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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남아시아영화제의 맏형 노릇 해낼까

서인도 휴양도시 고아에서 열린 제43회 인도국제영화제

<눈먼 말을 위한 동냥>

인도국제영화제 포스터.

남아시아 지역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제43회 인도국제영화제(International Film Festival of India, 이하 IFFI)가 11월20일부터 열흘간 서인도의 휴양도시 고아에서 열렸다. 전세계 70개국 160편의 영화가 상영된 올해는 인도영화 100주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행사들까지 곁들여져 내용 면에서 그 어느 해보다 풍성한 모습이었다.

먼저 이번 행사의 가장 큰 화제는 단연 개막작과 폐막작이었던 리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와 미라 네어 감독의 <릴럭턴트 펀더멘털리스트>였다. 현지 언론은 두 영화가 각각 월드 프리미어와 아시안 프리미어로 초청돼 IFFI가 ‘국제’영화제로서의 외형을 갖추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내용의 기사들을 일제히 쏟아냈다. 특히 리안 감독의 영화는 영화제 폐막 이후에도 현지 언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데, 주인공 파이 역을 맡은 수라즈 샤르마가 바쁜 영화 홍보일정으로 델리대학교 기말고사를 가까스로 치렀다는 소식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영화와 관련한 일거수일투족이 기사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이번 영화제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인도 출신의 구르빈더 싱 감독의 장편 데뷔작 <눈먼 말을 위한 동냥>이 대상 격인 금공작새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었다. 인도 펀자브주의 불가촉천민들이 지주들의 부조리한 착취에 저항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 이 영화는 올 초 인도 내셔널필름어워드에서 감독상, 촬영상, 최우수장편영화상을 수상하며 현지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인도 지역어인 펀자브어로 만들어졌다는 점과 다소 진부한 소재인 카스트 문제를 다룬 예술영화로 인식되면서 개봉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간판을 내려야만 했다. 다행히 이번 수상으로 조만간 인도 국영방송을 통해 관객과 재회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어떻게 재평가될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외에 최우수 감독에게 주어지는 은공작새상은 <무게>를 연출한 한국의 전규환 감독에게 돌아갔고, 최우수 남자배우상은 폴란드 보이젝 스마르좁스키 감독의 <로즈>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마르친 도로친스키가, 최우수 여자배우상은 스리랑카 프라산나 비타나게 감독의 <위드 유, 위드아웃 유>에서 열연한 안잘리 파틸이 수상했다. 한편 심사위원특별상은 미국의 루시 멀로이 감독이 연출한 <하룻밤>이, 인도영화 100주년 특별상은 미라 네어 감독의 <릴럭턴트 펀더멘털리스트>가 수상했다.

전체적으로 이번 IFFI는 외형과 내용에 있어 상당히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또 다른 과제를 떠안게 된 것도 사실이다. 영화제 심사위원장을 인도인이 맡고 대상을 인도 감독 작품이 수상하면서 IFFI가 ‘국제’영화제로서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영화계 안팎에서 제기됐기 때문이다. 특히 영화제 부대행사로 진행된 여러 포럼과 세미나에서는 점차 국제적 인지도를 높여가고 있는 케랄라국제영화제와 올해 신설된 델리국제영화제가 IFFI 폐막 이후 불과 한달 사이에 잇달아 개최된다는 점이 언급되면서 이들과 구별되는 정체성의 재정립과 그에 따른 차별화 시도들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인도는 물론 남아시아 지역에서 열리는 각종 영화제들을 통틀어 맏형임을 자임하고 있는 IFFI가 과연 어떤 변화된 모습으로 재탄생할지에 벌써부터 큰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