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 보이>의 상영 뒤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한 제작진과 배우 니콜 키드먼(오른쪽).
뉴욕의 대표적인 영화제인 뉴욕필름페스티벌(이하 NYFF)이 50회를 맞았다. 지난 9월28일부터 10월14일까지 개최된 이번 NYFF에서는 33편의 장편영화와 다큐멘터리가 상영됐다. 개막작으로 아직 후반작업이 채 끝나지 않은 리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가 3D로 소개됐으며, 폐막작에는 <캐스트 어웨이> 이후 오랜만에 실사영화를 선보인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플라이트>가 상영돼 큰 호응을 얻었다. 개폐막 작품이 할리우드 작품이어서 지나치게 상업화가 된 게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으나, 이런 걱정은 지난 1967년 이래 계속 있어왔다고.
주요 상영작으로 <HBO>의 인기 시리즈 <소프라노스>의 크리에이터 데이비드 체이스의 감독 데뷔작 <낫 페이드 어웨이>, 니콜 키드먼의 연기 생활을 기념하는 갈라 트리뷰트 작품으로 칸영화제에서 반향을 일으켰던 리 대니얼스 감독의 <페이퍼 보이>가 소개됐다. <페이퍼 보이>의 제작진은 관객과의 대화에서 로케이션 섭외 때 대니얼스 감독이 흑인이라는 이유로 대화를 거부하는 등 실제로 인종차별적인 경험을 했으며, 한정된 예산 때문에 배우들이 직접 메이크업을 해야 했던 일화를 털어놓았다. 늘 새로운 변신을 하고 싶다는 키드먼은 “직접 메이크업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없지만, 너무 시간이 오래 걸려서 촬영에 지장을 줄까봐 무척 걱정됐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이 밖에 노아 바움백이 감독하고 주연 그레타 거윅과 공동 집필한 <프란시스 하>와 샐리 포터가 연출을 맡고 엘르 패닝과 크리스티나 헨드릭스, 알렉산드로 니볼라가 출연하는 <진저 앤드 로사>, 조아생 라포스 감독의 <러빙 위드아웃 리즌> 등도 상영됐다. 이 작품 중 뉴욕에서 댄서가 되고 싶은 20대 후반 여성의 모습을 코믹하게 그린 <프란시스 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20대의 암울한 전망과 새로운 가정을 꾸미며 하나둘씩 멀어져가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았다.
한편 NYFF 50주년 기념 상영작 중 하나로 상영된 <프린세스 브라이드>도 화제였다. 개봉 당시에는 흥행성적이 저조했으나 해가 지날수록 연령층에 관계없이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 영화는 개봉 25주년을 기념해 감독과 작가, 출연배우들이 다시 모이는 자리를 마련해 미디어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 행사에는 감독 롭 라이너와 작가 윌리엄 골드먼은 물론 캐리 엘위스, 로빈 라이트, 맨디 파틴킨, 크리스 서랜던, 월리스 숀, 캐럴 케인, 빌리 크리스털이 참석해 촬영 중 에피소드와 팬들의 애정어린 반응에 대해 관객과 오랜 대화를 나눴다. 파틴킨은 펜싱장면이나 기타 액션장면에서 부상을 입지 않았지만, 크리스털의 코믹연기 때문에 웃음을 참느라 심하게 멍이 들었다고 말해 폭소를 자아냈다.
올해 NYFF는 지난 25년간 프로그램 디렉터를 맡아온 리처드 페냐의 마지막 영화제이기도 했다. 페냐는 남미는 물론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영화 발굴에 큰 역할을 해 유럽영화에 크게 편중되어 있던 NYFF 프로그램의 변화를 주도한 인물이다. 이와 더불어 NYFF를 주관하는 필름 소사이어티 오브 링컨센터의 교육 프로그램은 물론 상영관 확장 등 영화제의 지속적인 발전을 이룬 장본인이고, 영화제 관람객 증가에도 영향을 미쳤다. 페냐의 빈자리는 두명의 프로그래머가 채운다. 필름 프로그래머와 작가, 감독인 켄트 존스가 NYFF의 프로그램 디렉터를, 페스티벌 프로그래머와 영화평론가인 로버트 콜러가 연중 프로그램 디렉터를 맡게 됐다. 페냐는 “가장 정점에서 떠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며 “NYFF에서의 역할 때문에 그동안 포기했던 일들을 더 늦기 전에 시도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컬럼비아대학 교수직을 겸임하고 있었던 그는 앞으로도 필름 소사이어티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