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규 감독이 데뷔작 <맛있는 인생>의 무대인 강릉을 배경으로 만든, 또 한편의 멜로영화다. 전작들을 관통하던 자기 반영적 성격이 이번 영화에서도 두드러지며, 불발되지도 쉽게 이어지지도 않는 관계에 대한 특유의 낭만도 여전히 확인할 수 있다. 주인공 인성(김태우)은 주말마다 강릉을 찾는 영화제작자이자 감독이다. 잠잘 곳이 마땅치 않아 걱정하던 인성은 단골 카페에서 자신의 영화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던 유정(예지원)과 만나게 된다. 가정방문 간호사인 유정은 주말마다 서울에서 문화생활을 즐기는 강릉 토박이로, 역시 숙소문제 때문에 고민 중이다. 공통된 문제를 놓고 한동안 머뭇거리던 두 사람은 결국 주말에만 집을 바꿔서 생활하기로 합의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게 된다.

자꾸 어긋나고, 가끔씩 설레지만, 대개는 그 설렘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피로에 젖어 있는 두 30대 남녀의 만남에 대해, 이 영화가 특별히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을 둘러싸고 때로 갈등이 불거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깊이있게 다뤄진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두 사람의 관계가 인성이 작업 중인 시나리오와 맞물리는 식의 상투적인 설정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태우와 예지원, 두 주연배우의 연기가 영화 속 일상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어 그 익숙함이 오히려 친근하게 느껴진다. 두 사람이 서울 어귀와 강릉 바닷가라는 서로 다른 공간을 동시에 거닐며 나름의 행복을 만끽하는 장면이 겹칠 때, 이 익숙한 편집구도는 묘하게도 잔잔한 서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렇게 두 사람이 만나고 이지러지는 심심한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이들이 나눈 나직한 대화 속에 놓인 서로를 향한 따뜻한 공감의 자취들을 만날 수 있다.

영화의 말미에서 보여준 인성의 결단과 마지막 신을 통해 두 사람의 미래를 점치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고단한 일상에 지쳐, 혹은 강릉과 서울이라는 나름의 기댈 곳이 있었기에, 이제 와서야 뒤늦게 외로움과 빈자리를 깨닫게 된 두 주인공에게 그 불확실하고도 조촐한 위로야말로 잘 어울리는 결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줄곧 어딘가를 떠나고 그로 인해 해방감을 느끼면서도 결코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이 있다. <내가 고백을 하면…>은 이 과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면서도 그리움의 정도를 과장하지 않는 미덕이 있는 영화다. 감독이자 제작자인 조성규의 존재와 그의 실제 작업들이 노골적으로 암시되고 희화화되는 식의 건조한 나르시시즘이 과연 영화 속에서 화제성 이상의 효과를 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영화의 미덕이, 스스로의 고민과 현재의 모습에 거리를 두면서도 이를 솔직하게 담아내고자 한 감독의 태도에서 기인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