> 시리즈는 모두 잊어라. 슈퍼맨의 탄생, 기원, 시초, 근원 모든 걸 여기 새로이 밝히노라’라는 일종의 으름장이다. 일단 시놉시스 자체가 슈퍼맨의 정체성에 관한 고뇌다. 양부인 조너선 켄트(케빈 코스트너)가 아들 클라크 켄트(헨리 카빌)의 남다른 힘을 발견한 뒤, 그가 그 능력을 어떻게 쓸 수 있을지, 바른길을 찾아나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과정이다. 기존의 어떤 슈퍼맨보다 종교적인 성스러움이 극대화된, 지상에 강림한 신의 모습이 강조된다. 예고편만 보자니 놀란이 테렌스 맬릭풍을 염두에 둔 <배트맨 비긴즈>를 연출하는데, <테이크 쉘터>의 장면도 한번 넣어본 것 같은 형국이다. 이런데도 슈퍼맨이란다. 귀에 익고 입에까지 익은 <슈퍼맨> 로고송은 그럼 땅으로 꺼진 건가. 분위기로 봐선, 로고송이 설령 본편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한스 짐머풍의 웅장하고 다크한 기운을 입을 게 뻔하다.

요즘 블록버스터야 워낙 차고 넘치는 게 정보 아닌가. 예고편 분석부터 감독 성향, 이전 시리즈와의 연관성까지 영화가 나오기도 전에 이미 철저한 분석이 들어가니 말 다 했다. <맨 오브 스틸>을 둘러싼 언론과 팬들의 사전 진단은 ‘놀란 사단이 만드는 새로운 <슈퍼맨>’이다. 기막히게도 명색이 연출자인데 잭 스나이더는 이 분석표에서 꼬리를 감춘다. 판단의 기저에는 마블의 <어벤져스>를 시샘하는 워너브러더스의 ‘저스티스 리그’가 있다. DC 코믹스의 히어로들을 죄다 모을 궁리라면 슈퍼맨이 필요하고, 그렇다면 <슈퍼맨>을 새로운 시리즈로 제정비할 필요가 있다는 설이다. 워너로선 잭 스나이더에게 연출직을 하사했지만 <300> 한편의 성과만 보여준 잭 스나이더보단 <배트맨> 삼부작의 역사적 과업을 이룬 놀란에게 전권을 줄 수밖에 없다는 거다. 어쨌든 놀란은 “난 잭 스나이더가 조언을 구할 때만 응했다. 이건 분명 잭 스나이더의 영화”라는 것을 공공연히 밝혔고, ‘저스티스 리그’의 가능성, 조셉 고든 레빗의 카메오 출연설에 대해선 “내가 그걸 지금 말할 수 없다는 걸 알지 않냐” 같은 애매한 대답으로 질문을 피해가고 있는 중이다.

어쨌든 속단은 금물이다. ‘놀란 사단의 <슈퍼맨>’이라는 평가에 대한 반대 의견도 사실 적지는 않다. <왓치맨>과 <써커펀치>의 흥행이 비록 저조했다고 하지만, 잭 스나더이더의 <300>은 액션영화의 새로운 서막을 알린 작품이었다. 그가 놀란의 스타일에 경의를 표한다고 할지언정, 잭 스나이더의 스타일은 이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게다가 배트맨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슈퍼맨이란 점에서 놀란보다 잭 스나이더를 지지할 만한 지점도 존재한다. 당장 액션장면만 보더라도, 탈것도 기구도 없이 맨몸으로 싸우는 강철의 사나이에게 핵심은 일대일 액션장면인데, 이걸 누가 더 잘하겠나. <배트맨> 시리즈의 밋밋한 결투 장면과 <300>의 화려함을 비교한다면 게임 오버다. 단백질만 섭취하면서 몸만들기에 매진했다는 헨리 카빌의 비현실적인 몸(병색이 짙던 크리스천 베일과는 사뭇 다른)이 일단의 설명을 압도한다. 물론 문제는 제작자와 감독의 대결이 아니라 서로의 장점을 얼마나 영리하게 취할 수 있냐는 점이다. 잭 스나이더가 놀란의 어둡고 사실적인 기운을 적극 활용하되 만화와 게임이 절묘하게 믹스된 자신의 장점을 슈퍼맨의 초인적인 파워를 보여주는 데 사용한다면, 7년 전 브라이언 싱어가 <배트맨 리턴즈>로 맛본 굴욕과는 다른 긍정적 결과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배트맨 비긴즈>

<맨 오브 스틸>과 <배트맨> 삼부작의 상관성

딱 맞는 쫄쫄이를 벗었다. 대신 육중하고 견고한 특수고무 소재를 걸쳤다. 딱 봐도 배트맨 의상 같다. 총알에도 끄떡없는 소재를 연구해야 하는 인간 배트맨처럼 굳이 클립톤 행성에서 온 슈퍼맨이 그 정도 특수의상이 필요할까 싶긴 하다만. 어쨌든 굳이 애써 찾지 않아도 의상 하나부터 <맨 오브 스틸>은 놀란의 <배트맨> 삼부작과 유사점이 한 다발이다. 예고편에서 슈퍼맨의 인간세계 아버지 조너선 켄트는 말한다. “사람들은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두려워한단다.” 어디서 많이 들어봤다. <배트맨 비긴즈>에도 이런 대사가 있었다. “모르는 세계는 두려운 법이지.” 자, 예고편의 내레이션 하나 더. “그들은 비틀거리고 넘어질 것이다. 하지만 결국 너와 태양에서 함께할 것이다.” <배트맨 비긴즈>에서 어린 브루스 웨인을 향해 아버지 토머스 웨인이 말한다. “떨어지면 올라갈 길을 찾으면 돼”라고. 이쯤 되니 <맨 오브 스틸>이 슈퍼맨 삼부작의 서막이 아닐까 싶은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제발! 그렇다고 마지막에 캣우먼에게 가는 배트맨적인 배신만은 난 반대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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