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다가 형태에 깃든 아름다움에 제압될 때가 있다. 배우의 얼굴이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을 때가 그렇고, 혹은 현란한 카메라의 움직임에 감탄을 하면서도 우리는 경험과 혼동되는 이산적인 결론에 도달하곤 한다. 올해 네 번째를 맞는 서울국제건축영화제의 프로그램을 살피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시(city)를 주제로 한 이들 12편의 작품들이 관객에게 게슈탈트적 영화감상의 지평을 열어줄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분명 건축을 중심으로 영화를 보는 일은 특수한 경험이다. 영화를 향한 이러한 형태학적 시선, 올해에도 그 통로는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한 ECC의 아트하우스 모모로 정해졌다. 11월8일부터 일주일간 진행되는 이번 행사를 통해 건축을 생각하며 영화를 감상하고, 또한 건축물과 호흡하며 가을 산책을 할 기회를 얻길 바란다.
이장호 감독의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을 건축영화제에서 만나는 것은 기존의 리얼리스틱 내용 분석에 새로운 시선을 부여해준다.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는 붉은 벽돌의 이층집 너머로, 영화는 텍스트 뒤에 감춰진 사회의 이면을 드러내는데, 80년대 초반의 도시 모습은 시대의 정서를 담는 대변자의 역할을 맡는다. 이렇듯 상기된 과거의 기억이 다큐멘터리 <상계동 올림픽>(1988)을 통해 실질적으로 그 상처를 드러낸다.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위해 달동네 사람들은 쫓겨났고, 이들의 모습을 담은 공간의 기록은 그 자체로 자아를 품은 저장소로 기능하게 되었다. 정재은 감독의 <말하는 건축가>(2011) 역시 같은 맥락에서 현재를 담은 작품이다. 한때 폭압적으로 경제성장에 매달리던 서울이 이제는 ‘인간’을 고민하고 있음을, 이 도시가 비로소 윤리적 차원에서 미래를 고민하게 되었다는 것을 영화는 입증한다. 이와 비견해 데이비드 링거락의 <어바니제이션 인 차이나>(2011)는 중국의 현재를 진솔하게 나열하는 다큐멘터리이다. 동시대 중국사회가 겪고 있는 재개발의 진통을 꽤나 발랄하게 좇은 이 영화는 자본보다 중요한 것이 인간 자체임을, 따라서 건강한 행복을 담아내는 것이야말로 공간의 역할임을 상기시킨다.
한편 동시대 유럽이나 일본의 건축가들은 별개의 고민에 빠져 있다. 올해 초청된 예스퍼 바하트마이스터 감독의 두 작품이 이에 속한다. 우리가 재개발의 상처를 치유하려 애쓰는 반면, 이미 패션화된 건물의 소비자들은 미래 건축에 대한 열망과 자연과의 조화에 골몰 중이다. 폐막작 <코추>(2003)를 통해 바하트마이스터는 일본 전통건축의 주요 구성요소가 현대 건축물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그리고 20세기 서양 건축의 초현대성을 스케치한 <위대한 유산>(2007)을 통해서는 여전히 진보하고 있는 건축의 비전에 대해 알리려 하였다. 카밀라 로빈슨의 <하루에 다섯 도시, 다섯 공간> 역시 현대적 시각에서 건축물의 정의를 공표하는 작품이다. BDP 건설사의 50주년 기념영상으로 제작된 이 단편영화는 ‘빛과 공간의 융합, 그리고 숫자로 환원된 사용자의 패턴 분석’을 통해 여전히 건축계를 장악하는 모더니즘의 영향에 대해 시각적으로 기술한다. 이 밖에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의 현재를 담은 기념비적 다큐 <위대한 침묵>(2005)은 정통 로마네스크 양식의 우아한 공간 지배를 담았는데, ‘평범한 것과 변하지 않는 것’에 집중하는 이 작품을 통해 관객은 건축이 어떻게 인간과 자연을 연계시키는지 느낄 수 있다. 건축영화제를 통한 통각적 영화보기, 즉 ‘영화를 감상하는 자세’가 영화읽기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이번 행사를 통해 경험하길 바란다. 어떠한 작품을 택하더라도 이 독특한 경험에 위배되진 않을 것이다. 유기적으로 일상과 결합되는 영화들, 극장을 나서며 이 경험이 우리의 일상을 얼마만큼 풍요롭게 만드는지 느끼는 것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