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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신배우뎐

반짝반짝 빛나는 다섯 얼굴

<트와일라잇> 3부작, <엑스맨> 프리퀄, <헝거게임> 시리즈 등 영할리우드를 기반으로 한 프랜차이즈가 한차례의 태풍처럼 지나갔다. 올해는 예고된 블록버스터형 스타보다 발굴의 재미가 ‘돋는’ 의외의 얼굴들이 눈에 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워 호스>로 데뷔해 벌써 4편의 주연을 꿰찬 제레미 어바인, 비범한 에너지로 인디영화계를 장악한 <케빈에 대하여>의 이즈라 밀러, <라이프 오브 파이>에서 리안 감독이 찾아낸 ‘보물’임을 증명해낼 수라즈 샤르마, 12살에 대배우들의 틈바구니에서 영리한 연기를 보여줄 <문라이즈 킹덤>의 카라 헤이워드,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풍선껌 소녀로 잠깐 얼굴을 비춘 지 7년 뒤 넥스트 사라 제시카 파커를 꿈꾸고 있는 안나소피아 롭이 그들이다. 할리우드 별자리의 이동을 신중히 따라가고 싶다면, 이들의 얼굴을 기억해두자.

순수의 시대

제레미 어바인 Jeremy Irvine <워 호스> <나우 이즈 굿> <위대한 유산>

맑은 영혼을 지닌 소년. <워 호스>를 준비 중이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그런 배우를 찾았다. “젊은이들에게만 있는 낙천성과 순진함을 지닌 배우를 원했다. 안될 거라고, 하지 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그것은, 1차 세계대전에 끌려간 자신의 유일한 친구이자 형제인 말 조이를 구하겠다고 전열을 뒤따르는 알버트 내러콧에게 없으면 안될 무엇이었으며, 연기로 지어낼 수 없는 무엇이었다. 하지만 그런 성정은 영화에서만큼이나 현실에서도 귀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한 소년이 나타났다. 21살, TV에도 영화에도 출연해본 적이 없다는 그의 안에는 이미 알버트 내러콧이 있었다. 두달간 다섯번의 오디션을 거치는 동안 그저 계속 도전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에게서 스필버그는 낙천성, 순진함,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모두 확인했고,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의 한구석에서 양손에 나뭇가지를 흔들며 나무를 연기하던 소년은 할리우드의 꿈나무가 되었다.

배우의 심성이란 어떤 훌륭한 연기로도 가릴 수 없는 것이다. 혹은 배우의 심성이 어떤 훌륭한 연기를 가능하게 한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뗀 그가 이미 그 진리를 깨우친 것일까. 곧 만나게 될 <나우 이즈 굿>의 애덤도, <위대한 유산>의 핍도, 그의 깨끗한 바탕 위에 쌓아올린 캐릭터들이다. <나우 이즈 굿>의 애덤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웃집 소녀(다코타 패닝)와 사랑에 빠지는데, 현재의 희열을 탐닉할 때도 끝을 두려워할 때도 온전히 그녀와 함께다. 알버트 내러콧이 조이와 함께였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가 하면 <위대한 유산>의 핍 속에도 어른들의 폭력에 끝내 오염되지 않은 고귀한 마음이 남아 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옛날 버전에서 가져온 것은 없다. 새로운 핍은 나만의 버전”이라고 자신감을 표했는데, 그만의 핍에는 남달리 선한 기운이 깃들어 있을 것 같다. 한편 2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한 차기작 <더 레일웨이 맨>에서는 일본군에 포로로 끌려가 고문에 시달리며 타이-버마간 철도를 깔았던 에릭 로맥스로 분한다. <워 호스>에서 그의 엄마로 함께했던 에밀리 왓슨은 그의 “억지로 노력하지 않아도 절로 드러나는 진실함”을 높이 샀는데, 그가 자신의 본성은 망가뜨리지 않으며 더욱 깊어지기만 할 나날이 기다려진다.

