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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잭맨] 토끼가 된 히어로
이주현 2012-11-22

<가디언즈>의 휴 잭맨

지난 6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휴 잭맨을 만났다. <가디언즈>의 부활절 토끼 버니의 목소리를 연기한 휴 잭맨을 인터뷰하기 위해 각국의 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국적 불문, 성별 불문, 나이 불문, 모두가 휴 잭맨에게 반했다. 30분 남짓 진행된 인터뷰가 끝나고 휴 잭맨이 자리를 뜨자 기자들은 ‘휴 잭맨은 진정한 나이스 가이’라며 입을 모아 칭찬했다. 까칠하고 인색하기 그지없는 기자들이 휴 잭맨에게 이렇게 호의적인 이유는 뭘까. 간단하다. 그는 모든 일에 성심성의를 다한다. 단적으로, 그에게 애니메이션 더빙은 단순히 캐릭터에 자신의 목소리를 덧입히는 작업이 아니다. 실사영화를 찍듯 온전히 캐릭터 하나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휴 잭맨은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한 모범 배우다. <가디언즈>는 두 아이를 둔 ‘아빠’ 휴 잭맨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작품이기도 하다. 아내 데보라 리 퍼니스와 아들 오스카 맥시밀리안, 딸 에바를 향한 마음은 인터뷰 중간중간 곧잘 표현됐다. 물론 바르셀로나에서도 이들 가족은 함께였다.

토끼가 된 휴 잭맨이라니. 마치 울버린의 취미가 뜨개질이라는 얘기와 동급의 유머 같지 않은가. 그만큼 휴 잭맨에게선 강철 손톱을 지닌 돌연변이 히어로 울버린의 이미지를 떨쳐내기가 쉽지 않다. 더불어 휴 잭맨을 수식하는 또 다른 이미지가 있다. 현실에서의 그는 가족에게 헌신적인 다정다감한 가장이다. 그러니 고쳐 생각하면, 아이들에게 색색의 그림이 그려진 달걀을 나눠주는 부활절 토끼가 된 휴 잭맨이 영 어색하기만 한 건 아니다.

<가디언즈>에서 휴 잭맨이 목소리 연기하는 부활절 토끼 버니는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지켜내는 불멸의 히어로다. 버니는 산타클로스 놀스(알렉 볼드윈), 이빨 요정 투스(아일라 피셔), 잠의 요정 샌드맨 그리고 서리 요정 잭 프로스트(크리스 파인)와 함께 가디언즈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악몽의 신 피치(주드 로)와 대적한다. 버니를 흰 털이 수북하게 덮인 귀엽고 청순한 토끼로 생각하진 말자. <가디언즈>의 버니는 산타클로스에게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매사 불평불만이 끊이지 않으며, 한손엔 부메랑을 무기로 든 괴짜 토끼다. “영화 속 버니는 이제껏 당신이 만난 부활절 토끼 중에서 가장 쿨한 토끼가 될 거다. 그는 꽤 거칠다.” 휴 잭맨은 버니가 되기 위해 3개월 동안 사전 준비를 했다. 마치 실사영화를 준비하듯 차근차근 버니의 전사를 생각했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목소리를 상상했다. “영화가 완성되기 전이라 스케치들을 보면서 캐릭터를 빚어나갔다. 범상치 않은 버니의 외모를 보면서 목소리를 만들었는데, 나름 상상력을 많이 발휘해야 했다.” 그 결과 버니는 저음에다, 호주인의 억양이 살아 있으며, 살짝 거만한 느낌이 묻어 있는 목소리를 갖게 되었다. 알렉 볼드윈, 크리스 파인, 주드 로, 아일라 피셔 등 쟁쟁한 스타배우들이 저마다 캐릭터에 가장 적합한 목소리를 창조해냈지만, 그중에서도 단연 귀에 착 감기는 건 휴 잭맨의 목소리다. 휴 잭맨의 익살스런 목소리 연기는 장면장면 웃음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익히 알던 휴 잭맨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데서 한번 더 놀라게 된다.

