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암흑 속 한 줄기 환한 빛에 투영된 스크린에 대한 매혹이라고 규정한다면, 내 첫사랑 영화는 007 시리즈다. 떡볶이집에서 나눠준 할인권으로 초등학교 근처 삼류극장에서 ‘2본 동시상영’으로 처음 본 영화도 007 시리즈였고, 새롭게 개봉, 아니 재재개봉할 때마다 극장을 찾아가게 했던 영화도 007 시리즈였다. 시리즈 중 가장 앞서 본 건 <007 죽느냐 사느냐>였다. 제임스 본드가 악어들의 등을 사뿐히 밟고 위기를 탈출하는 장면이나 악당 소굴에 침입한 본드가 이중 벽 때문에 붙잡히는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초딩 시절에는 이야기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본드 영화를 본 것 같다. 이야기보다 우리 초딩들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레이저 빔을 발사하는 시계라든가 사람의 머리를 척 하고 물어버리는 우산 같은 ‘가젯’쪽이었다. 우리가 ‘본드카’로 불렀던 애스턴마틴도 큰 관심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의 온 신경을 모았던 건 본드의 여자들이었다. 이국적이고 관능적인 ‘본드걸’들은 우리의 뇌 곳곳을 점령했고 밤이면 꿈속에 출현하는 여신들이었다. 당연히 ‘첩보원’은 우리의 꿈이 됐다. 몬테카를로나 바하마 같은 세계 각지의 호텔과 카지노를 턱시도 차림으로 오가며 마티니를 홀짝거리다 여자들의 육탄공세를 못 이기는 척 받아주는 그런 첩보원 말이다.
시간이 흐르고 머리가 커져가면서도 007 시리즈는 빼놓지 않고 봤다. 하지만 어린 날의 흥분감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첩보원의 실체가 제임스 본드보다는 어두컴컴한 취조실에서 ‘잠바때기’를 입은 채 애먼 사람들을 닦달하는 <113 수사본부>의 요원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됐고, 머리에 뿔 달린 ‘쏘련놈’들도 자본주의 세계로 편입되는 현실적 변화도 일어났다. 남성적 로망을 자극했던 숀 코너리와 로저 무어 대신 산적 스타일의 티모시 달튼이 본드의 옷을 입은 것도 어쩌면 영향을 줬으리라. ‘노동자 계급 출신 첩보원’ 또는 ‘첩보 노동자’라 부를 수 있을 <007 카지노 로얄> 이후 대니얼 크레이그의 본드는 신선하긴 하지만 예전의 화려한 향수를 자극하기엔 역부족이다. 물론 냉전도 끝난 마당에 첩보원의 스위트룸 투숙비나 카지노 판돈을 국민 세금으로 댄다는 건 말이 안되는 일이겠지만.
그러고 보면 제임스 본드도 세상의 온갖 파랑을 견뎌내며, 그리고 제이슨 본이나 이단 헌트 같은 라이벌과 경쟁을 펼치며 여기까지 버텨왔다. 50년씩이나, 게다가 나이도 먹지 않은 채 말이다. 생각해보면 가슴 짠한 그의 분투가 <007 스카이폴>에서는 또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다.
ps. 이번호 마감날 와카마쓰 고지 감독의 급작스러운 타계 소식을 접했다. 애초 와카마쓰 감독을 비롯해 세 거장의 부산영화제 마스터클래스 행사를 소개하려 했으나 계획을 수정해 와카마쓰 감독을 추모하는 특별 기획을 만들었다. 아르투로 립스테인 감독과 이소미 도시히로 미술감독의 마스터클래스는 다음호에 게재할 예정이다. 와카마쓰 고지 감독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