검은진주

수라즈 샤르마 Suraj Sharma <라이프 오브 파이>

흙 속의 진주, 라는 말이 이럴 때 쓰라고 있나보다. 지난해 리안 감독은 <라이프 오브 파이>의 파이를 찾아 인도로 떠났다. 전세계의 수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를 영화로 옮기는 일인 만큼, 게다가 2시간 남짓을 혼자 감당할 만한 신인을 발굴하는 일인 만큼, 세심한 선택이 요구됐다. 지원자만 3천명인 대대적인 오디션이 치러졌는데, 그중에 멋모르고 형을 따라온 17살의 수라즈 샤르마가 숨어 있었다. 6개월 뒤 소년은 최종 후보에 올랐고, 마지막 순간에는 리안 감독의 기운마저 흡수하며 영롱하게 빛났다. “실제로 엄청 떨었다. 감독님이 5분 정도 대화를 걸어주었는데, 그게 나를 침착하게 했다. 다시 연기를 시작했지만 긴장이 다 풀리진 않았다. 다시 감독님과 10분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지만 그 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아주 만족한 듯 보였다.” 그가 경험한 그 몰각의 찰나를 리안 감독은 이렇게 기억했다. “그는 단순하게 눈에 담아낸 감정만으로 오디션장을 가득 채웠다. 이야기의 세계를 믿고 그 안에 머무를 줄 아는 그의 타고난 능력은 흔히 만나기 힘든 보물이다. 수라즈에게서 영화가 보였다.” 그렇게 파이의 여정이, 그리고 수라즈의 여정이 시작됐다.

“내게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희망이다.” 파이의 모험담을 몸소 통과해낸 수라즈는 <라이프 오브 파이>에 깔려 있는 층층의 의미 꼭대기에 ‘희망’을 두었다. 이는 이 영화가 그 자신에게도 ‘희망’이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전까지 그는 수학자 부모 아래 자란 평범한 인도 소년이었지만, 지금 그는 할리우드에서 자신의 운명을 시험하고 있다. 16살의 파이가 인도에서 동물원을 경영하던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떠나던 중 태풍을 만나 망망대해에 벵골호랑이와 단둘이 남겨졌을 때처럼 말이다.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해지는 그 표류기의 서장에서 리안 감독은 훌륭한 방향키가 되어주었다. 그를 따라 수라즈는 10개월이 넘는 준비와 촬영기간 동안 감정의 파고를 일으켜내는 법을 훈련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데 무엇을 느껴야 하냐고 물었다. 감독님은 아무것도 느끼지 않기 때문에 나중에 무언가를 느낄 때 그것이 일상에서보다 훨씬 강력하게 다가올 수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그의 훈련이 어떤 결실을 맺었을지, 그의 배는 또 어디로 흘러갈지, 궁금하다.

이지적 우아함

카라 헤이워드 Kara Hayward <문라이즈 킹덤>

<문라이즈 킹덤>은 소년과 소녀가 사랑에 빠져 자신들만의 왕국으로 도망치는 이야기다. 어른보다 성숙하고 깊은 정신세계를 가진 아이들이 사랑의 도피처로 떠나고 이 아이들보다 더 어린아이 같은 어른들이 우왕좌왕하는 이야기라고 해도 될 것 같다. 그런 면이 귀여운 영화다. 웨스 앤더슨 영화에 나오는 소년소녀들이 종종 천재인 경우가 많은 건 이미 입증된 사실인데 신인 여배우 카라 헤이워드가 <문라이즈 킹덤>에서 맡은 역할이 확연히 그렇다. 영화 속 수지 비숍, 이 소녀는 언제나 자기 나이를 훨씬 상회하는 수준의 지적 도서를 한손에 들고 있다.

