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된 작품을 볼 기회가 있었나. =어제 봤다. 한달쯤 전에 러프 컷을 봤는데, 어제 보고 나니 안심이 된다. (웃음) 보고 나서 샘 멘데스한테 전화하지는 못했지만, 이메일은 보냈다.
-<스카이폴>은 전체적으로 신선한 느낌을 준다. 관객에게 익숙한 캐릭터들을 새롭게 보여주기도 하고. =시나리오 자체가 좋았기 때문이 아닐까. 스파이 세대에서 성장한 본드가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테러리즘과 전쟁은 늘 다뤄왔지만 여기에 사이버 세계가 충돌하는 것을 보여줬다. 그래서 천재적인 컴퓨터 전문가 Q가 젊은 캐릭터로 소개된다. 본드도 총명하고 현명하지만 사이버월드쪽과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으니까. 개인적으로 이같은 상반된 세계가 충돌하는 이야기 구조가 매우 흥미로웠다. 서로 다른 세계에서 온 Q와 본드가 이번 작품에서 처음 만났으니, 앞으로도 더 많은 상호작용을 볼 수 있었으면 한다.
-이번 작품에는 모든 장르가 다 포함된 듯한 느낌이었다. =본드 영화라고 꼭 한정된 이야기만을 들려주고, 보여줘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좋은 영화라면 일단 좋은 스크립트가 필요하고, 좋은 스크립트가 있다면 못 보여줄 이야기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상급 배우들이 출연하는 것이 아닐까. 이미 우리는 추격전이나 총격전 등 본드 영화의 정형화된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좋은 스토리가 더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렇다고 무거운 영화를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 관객으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끝에는 모든 걸 다 폭파시키지 않나. 더이상 바랄 게 없다. (웃음)
-이번 작품에서 주디 덴치의 캐릭터 M의 역할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럴 때가 됐다고 생각하지 않나? M은 10여년 동안 007 시리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 하지만 정작 출연하는 장면은 그리 많지 않았다. M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가 된 거다. 하지만 주디는 워낙 원더풀한 배우이기 때문에 늘 모든 장면에 나왔으면 한다. 나보다 더 많이.
-샘 멘데스를 감독으로 직접 추천했다고 하던데. 액션영화 감독으로 상상하기 힘든 그를 추천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글쎄, 나도 잘 모르겠다. 술 취해서 한 말이었으니까. (기자들 폭소) 그때 생각한 이유들이 다 난센스일지도 모르지. (웃음) 솔직히 액션영화 경력이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샘이라면 자신만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까지 보여준 샘의 감독으로서 역량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여겼고, 또 내 생각이 맞았다. 어느 날 우연히 본드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됐는데, <카지노 로얄>과 다른 영화들을 이야기하면서 샘이 엄청난 본드 팬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평생 팬이었다고 하더라. 내가 원한 건 최고의 본드 영화를 만드는 거였고, 내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해준 샘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거기에다 샘이 영국인이라는 점이 영국 특유의 맛을 살리는 데도 적격이고.
-하비에르 바르뎀과의 인터뷰에서 실바 캐릭터가 본드에게 주는 ‘불편함’을 표현하고 싶었다는데. =성공한 것 같나? (기자들 모두 ‘예스’라고 답)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외향적인 이미지뿐만 아니라 실바가 원하는 복수와 그 근원을 생각한다면 상당히 깊이있는 어둠을 표현한 거다. 하지만 그건 오락적인 요소가 있는 어둠이기도 하다. 영화 후반부에서 실바와 M 사이의 대화나 행동도 하비에르의 연기 때문에 더 깊이있게 표현된 것 같다.
-이번 작품에는 주디 덴치는 물론 레이프 파인즈, 앨버트 피니, 로리 키니어 등 엄청난 배우들이 출연한다. =그들의 연기를 지켜보면서 무척 흐뭇했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앨버트와의 연기도 너무 즐거웠다.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오래전에 앨버트도 본드 역할을 제의받았었다. 앨버트의 본드도 멋있을 텐데.
-앞으로 2편의 제임스 본드 작품을 더 할 계획이라고 알고 있는데, 다른 작품 계획은 없나. =멀리 보지 않는 타입이다. 매번 작품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다른 작품 계획은 당분간 없다. 한동안 쉬지 않고 일을 해서 휴식을 취하고 싶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