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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목적인 신념과 사랑 <신의 소녀들>

<신의 소녀들>은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의 전작인 <4개월, 3주… 그리고 2일>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다. 이는 단순히 두 작품을 관통하는 일관된 특성들, 두 여성이 극의 중심을 이루는 것과 공간 속에 시간과 감정의 밀도를 쌓아올리는 연출방식 때문만은 아니다. 전작이 1987년 당시 동구권의 억압적 시대 공기를 두 여성의 분투를 통해 잡아냈다면, 이번 영화 역시 2005년 루마니아에서 일어났던 실제 사건과 이를 다룬 논픽션을 토대로 종교적인 신념이 개인에게 억압을 가하는 과정을 그리며 정치적인 함의를 드러낸다.

알리나(크리스티나 플루터)는 수녀가 된 친구 보이치타(코스미나 스트라탄)를 데려가기 위해 고향 루마니아로 돌아온다.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두 사람은 서로에게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수도원에 머물게 된 알리나는 엄격한 규율에 반발하며 번번이 갈등을 일으키고, 수도원 사람들은 그녀의 돌발행동에 불안을 느낀다. 어느 날 알리나에게 발작이 일어나고, 신부와 수녀들은 그녀의 몸 안에 깃든 악마를 쫓아내기 위해 퇴마의식을 준비한다. 실상 매우 인간적인 두 가치, 맹목적인 신념과 사랑이라는 완고한 감정은 서로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고, 화면은 그 잔해를 집요히 응시한다.

<신의 소녀들>은 신에 대한 헌신을 질투하는 알리나나 그녀의 감정을 타락으로 규정하는 수도원 사람들, 그리고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보이치타 중 어느 한쪽에 대한 감정이입을 유도하지 않는다. 영화는 이들 모두로부터 거리를 두고 있으며, 폐쇄적인 집단과 침입자의 생존의지가 각각 폭력으로 전이되는 과정을 냉담히 지켜보는 쪽을 택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증폭된 디테일들이 사건의 숨겨진 메커니즘을 드러내며 무신경한 현실에 생채기를 내도록 만든다.

이 치밀한 과정에 비한다면, 영화의 결론은 상대적으로 평이한 수준의 아이러니로 마무리된다. 인간과 자유의지에 대한 성찰 차원에서 본다면, <신의 소녀들>은 익숙한 우화의 틀을 넘어서는 작품이 아니다. 이 영화의 장점은 사색의 결과물보다는 오히려 절제된 형식 속에 감정의 진폭을 담아내는 특유의 리듬에서 찾을 수 있다. <신의 소녀들>은 일상적인 해프닝 안에 캐릭터들의 사소한 동작과 대화의 디테일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며 화면을 은밀한 긴장감으로 채운다. 다큐적이며 동시에 연극적인 영화의 호흡은 그 긴장감을 통해서 숨겨진 감정의 욕동을 직관적으로 담아낸다. 뒤엉킨 감정의 소요를 쉬이 폭발시키지 않으면서도 집중력있게 끌고 가는 것은 매우 희소한 재능이다. 아직까지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은 결과를 논하기보다 과정을 밀도있게 그려내는 데 비중을 두고 있고, 더 장기를 보이는 듯하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각본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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