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하고도 초반인데도 여전히 마음이 어수선하다. 대통령선거 후유증과 끝없는 추위가 상승작용을 일으킨 탓이리라. 하지만 이제 훌훌 털어버리고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자세로 2013년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고 하지 않았던가.
한국 영화계의 2013년은 희망으로 시작되는 느낌이다. <씨네21>이 2주에 걸쳐 소개한 한국영화 특급 프로젝트들 때문이 아니더라도 지난해 말 개봉한 <타워>가 400만 고지를 넘어섰고 <반창꼬>는 250만을 향해 달리고 있으며 새해 들어 개봉한 <박수건달>과 <마이 리틀 히어로>도 좋은 분위기를 타고 있으니 말이다. 설 즈음 류승완 감독의 <베를린>과 임순례 감독의 <남쪽으로 튀어>가 개봉하면 2013년 한국영화의 위용이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이처럼 영화를 만드는 쪽은 활기가 넘치는데 이를 좋은 방향으로 부채질해줄 제도적 장치는 요원해 보인다. 현재 영화계에서 불거지고 있는 분배 문제, 즉 스탭 처우 개선이라든가 그동안 제작/투자/배급 사이드에서 줄기차게 요구해온 극장과의 부율 문제, 독립영화/예술영화의 발전을 위한 다양한 지원 시스템 문제, 그리고 최근 몇년 동안 가장 두드러졌던 대기업으로의 집중 억제책 등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이월됐다. 올해부터 가시적인 성과가 드러날 한국 영화산업의 해외 진출 또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 분야다. 그러니 곧 출범할 박근혜 정부의 영화정책이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불행히도 새 정부의 영화정책을 알아내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인수위원회에 영화계와 가까운 인사가 포함된 것도 아니고 대선 당시 공약 또한 모호하다. 선거 캠프에 가담했던 영화계 인사들의 면면을 봐도 잘 모르겠다.
추측만 난무한다. 어떤 이는 박정희 정권 시절 이름을 날렸던 (그래서 당시 퍼스트레이디였던 당선인과도 친분이 있을 법한) 원로 영화인들이 많은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어떤 이는 ‘경제 민주화’라는 모토 아래서 대기업 집중현상이 조금이라도 완화될 것이라고 내다본다. 또 어떤 이는 영화 심의가 강화되는 등 보수적인 정책이 시행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이 모두가 추측일 뿐이다. 결국 새 정부의 영화정책은 머지않아 단행될 인사에서 윤곽을 잡아볼 수 있을 것이다. 청와대 문화 관련 보좌관과 문화부 장관이 누군지 밝혀지면 정책의 방향 또한 예측 가능해질 테니까. 문제는 인사가 어떤 기준으로 이뤄지는지 새누리당조차 모른다는 데 있긴 하지만.
아무튼 당선인과 인수위가 영화계 현안을 파악하려는 노력이라도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밀실에서 수군거리는 대신 다양한 영화계 사람들과 접촉해 무엇이 가장 시급하고 무엇이 핵심인지를 판단한 뒤 정책을 세우길 바란다. 시대정신을 거침없이 ‘역주행’했던 MB정부의 영화정책을 반면교사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P.S. 888호다. 여러분 모두 팔팔한 기운 품고 의연하게 일어서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