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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에 시달리는 아줌마 킬러의 사생활
이화정 사진 최성열 2012-11-06

박진표 감독이 만드는 독특한 킬러 이야기 <심여사는 킬러>

<심여사는 킬러> 강지영 지음 / 씨네21북스 펴냄

박진표 감독.

<심여사는 킬러> 감독 박진표 / 출연 미정 / 개봉 2013년 예정

별별 킬러 다 봤다고 생각했다. 지고지순한 사랑에 빠진 <첩혈쌍웅>의 킬러부터, 사람 죽이러 가서 탱고 바람난 킬러(<어쌔신 탱고>)도 있었고, 아주 멀쩡한 아가씨가 킬러인 반전(<달콤, 살벌한 연인>)도 있었다. 하늘 아래 새로운 킬러는 없다고 여겼다. 속단이었다. <심여사는 킬러>의 킬러는, 다름 아닌 올해 쉰한살의 ‘아줌마’ 심은옥이다. 남편은 교통사고로 즉사했고, 건사해야 할 자식은 둘이나 된다. 게다가 고용된 정육점에서는 막 해고됐다. 중졸에 정육점 경영이 경력의 전부. 들이밀 곳 없는 이력서를 들고 심여사가 찾아간 곳은 칙칙하기 그지없는 흥신소다. 킬러 심여사의 파란만장 경험은 여기서부터다.

<심여사는 킬러>는 완전무결 생활형 킬러 이야기다. 평범한 주부에게 사람 죽이라고 하면 그야말로 펄쩍 뛸 일이지만, 심여사처럼 생활고로 인해 궁지에 몰린 주부에게 사람만 죽이면 금괴를 주겠다고 하면 이는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 된다. 고기를 썰던 실용적 칼솜씨가, 사람의 오장육부를 헤집는 범죄의 도구로 탈바꿈하는 사뭇 판타스틱한 과정. 심여사의 머릿속을 뒤흔드는 정체는 ‘3천만원이면 2년간 한푼도 쓰지 않고 매일 열 시간 가까이 일해야 버는 돈’이자‘금괴를 팔면 진아(딸)에게 꽃등심이라도 사줘야겠다’는 생각 같은 사뭇 절실하고 구체적인 계산이다. 심여사가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킬러의 생활에 젖어드는 동안, 스마일 흥신소를 중심으로 의뢰인과 제거대상, 킬러 지망생, 라이벌 킬러 등 천태만상 인간 군상의 애환이 엮여든다. 정주행하는 심여사의 비행을 멈추는 건 아이러니하지만 그녀가 사람을 죽여서까지 뒷바라지하려던 대학생 아들이다.

‘사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을 마련하고자 마찬가지로 킬러가 된 아들에 이르러 작가는 이 소설이 숨겨왔던 막중한 임무를 밝힌다. 바로 심여사의 예리한 칼솜씨가 속속들이 헤집는 자본주의가 팽배한 현 세태의 해부다. 내년 개봉을 목표로 소설을 해부하는 이는 다름 아닌 박진표 감독이다. 그간 <죽어도 좋아>를 통해 금기시되어온 노인의 성을 용감하게 끄집어내고 <너는 내 운명>에선 가슴 찡한 멜로를 앞세워 에이즈와 농촌문제를 환기시켰으며, 실제 유괴사건을 토대로 한 <그놈 목소리>로 유괴범의 심리까지 파고들었던 감독이다. 사회문제를 스크린에 최적화하는 데 필요한 칼솜씨에 있어서라면, 소설 속 심여사 못지않은 일급 전문가다. 심여사를 중심으로 워낙 캐릭터가 다종다양한 데다 이야기의 근원이 단순히 현재가 아니라 심여사의 과거까지 헤집고 올라가야 하는 제법 방대한 분량의 끼워맞추기란 점에서도 박진표 감독의 해석은 기대가 된다. 다큐멘터리, 멜로, 미스터리 등 다양한 장르를 시도해온 박진표 감독이 어떤 장르로 <심여사는 킬러>를 포장해낼지 궁금하다.

심여사를 부디 코믹의 나락에 빠뜨리지 말지어다. 심은옥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킬러가 되기 전 그녀의 상태는 솔기가 닳은 초록색 블라우스에 맘보바지, 쿤타킨테처럼 뽀글거리는 파마를 한 아줌마다. 코믹으로 풀자면 한도 없다. 이런 차림의 아줌마가 칼솜씨를 연마한다면, 그 또한 우습지 않겠는가. 자칫 이렇게 코믹하고 키치한 이미지로 갈 경우, 캐릭터가 이야기를 앞서 나갈 우려가 크다. 각 캐릭터가 한 챕터로 구성되는 원작의 형식을 뛰어넘어, 스토리를 탄탄하게 구성한 뒤 캐릭터의 묘미를 살리는 게 관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