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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新고전주의 배우의 탄생

<루퍼>로 돌아온 배우 조셉 고든 레빗의 반오십 연대기

2012 <루퍼>

이제는 ‘조토끼’라는 이름이 더 익숙해진 조셉 고든 레빗. 그의 연기 인생도 벌써 반오십이다. 1988년 TV에서 출발한 꼬마는 어느덧 남자로 자라 2012년 할리우드의 중심에 섰다. 몇해 전부터 매년 꼬박꼬박 4, 5편씩 찍으며 범상치 않은 행보를 이어오더니 급기야 올해는 <다크 나이트 라이즈> <루퍼> <프리미엄 러쉬> <링컨>으로 박스오피스를 점령할 태세다. 하지만 그의 가치는 단순히 숫자로 표시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그의 연기의 지층을 가로지르기 위해서는 시간여행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루퍼>에서 시작해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저장된 그의 면면을 들여다봤다.

2044년의 캔자스, 미래의 갱단에 고용된 킬러 조는 매일 같은 장소에서 타임머신에 태워 보내진 목표물을 살해하고 은괴를 챙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브루스 윌리스의 얼굴을 하고 나타난 2074년의 자신에게 총구를 겨눠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서로가 자신의 과거 혹은 미래임을 알아보기에, 그리고 그 찰나를 관객에게 납득시키기에, 둘은 안 닮아도 너무 안 닮았다. 걱정도 잠시, 첫 신에서 이미 그는 브루스 윌리스의 특징을 정확히 조준해낸다. “봉주르, 베아트리스.” 오늘도 한건을 처리한 뒤 단골 식당을 찾은 그는 웨이트리스에게 낯익은 인사를 건네고, 불어는 좀 늘었느냐 묻는 그녀에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 툭, 답한다. “조금.” (Slow) 서빙을 마친 그녀가 자리를 뜬 뒤에도 그는 엷은 미소를 머금은 입술을 내밀었다 당겨 내리며 그녀의 뒤태를 끝까지 응시한다. 여기서 이미 그는 페이스오프에 반쯤 성공한다. 그는 브루스 윌리스 특유의 대충인 말투와 무심한 억양, 시선 처리 방식 등을 베껴내 교묘하게 자신의 얼굴 위에 입혀내는데, 특히 입매의 움직임이 단박에 원본을 접사한다. 그렇게 그는 다른 사람의 얼굴을 벗겨 자신의 가면으로 재창조해낸다.

하지만 2001년만 해도 그는 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TV쇼 <솔로몬 가족은 외계인>에서 십대 소년 토미 솔로몬의 육신에 갇힌 최고령 외계인의 영혼으로 6년간 살아온 그는 ‘이제 그만’을 외쳤다. LA에서 저널리스트 부모 아래 태어나 6살부터 TV와 영화와 광고를 들락날락거리는 동안 이 애늙은이의 마음속에 연기에 대한 환멸이 싹터버린 것이다. <흐르는 강물처럼>이나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와 같은 흥행작이 안긴 만족감보다 <20년 후에> <픽킹 업 더 피시스> <러빙유> 등 몇몇 졸작들과 광고를 찍으며 얻은 낭패감이 컸던 탓이다. “더이상 연기를 즐길 수 없었던” 그는 할리우드에 대한 모든 반감을 독립영화 <매닉>에서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문제아 라일 젠슨에게 실어낸 뒤 뉴욕에 있는 컬럼비아대학으로 떠났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열아홉에 만난 뉴욕은 그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이 세계와 관계를 맺어보고 싶었어요. 그때 연기로 돌아오기를 결심했죠.”