웨스 앤더슨 영화의 소녀 주인공이라면 누구라도 탐낼 만한데 카라 헤이워드는 그 자리에 덜컥 한방에 붙었다. 그러니까 현재 나이 열세살인 이 소녀에 관해서는 따로 소개할 전작이 없다. 그녀의 열두살 때 이미지가 바로 앤더슨이 바라던 바, 어리지만 지적이고 고혹적인 모습에 해당했고 <문라이즈 킹덤>이 그녀의 데뷔작이 된 것이다. 물론 감독의 선택은 옳았다. 카라 헤이워드는 일단 멘사(천재, 영재로 인정받은 이들의 전세계적 모임) 회원이다. 가령 취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요즘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다시 읽고 있어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읽고 있어요, 가 아니라 다시 읽고 있어요, 다. 혹은 어른들의 짓궂은 질문에 대처하는 자세는 또 어떤가. “사랑은 해봤나요? 사랑해본 적이 없다면 어떻게 사랑하는 연기를 할 수 있겠어요?”라는 질문에는 “글쎄요. 13살 소녀 입장에서 말하자면 누군가에게 반해본 적은 있지만 샘과 수지 같은 정도는 아니었어요. 샘과 수지는 정말정말 진실한 사랑을 해요. 그리고 배우로서 말하자면 캐릭터와 배우가 꼭 동일한 삶을 살아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라고 답하거나 “속옷만 입고 남자와 키스하는 건 어땠나요?”라는 질문에는 “그건 그냥 또 다른 한 장면에 불과해요. 별일 아니에요. 우리는 닫힌 세트장에 있었고 주변에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나는 거기 있는 모든 사람과 아주 편하게 있었으니까요”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응수한다.

비교를 하자면 카라 헤이워드는 다코타 패닝처럼 능수능란한 팔색조의 배우 스타일은 아닌 것 같다. 다만 자기의 이미지가 왕성하여 캐릭터를 자기쪽으로 끌어당길 줄 아는 배우가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여하튼 그녀가 꼽는 롤 모델은 에마 스톤과 에마 왓슨이며 그들의 지성과 유머감각 그리고 배우로서의 밸런스 능력을 닮고 싶은 점이라고 꼽는다. 훗날에는 글을 쓰고 영화까지 연출할 생각이라는 이 소녀. 하지만 먼 훗날까지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근사한 배우 하나가 더 태어난 것 같다. “나는 (영화라는) 이 예술과 사랑에 빠져버렸어요.” 생애 첫 번째 해외여행을 칸영화제 개막작 여우주연 자격으로 가게 된 매사추세츠 출신의 열세살 소녀가 남긴 말이다.

불온한 청춘

이즈라 밀러 Ezra Miller <케빈에 대하여> <월플라워> <마담 보바리>

방황하는 청춘의 아이콘. 그 유구한 명단에 새로 추가할 이름이 나타났다. <케빈에 대하여>의 린 램지 감독은 이즈라 밀러를 처음 만난 순간 “그가 넥스트 제임스 딘이 되리라 직감했다.” 그의 몇 안되는 전작을 훑어보면 전혀 무리한 비유가 아니다. 데뷔작 <애프터스쿨>의 로버트는 인터넷 동영상에 빠져 살다 우연히 쌍둥이 소녀의 죽음의 첫 번째 목격자가 된 뒤 점점 망가져가는 고등학생이고, <비웨어 더 곤조>의 에디 곤조 길먼은 학교 ‘일진’의 핍박을 견디다 못해 안티 일진 신문을 만들어 뿌리는 과격 행동파이며, <어나더 해피 데이>의 엘리엇은 감정조절장애를 지닌 약물중독자로 걸핏하면 가족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문제적 아들이다. 성적 모험도 꺼리지 않는다. <시티 아일랜드>의 빈스 주니어는 비만한 여자들에게 흥분하고, <에브리 데이>의 조나도 커밍아웃에 주저함이 없다. 그 모든 캐릭터를 만나 밀러는 곱상한 외모 속에 숨겨진 치명적인 청춘의 아우라를 발산한다.

그의 불온한 매력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출판하는 아버지와 무용하는 어머니의 무한한 애정 아래 그는 일찌감치 자유로운 영혼으로 자랐다. 8살 때 대뜸 배우가 되겠다고 선언했고, 데뷔작 <애프터스쿨>을 찍으면서는 다니던 유명 사립고를 자퇴했으며, ‘유명한 아버지의 아들들’이라는 밴드도 이끌고 있고, 공공연한 대마초 애연가에 이성애자/동성애자의 이분법을 거부하는 자칭 ‘퀴어’다. 자신을 구속하는 통념을 본능적으로 간파해내는 그가 독립영화감독들의 눈에 띄지 않았을 리 없다. 그중 <케빈에 대하여>는 전환점이 되어준 작품이다. 어머니의 눈에 이해할 수 없는 악마로 비치는 아들 케빈으로 분한 그는 소름끼칠 만큼 불투명한 연기로 평단과 관객 모두를 사로잡았다. 상대배우이자 총제작자였던 틸다 스윈튼도 “직관적으로 이야기를 파악해내는” 그의 재능에 감탄했다. 그는 “인간의 어두운 진실”을 파고드는 작업에 깊이 빠져들었는데, 실제로 꿈의 배역 중 하나가 어릴 적 자신에게 “이상하게 어둡고 꼬인 것들의 세상을 열어 보여준 작가” 에드거 앨런 포다. 차기작 <월플라워>의 멋진 게이 상급생 패트릭도 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주저없이 몸을 던질 것이며, <마담 보바리>에서 에마 보바리를 신열에 들뜨게 할 레옹도 주저없이 인간의 음란한 욕망을 파헤칠 것이다. 앞으로 이 마성의 청춘에 빠져들 일만 남았다.

