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커 버스커의 <여수 밤바다> 첫 소절, 가사를 바꿔 불러보자. “소설 <은수저>, 이 소설에 담긴 재미있는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어떤 책은 쓰일 때 의도한 적 없는 전설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나카 간스케는 1885년에 태어났고 대학 시절 나쓰메 소세키의 문하생으로 글을 썼는데, 1913년에 나쓰메 소세키의 추천으로 첫 소설 <은수저>를 <아사히신문>에 연재할 기회를 얻었다. 후일 나카 간스케는 당시를 회상하며 돈에 쪼들려 글을 팔았다며 자책하고 시(詩)에 대한 애정을 고백했단다. <은수저>는 집 안 오래된 책장 서랍 안에 든 작은 상자에서 시작한다. 그 안에는 별보개고둥이며 동백나무 열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자질구레한 것들이 가득 들어 있는데 그중에는 진귀한 모양의 은수저가 들어 있다. 나카 간스케는 작은 수저로 바다처럼 깊고 끝없는 유년기의 추억을 한 수저씩 길어올린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이 여기서는 은수저가 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 책이 다시 스타가 된 이유는 일본 고베시의 한 중학교에서 독특한 수업방식을 채택하면서였다. 국어를 담당한 하시모토 선생님은 교육방식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았는데, (한국식과도 다르지 않을) 기존의 수업방식을 완전히 버리고 나카 간스케의 <은수저>만을 3년 내내 읽기로 했다. 100여년 전 일본의 유년기에 대한 추억담이다 보니 풍습에 대한 묘사는 이국의 그것처럼 새로울 때가 많았을 테다. 전통 과자에 대한 이야기(포도떡처럼 신기한 간식거리에 대한 이야기가 수시로 등장한다)부터 애지중지하던 누에가 죽자 소년이 울며불며 세운 돌멩이 비석에 써넣은 묘비명이 의미하는 일본의 역사까지, 놀이와 공부의 소재는 무궁무진했을 테고, 진도가 어찌나 더딘지 3년 동안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겠냐는 말이 뒤따랐다. 하지만 결국 모두 한 문장씩 <은수저>를 따라갔다. 여기까지는 단순히 특이한 수업방식, 천천히 읽기에 대한 미담 정도였겠으나 이 수업을 들은 제자들이 속속 도쿄대학에 합격하더니 도쿄대학 총장, 대기업 사장, 국회의원까지 배출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은수저>에 (저자는 상상하지도 못했을) 아우라를 덧입혔다.
책 한권을 3년간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읽어간다. 아름다운 이야기다. 뭐 다른 말이 더 필요한가? ‘얼른 배워서 써먹는 것은 얼른 잊어버려 결국 써먹지 못한다’는 하시모토 선생님의 지론은 얼른 배운 것을 얼른 잊어버리며 사는 어른이 고개를 끄덕일 잠언이 된다. 하지만 도쿄대학 진학률의 신화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책 한권에서 세계를 배우는 것은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으로 성패를 판가름할 일이 아닌데, 그래도 그런 사연이 없었다면 이 책이 한국에서까지 번역되어 읽히기란 힘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하다. 아 참, 한국에서도 이렇게 수업한다면 어떤 소설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