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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베니스에서 온 마르코 뮐러의 로마 시대

11월9일부터 17일까지 열린 제7회 로마국제영화제

로마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감독상을 수상한 <엘 라 치아마노 에스타테>의 배우 이사벨라 페라리와 감독 파올로 프란키(왼쪽부터).

올해로 7회를 맞은 로마국제영화제가 11월9일부터 17일까지 로마 아우디토리움에서 열렸다. 올해 영화제는 기존의 영화제 팬뿐만 아니라 외신 매체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는데, 그건 바로 올해부터 로마영화제를 이끌어갈 신임 집행위원장 마르코 뮐러의 존재감 때문이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마르코 뮐러는 지난 8년간 강력한 리더십으로 베니스국제영화제를 총지휘하며 영화제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그런 그가 베니스와의 계약 기간이 만료되며 로마영화제로 둥지를 옮긴 것이다. 오랜 프로그래머 생활을 거치며 축적된 뮐러의 노하우와 네트워크가, 베니스의 오랜 경쟁자인 로마영화제의 라인업에 어떻게 반영될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기에 전세계 매체의 시선이 로마영화제에 쏠린 것은 당연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프로그램의 큰 기틀을 집행위원장으로 부임한 지 6개월 만에 바꾸기란 역부족이었다. 지역 일간지를 비롯해 <버라이어티> <할리우드 리포터> 등의 외신 매체들은 올해 영화제 라인업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하지만 15편의 영화가 초청된 경쟁부문의 라인업에서 마르코 뮐러 특유의 인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경쟁부문을 살펴보면 베니스 재임 시절부터 할리우드영화와 중국•일본영화에 대한 애정을 피력해왔던 뮐러의 취향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 예로 중국의 거장 펑샤오강의 <백 투 1942>와 미이케 다카시의 <악의 성경>, 래리 클라크의 <마파 걸> 등을 들 수 있다. 지난해 한국영화 <풍산개>를 상영했던 로마영화제가 올해 한편의 한국영화도 초청하지 않은 이유 역시 상대적으로 중국과 일본영화에 더 관심있는 마르코 뮐러의 취향과 관련이 있으리라는 짐작이다. 그 밖에 폴란드 감독 요제프•미하우 스콜리모브스키 감독의 스릴러 <익시아나>, 이탈리아의 파올로 프란키 감독의 <엘 라 치아마노 에스타테>, 러시아의 알렉세이 페도르첸코 감독의 <셀레스티얼 와이브스 오브 메도우 마리> 등이 경쟁부문을 통해 소개됐다.

마르코 뮐러의 영향력은 새롭게 등장한 로마영화제의 프로그램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중 ‘영화21’ 섹션은 현대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모색하고 신진감독을 발굴해 로마영화제의 장기적인 인적 네트워크의 초석을 마련하려는 프로그램이다. 장르의 구분, 장•중•단편의 구분조차 없는 이 섹션에서는 마이클 와만 감독의 <아반티 포폴로>. 셰라드 안토니 산체스 감독의 <정글 러브>, 서호봉 감독의 <저지 아처> 등이 상영됐다.

한편 올해 영화제에서 최고의 논란을 가져온 작품은 감독상(파올로 프란키)과 여우주연상(이사벨라 페라리)을 수상한 이탈리아영화 <엘 라 치아마노 에스타테>였다. 영화제 상영 도중에도 현지언론의 혹평 세례를 받은 이 영화의 수상 소식이 발표되자, “부끄럽지도 않냐!”라고 외치는 야유의 목소리가 관객석을 가득 메웠다. 오죽하면 이 상을 전달한 심사위원 P. J. 호건이 “심사위원들조차 의견이 엇갈렸고, 그래서 심사가 아주 어려웠다”며 “이 영화에 상을 주면 안된다는 심사위원들과 감독의 실험정신을 높이 사야 한다는 심사위원으로 편이 나뉘었다”고 밝힐 정도였다. 이탈리아 일간지 <일파토쿠오티디아노>는 “심사위원들이 왜 이 영화를 보호하려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며 “이 영화는 이번 영화제의 질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었다”고 꼬집었다. 영화제 심사위원진의 이러한 결정에는 작가주의 성향이 짙은 미국 출신의 감독이자 심사위원장인 제프 니콜스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추측도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영화에 수상을 몰아줬다는 비판이 영화제 후반부를 뜨겁게 달궜지만, 첫술에 배부를 수 있겠는가. 마르코 뮐러의 ‘로마 시대’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당분간은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