2004년, 복귀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새로운 문을 열어준 이가 그렉 아라키 감독이다. <미스테리어스 스킨>에서 어릴 적 자신을 성추행했던 야구 코치를 그리워하며 문란한 생활을 자초하는 게이 소년 닐 맥코믹은 그에게 연기의 성감대를 새삼 일깨워주었다. “착한 아이, 똑똑한 아이, 웃기는 아이, 심지어 성난 아이도 맡아봤지만, 내게 섹시한 아이를 맡겨준 건 그가 처음이었어요.” 그렉 아라키는 <매닉>의 라일 젠슨에게서 닐 맥코믹의 얼굴을 새롭게 끄집어냈고, 그는 본인도 몰랐던 얼굴을 발견한 데 굉장한 희열을 느꼈다. 그 얼굴은, 이듬해 <브릭>에서는 헤어진 여자친구를 죽음으로 몰아간 원인을 찾기 위해 경찰 몰래 살벌한 비밀 수사를 벌이는 지능적 소년의 얼굴로, 3년 뒤 <룩아웃>에서는 교통사고 이후 단기기억장애와 자기 불만족에 시달리던 중 은행강도단에 이용당하는 순진한 청년의 얼굴로 또 탈바꿈한다.

2010 <인셉션>

2005 <브릭>

2009 <500일의 썸머>

‘개성없음’이라는 개성

새로운 얼굴에 대한 그의 탐닉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창 TV와 광고에서 경력을 쌓아나가고 있던 12살 무렵, 소년은 더스틴 호프먼이라는 배우에 빠져들었다. “매번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배우의 얼굴은 그에게 영화 연기에 대한 원초적 경험을 제공했다. 그를 보며 소년도 자신의 얼굴을 지우고 그 위에 다른 누군가의 얼굴을 그려넣고 싶었으리라. 하나로 묶이지 않는 그의 총천연색 필모그래피는 그런 욕망의 산물이다. 그는 새로운 캐릭터를 부여받을 때마다 10번이면 10번 모두 자신과 전혀 다른 누군가를 발견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못 알아봤다”는 말은 최고의 칭찬이다. “내가 출연한 영화를 보면서 자신과 비슷한 모습을 찾을 때 무언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항상 내 캐릭터에서 나 자신을 비우고 싶다. 그래서 나는 게리 올드먼, 대니얼 데이 루이스, 메릴 스트립처럼 카멜레온 같은 배우들을 좋아한다.” 그의 말은 어느 극작가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위대한 배우는 전부이자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그는 아무런 개성도 없기 때문에 어떤 인물이든 연기할 수 있다.”

개성없음. 흥미롭게도 그 점 때문에 그는 비슷한 시기에 주목받기 시작한 배우들과 완전히 다른 색깔을 지닌다. 톰 하디, 채닝 테이텀, 라이언 고슬링, 크리스 헴스워스, 크리스 파인…. 하나같이 선이 굵은 배우들이다. 문제는 그 굵은 선이 때로 그들의 뛰어난 연기력에 한계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조셉 고든 레빗에게는 그런 절대적인 실루엣이 없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태생적으로 지닌 실루엣을 쉽게 흔들어 전혀 다른 실루엣을 만들어낼 수 있다. 헤어스타일, 의상, 걸음걸이의 모양과 속도, 말의 질감 등을 포함해 그는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신을 흔들어 새로운 인물을 빚어낸다.

가령 2005년작 <브릭>에서 브랜든 프라이어는 귀를 덮을 정도의 곱슬머리에 안경을 쓰고 있으며 아저씨들이나 입을 법한 ‘잠바때기’의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넣고 어깨를 잔뜩 구부린 채 성큼성큼 걷는다. 마치 어두운 동굴을 연상시키는 그의 실루엣은 말없이 비밀스러운 성격과 기운을 뿜어낸다. 그런가 하면 메탈리카의 옛 베이시스트를 모델로 삼아 반나체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헤셔(<헤셔>), 평범한 직장인의 인상을 설득력있게 체현해낸 아담 러너(<50/50>)나 톰 한센(<500일의 썸머>), 한껏 밀어붙인 ‘올백’ 머리와 지나치게 딱 떨어지는 슈트 차림이 딱 봐도 자유분방한 이미스(톰 하디)와 대비를 이루는 아서(<인셉션>)의 실루엣은 또 얼마나 다른가.

2009년, <500일의 썸머>를 기점으로 이 카멜레온형 배우는 전성기를 맞는다. 그의 얼굴은 사랑의 사계절을 통과하며 찬란하게 빛났다. 세상 남녀가 톰 한센의 일희일비에 절대 공감을 표했다. 무정과 배려, 낙천주의와 비관주의, 고집과 아량, 순정과 기만이 모두 그의 감정 속에 뒤섞여 있었고, 그 감정을 그는 시시때때로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 투명한 연기가 그를 영화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만들었다. 한 평자는 그를 1950~60년대에 희비극을 오가며 이름을 날렸던 배우 잭 레먼에 비교하며 “열망과 절망 사이를 오가는 표정의 풍부함”을 호평하기도 했다.