사실 애니메이션의 목소리 연기는 배우에게 엄청난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작업이 아니다. 물론 대단한 영광을 가져다주는 작업도 아니다. 그럼에도 휴 잭맨이 기꺼이 <가디언즈>에 참여한 이유는 이 영화의 메시지와 캐릭터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다른 아빠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종종 읽어준다. 함께 애니메이션도 자주 봤다. 이런 게 영화의 힘인지 모르겠는데, 아들이 12개월쯤 됐을 때다. <슈렉>을 보고 나선 옹알이하듯 ‘쉬렉, 쉬렉’ 소리를 내더라. (웃음) 어찌나 놀랍던지. <가디언즈>엔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모두 들어 있다. 그런 영화에 참여한다는 게 무척 즐겁다.” <가디언즈>로 휴 잭맨은 아들과 딸을 대동하고 극장 나들이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 휴 잭맨의 출연작 중 아이들과 볼 수 있는 영화는 <리얼 스틸>이 유일했다. 그러니 <가디언즈>는 휴 잭맨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주는 일종의 선물이다. 여기서 재밌는 건 아이들의 속마음이다. “아들은 내가 그저 평범한 아빠이길 원한다. 유명한 배우이길 원치 않는다.” 유명 배우를 아빠로 둔 휴 잭맨의 아들은 친구들에게 부모의 존재를 잘 얘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한번은 아들이 하는 얘기를 엿들은 적이 있다. 아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여자친구에게 이런 말을 하더라. ‘너도 알지? 우리 아빠가 바로 울버린이야.’ (웃음)”

‘맨 중의 맨은 휴 잭맨’

휴 잭맨은 좋은 배우로, 좋은 아버지로, 좋은 남편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우선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절대적인 시간을 상대적으로 만드는 것이 명상이라고 설명해주었다. “하루에 두번 모든 것을 내려놓고 명상을 한다. 명상을 통해 고요와 마주하고, 하루를 되돌리기도 하고, 좋은 에너지를 충만하게 얻기도 한다. 그러면서 내가 누구인지 반복해서 묻는다. 그렇게 중심을 잡아나간다.” 불혹을 훌쩍 넘긴 휴 잭맨이 지치지 않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나가는 바탕엔 이렇게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들이 있었다. 사실 쉬지 않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보다 더 놀라운 건 연기에 대한 그의 식지 않는 사랑이다. 연기를 처음 시작했던 때의 마음을 휴 잭맨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배우가 되기 전에 여러 직업을 경험했다. 심지어 국립공원에서 코알라를 돌보는 아르바이트도 했었다. 그리고 배우가 되고서 처음 5년은 끊임없이 나를 증명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러니 부활절 토끼가 되고, 울버린이 되고, 뮤지컬영화의 주인공이 된 지금 이 순간이 내겐 상상 그 이상의 일처럼 느껴진다.”

크리스마스 즈음이 되면, 휴 잭맨은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거나 선물 가게 안에서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내의 극장엔 휴 잭맨 주연의 뮤지컬영화 <레미제라블>이 걸릴 것이다. “그동안 많은 뮤지컬과 많은 영화를 경험”했지만 휴 잭맨에게 뮤지컬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무대 출신 배우인 그는 <레미제라블>에 대한 기대가 크다. 오랫동안 원했던 프로젝트인만큼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 되기 위해 상당한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영화 속 모든 노래를 촬영장에서 라이브로 불렀다. 촬영은 아침 9시부터 밤 10시까지 계속 이어졌다. 체력적 부담이 컸다.” <레미제라블> 다음엔 <울버린>이다. 자기 관리 능력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휴 잭맨은 현재 <울버린>을 촬영 중이다. <엑스맨 탄생: 울버린>의 속편인 <울버린>은 일본으로 건너간 울버린의 이야기를 그린다. 휴 잭맨은 “새로운 캐릭터가 많이 등장한다.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캐릭터들을 보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울버린>을 소개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단단해지고 있는 배우 휴 잭맨. 그를 보고 있노라면 그가 진정 히어로구나 싶다. ‘맨 중의 맨은 휴 잭맨’이란 농담이 괜히 만들어진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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