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송곳니와 발톱을 가진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올 거야.” 조성희 감독의 전작 <짐승의 끝>에 등장한 이 구절은, 신작 <늑대소년>에 관한 예언처럼 들린다. <늑대소년>의 철수(송중기)는 상대를 단숨에 찢어발길 수 있는 이와 발톱, 무시무시한 근력이 깃든 육체 복판에 순정 100%의 심장을 지닌 존재다. 관객은 오랜 외국생활 끝에 고국을 찾은 한 노부인의 회상을 경유해 그를 만난다. 47년 전, 폐를 앓는 소녀 순이(박보영)는 요양차 이사한 시골집 창고에서 야수 같은 소년과 맞닥뜨린다. 가뜩이나 투박한 촌이 싫었던 소녀는, 말도 못하고 짐승처럼 행동하는 소년을 구박하지만 오래지 않아 그를 가르치고 보호하며 마음을 기울인다. ‘철수’라고 불리게 된 소년의 가슴에도 소녀를 향한 무조건적 신뢰와 애정이 싹트고 둘의 관계는 순이네를 마을에 이주시킨 부잣집 아들 지태(유연석)의 질투를 부른다.
전작 <남매의 집>과 <짐승의 끝>에서 과거 어떤 영화에도 빚지지 않겠노라 월하의 맹세라도 한 것 같은 작품을 내놓았던 조성희 감독은, <늑대소년>에 이르러 고전동화와 할리우드를 통해 현대의 베드타임 스토리가 된 서사들을 그러모은 영화를 보여준다. 촬영과 조명 스타일마저 ‘옛날이야기’를 의도한 듯 아스라하고 평평하다. 그래서 역으로, 감독의 예전 영화에서 파편적으로 스쳐간 <햇님 달님> <헨젤과 그레텔> <빨간 모자> 등의 인상들을 관객에게 상기하도록 부추긴다. 철수는 자기 종족의 특수조건을 충분히 인지하고 인류와 공존할 방도를 고심하는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뱀파이어나 늑대인간과도 다르고, 인간사회에서도 멀쩡한 엘리트 역을 수행하는 돌연변이 엑스맨과도 다르다. 문명을 이해하지 못하고 막무가내로 천진난만한 철수는 ‘펫’에 가깝다. 사랑하고 교감하는 반려견이 나만 바라보는 미소년으로 환생한다면, 이라는 10대 소녀의 백일몽이 현현한 형상이다. <늑대소년>은 전개를 예측하기 위해 통찰이나 예지력이 필요한 영화는 아니다. 플롯은 지나치게 대범하고 복선은 이마에 복선이라고 써 있다. 악역은 <슈퍼맨>의 렉스와 비슷하지만 <스몰빌>의 렉스 루더보다는 훨씬 단순해 그만 ‘김중배’를 떠올리게 한다. 다만 늑대인간이라는 확연히 호러 판타지적 캐릭터가 놓이는 세부적 시추에이션들이 주로 코미디라는 점이 독특하다. 영화의 골격과 내적인 재미의 요소가 따로 가는 경우인 셈이다.
순이는 철수가 마을의 염소를 해쳤다는 누명을 쓰자 “네가 그런 거 아니지?”라고 캐묻는다. 그녀도 영화도, 늑대소년을 슬픈 인간으로 볼 뿐, 그의 수성(獸性)까지 받아들이진 못한다. 철수는 동물이었다가 인간의 영역을 생략한 채 천사의 세계로 넘어가버린다. <늑대소년>이 눈물을 부르고 표정과 몸짓만의 퍼포먼스를 소화한 송중기의 연기가 인상적임에도 불구하고 그 여운이 쉽사리 휘발된다면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