2004 <미스테리어스 스킨>

2011 <50/50>

2012 <다크 나이트 라이즈>

진지한 배우보다는 진실한 배우

2010년, 그는 <인셉션>으로 크리스토퍼 놀란 군단에 합류한다. 프랜차이즈의 물결에 그도 몸을 담은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그가 유장한 비주얼을 뽐내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에서 극도로 경제적인 연기를 지켜낸다는 점이다. 마치 20세기 고전영화속의 배우들처럼 말이다. 실제로 그 자신도 “연기는 20세기적 예술”이라고 인정한 바 있는데, 저 유명한 무중력 장면에서 그가 선보이는 액션은 21세기적 룩을 입고도 어딘지 과묵하고 우아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연의 역할에 충실하며 주변 배우들의 아우라를 침범하지 않는다.

그 20세기적 경제성을 <다크 나이트 라이즈>의 존 블레이크도 공유한다. 그가 브루스 웨인을 찾아가 장광설을 펼칠 때다. 그는 놀란 형제가 써놓은 대사의 비효율성을 십분 감안해 잔동작을 최소화하고 온전히 대사에 집중한다. 그리고 더도 덜도 않고 그 신이 거기 있는 이유, 즉 배트맨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서 딱 멈춘다. 그렇듯 자기과시적 제스처를 깔끔히 걸러낸 그의 연기는 진실성을 획득한다. 옆에서 그를 지켜봐온 게리 올드먼도 그의 “정직한” 연기를 칭찬해 마지않았으며, 필립 세이무어 호프먼도 같은 이유로 그를 현재 가장 뛰어난 배우 중 하나로 지목했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에서 그가 하는 연기는 가장 어려운 연기다. 진실성과 가치는 연기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근데 그걸 그는 해내고 만다.” 어느 인터뷰에선가 조셉 고든 레빗 본인도 자신을 “진지한(serious) 배우보다 진실한(sincere) 배우로 생각해달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미 그의 바람은 이루어졌는지도 모르겠다.

다시 2044년의 캔자스, 그는 2074년의 자신과 마주보며 그 단골식당에 앉아 있다. 그는 현명하게도 자신이 브루스 윌리스의 30년전 버전이라는 관념을 내팽개친다. 자신도 의식하는 순간 관객도 의식하게 될 것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미래에서 날아온 가면과 결별을 고하고 현재의 얼굴로 살기 시작한다. 어느덧 모사의 정확성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제 갈 길을 가는 그의 연기는 편안하다. 하지만 그 편안함도 실은 그가 <씬시티>의 오디오 트랙을 수없이 반복해 들으며 이미 몸에 익힐 대로 익힌 정확성에서 비롯되는 것일테다. 그렇듯 그가 완전히 새로운 얼굴을 입기까지는 닳고 닳도록 가면을 이리 뜯어보고 저리 뜯어보는 지난한 과정이 자리한다. 그것은 영할리우드와 프랜차이즈 산업의 덩치가 나란히 커지면서 사라져가는, 연기라는 예술의 한 가지 유물이다.

2012년, 그를 할리우드가 잃어버린 얼굴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프랜차이즈의 파고에 휩쓸려 금세 생기를 잃어버리는 배우들 사이에서 그는 비교적 자신을 잘 지켜내고 있는 배우 중 하나다. 그는 여전히 영화 연기의 예술성과 진실성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무모한 도전을 벌이기를 즐긴다. 그 태도에 얼마간의 순진감이 어려 있다 해도 좋다. 그는 또 <프리미엄 러쉬>에서 자전거에 올라 하루 종일 달리고 또 달릴 것이며, 스티븐 스필버그의 <링컨>에서 대니얼 데이 루이스의 아들이 되어보려 할 것이다. 그 매번의 몰두가 그의 얼굴을 어떻게 변화시켜나갈지 지켜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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