넥스트 사라 제시카 파커

안나소피아 롭 Annasophia Robb <더 캐리> <다이어리>

캐리(Carrie)란 이름을 얻은 두 소녀가 2013년을 고대하고 있다. <캐리>의 리메이크영화에서 캐리 화이트를 연기한 크로 모레츠, 그리고 <섹스 앤 더 시티> 속 캐리 브래드쇼의 고등학생 시절을 그리는 드라마 <더 캐리 다이어리>에서 캐리를 맡은 안나소피아 롭이다. 피칠갑을 한 캐리와 명품백을 든 캐리를 비교하는 건 무리겠지만, 전세계의 관심이 안나소피아 롭의 캐리에게 조금 더 기울어져 있는 건 사실이다. 평소 아베크롬비의 옷을 즐겨 입었던 그녀는 촬영 도중에도 ‘뉴욕 패션 위크’에 참석하며 “진정한 패션의 세계를 영접”했다. 사라 제시카 파커는 친히 그녀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단다. “나도 바로 답장을 보냈다! 사라가 나에게 용기를 주다니! 정말 멋진 일이다!” <더 캐리 다이어리>의 제작진은 안나소피아 롭이 “실제 매우 아름다운 한쌍의 구두를 애지중지하고 있다는 사실”과 “인정이 넘치는 성격” 때문에 그녀를 캐스팅했다고 밝혔다.

안나소피아 롭이 본격적으로 얼굴을 알린 작품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이다. 껌씹기에 대한 집착 때문에 블루베리로 변했던 바이올렛이 그녀의 배역이었다. 당시 조니 뎁과 함께 연기하는 게 너무 좋았던 12살의 소녀는 직접 “내가 조니 뎁을 허그하는 장면을 넣어달라”고 했다고. 밉상인 성격만 빼면 바이올렛은 실제의 그녀와 상당히 닮았다. 5살 때부터 체조를 시작했고, 7살 때는 댄스경연대회에서 우승했으며 지금도 재즈, 힙합, 브레이크댄스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춤을 즐기는 데다 수영과 스키 실력 또한 수준급이다. <소울 서퍼>는 그녀가 자신의 타고난 운동신경을 남김없이 드러낸 작품이다. 한쪽 팔을 잃은 서퍼의 실화를 그린 이 작품에서 롭은 촬영 전 8주에 걸친 훈련을 받은 뒤 웬만한 서퍼만큼 파도를 탔다. 2008년작인 <몽유병>에서 엄마에게서 벗어나려는 소녀를 연기했을 때는, 비평가들로부터 연기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내 연기의 스승은 <윈-딕시 때문에>를 함께한 웨인왕 감독이다. 그때 나는 너무 들떠 있어서 과장된 연기를 하고 있었다. 그가 나를 땅에 붙여주었고, 자연스러운 연기를 알게 했다.” 지금까지 주로 성장기 소녀다운 기질을 드러냈던 그녀는 <더 캐리 다이어리>에서 80년대 트렌드 세터로서의 매력을 보여줄 예정이다. “풍성한 스커트, 어깨 패드, 네온 색상의 옷도 입는다. 이 작품은 내 또래에게도 매력적인 컬러풀한 쇼가 될 거다.” 크로 모레츠가 오빠들의 연인이라면, 안나소피아 롭은 분명 소녀들의 멋진 언니로 등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