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살, 싱글, 산부인과 의사인 민디 라히리(민디 캘링)의 삶은 엉망진창이다. 의사가 되자마자 마음에 꼭 드는 치과의사와 운명 같은 사랑에 빠진 것도 잠시, 치과의사는 북유럽 미녀와 결혼한다며 민디를 뻥 차버린다. 예의상 보낸 청첩장이었겠지만 민디는 결혼식에 참석했고, 구석 테이블에서 내내 술만 마시다 축배를 들겠다며 앞으로 나가서는 독설을 퍼붓고 퇴장한다. 이미 정신줄을 놓아버린 그녀는 굴러다니는 자전거를 집어타고 남의 집 수영장으로 돌진하는데, 그 결과 자잘한 경범죄가 더해져 하룻밤 유치장 신세를 진다. 이제 바닥을 쳤으니 앞으로 내 인생은 달라질 거야, 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인생이 하루아침에 달라질 리 없다. 다음날 친구가 소개해준 괜찮은 남자와의 데이트는 급한 환자가 생기는 통에 제대로 시작도 못했으니 말이다. 드레스를 벗고 수술복으로 갈아입은 민디는 중얼거린다. 내 인생은 왜 이럴까?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의 클리셰를 보란 듯이 펼치며 시작하는 <더 민디 프로젝트>는 <폭스>가 2012년 가을 시즌에 새롭게 선보이는 TV시리즈다. <더 민디 프로젝트>의 민디는, <오피스>에서 제멋대로이고 속수무책이었던 켈리 카푸르로 얼굴을 알린 민디 캘링이 연기한다. 인도계 미국인인 캘링은 진한 피부색, 뚱뚱한 체형, 새되고 높은 톤의 목소리와 십대 소녀 같은 수선스러운 말투까지, 전형적인 로맨틱코미디의 여주인공이 되기에는 많은 것이 부족하고, 장르로 보았을 때도 로맨스보다 코미디가 어울리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책 표지로 책의 내용을 판단하지 말라는 금언은 이럴 때 필요한 한마디일 거다. 캘링이 코미디 장르에 어울리는 건 외모 때문이 아니라 코미디에 바친 열정 때문이다. 열두살 때부터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열성적인 시청자였던 그녀는, 고등학생 때부터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려고 노력했고, 대학 시절에는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의 관계를 희화화한 <맷 & 벤>이라는 연극을 무대에 올렸다. <맷 & 벤>은 2002년 뉴욕프린지페스티벌에서 수상함으로써 캘링을 방송계의 주목받는 신인으로 급성장시켰고, 그 결과 <오피스>로 데뷔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오피스>는 캘링에게 그저 연기자로의 문을 열어준 것이 아니라, TV작가로서의 문도 열어주었다. “해가 지기 전에는 퇴근하지 않는다”는 개인적인 신념에 따라 하루 16시간을 작가실에서 보냈다는 캘링은, <오피스>에서 22개 에피소드의 각본을 썼고, 웹 에피소드를 포함해 5편을 연출했으며, 제작과 총괄 제작에 모두 이름을 올렸다. <더 민디 프로젝트>를 위해 <오피스>를 떠난 지금도 자문 역으로 꾸준히 활동 중이다.
사실 모큐멘터리도 리얼리티쇼도 아닌 드라마의 타이틀이 크리에이터와 이름을 공유한다는 건 의미심장하다. 그만큼 <더 민디 프로젝트>의 민디 캐릭터는, 현실의 민디 캘링과 많은면에서 닮아 있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 <노팅힐>의 대사를 줄줄 외우는 민디의 캐릭터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캘링 역시 자타가 공인하는 로맨틱코미디의 팬이다. 그녀는 로맨틱코미디가 SF의 하위 장르라고 설명한다. 캐서린 헤이글 혹은 샌드라 불럭으로 분류되는 캐릭터들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에일리언이며, 현실과는 다른 규칙이 적용되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는 해석이 덧붙는다. <뉴요커>에 로맨틱코미디에 대한 칼럼을 기고한 적이 있으며, <Is Everyone Hanging Out Without Me?(And Other Concerns)>라는 에세이집의 한 챕터를 로맨틱코미디에 대한 분석으로 바친 사실을 미루어볼 때, <더 민디 프로젝트>는 장르에 대한 오랜 관찰에서 태어난 TV시리즈라는 믿음이 생긴다. 고작 에피소드 2회를 보았을 뿐이지만 심장이 말랑말랑해지는 로맨스와 불편한 구석이 없는 유머, 진솔한 웃음까지 발견했다. 2012년 새 코미디 중 단연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