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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훈] 영화에 대한 자신감이 우리의 전략이다
김성훈 사진 오계옥 2012-10-05

창사 10주년 맞은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유정훈 대표

2012년 상반기와 여름 극장가를 주도한 한국영화는 각각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468만여명,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와 <도둑들>(9월18일 현재 1293만여명 동원)이었다. 두 작품의 공통점은? 모두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이하 쇼박스)가 투자배급한 영화다. 공교롭게도 쇼박스가 올해로 창사 10주년을 맞았다. 지난 10년 동안 쇼박스는 <괴물> <도둑들> <태극기 휘날리며> <국가대표> <디 워> 등 5편의 영화를 역대 최다 관객 수 10위권에 올리는 등 수많은 영화를 관객에게 선보였다. <도둑들>이 막판 스퍼트를 하고 있던 9월18일 오전, 쇼박스 사옥에서 그간 언론에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던 쇼박스 유정훈 대표를 만나 창사 10주년의 소회를 물었다.

-CJ의 <광해, 왕이 된 남자>, 롯데의 <간첩>과 달리 쇼박스는 이번 추석에 라인업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항간에는 역대 최다 관객 기록 경신을 앞둔 <도둑들>을 밀어주기 위한 의도가 아니냐는 추측도 있습니다. =쇼박스 하반기 라인업은 <박수건달>과 <회사원> 정도입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두 작품 때문에 추석시장에 뛰어들지 않았어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분위기가 좋잖아요. <간첩>도 곧 개봉을 앞두고 있고. 이 밖에도 추석에 개봉하는 외화도 많아요. 이렇게 작은 시장에 우리 영화까지 집어넣고 싶지 않았어요. 관객에게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했어요.

-<도둑들>의 배급 전략에 대해 고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올해 할리우드 최고의 기대작 <다크 나이트 라이즈>와 맞붙었잖아요.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게 뭐하지만 배급 전략은 따로 없었어요. 그만큼 영화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어요. 최동훈 감독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도둑들>은 안 챙긴 영화 중 하나였어요. 그래서 자신있게 개봉일을 잡은 거예요. <다크 나이트 라이즈>를 앞에 붙여서 가는 걸로. 이건 쇼박스 전체 배급 전략과도 깊은 관련이 있어요.

-쇼박스의 배급 전략이 뭔가요. =현장에서 열정적으로 만든 영화를 최소한 3주 이상 혹은 한달 이상 관객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영화가 관객에게 제대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쇼박스가 매년 배급하는 작품 편수가 한국, 외국영화 전부 합쳐서 14편 안팎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 정도가 우리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편수입니다.

-2008년 쇼박스 대표로 선임됐습니다. 당시 김우택 전 대표(현 NEW 대표), 김경술 상무, 김대선 본부장, 쇼박스의 자회사인 모션101 정태성 대표(현 CJ E&M 영화사업부문장)가 회사를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회사가 가장 어려울 때 대표를 맡은 셈입니다. =부담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요. 막막했어요. 그래도 원래 성격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네거티브한 에너지보다 포지티브한 에너지가 많이 나오는 편이에요. 일단 찾아야 할 것부터 찾아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때 케이블 채널인 온미디어가 매각됐고. 무엇보다 극장 체인인 메가박스가 매각됐습니다. =사실 극장이 없는 만큼 좋은 점도 있어요. 참 난센스인데, 극장이 있었다면 계속 안일했을 것 같아요. 메가박스가 있던 과거의 쇼박스는 안일함이 없지 않았어요. 프로덕션을 70% 정도만 만들어도 우리에겐 극장이 있으니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 극장이 없어지면서 100을 해도 100을 찾을까 말까 하는 상황이 된 거죠. 극장이 없어지면서 콘텐츠의 질적 향상에 집중해보자 했어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했고. 수직계열화가 됐다고는 하지만 극장은 여전히 상식적입니다. 극장은 잘되는 영화를 걸지, 안되는 영화를 걸진 않거든요. 안되는 영화를 걸었다간 극장도 손해를 보게 됩니다.

-대표를 맡자마자 조직의 체질 개선 작업부터 들어갔다고들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면 ‘우리의 원칙은 이렇다’라는 말을 하곤 하잖아요. 쇼박스는 그런 원칙이 없어요. 감독, 제작사, 배우 모두에게 맞춰줘요. 때로는 감독, 또 때로는 제작사와 어떤 커넥션이 있기도 하고. 외부에서 보면 아주 희한한, 여러 플랫폼을 가지고 있어요. 직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의 마케팅을 강화하기 위해 현장에 내보내요. 투자배급사로서 감독, 제작사의 입장을 잘 알기 위해서죠. 기본적으로 체질 개선이라는 건 쇼박스만 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 파트너의 체질도 함께 개선되어야 해요. 이걸 위해 그간 우리와 함께했던 파트너들과 수많은 논의를 나눴던 거예요.

-그러나 대표를 맡은 이후에도 한동안 ‘쇼박스 매각설’이 충무로에 나돌았습니다. =당시 벌어지는 모양새가 그렇게 보여질 수밖에 없었어요. 방송과 극장이 매각됐잖아요.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 누가 봐도 ‘쇼박스까지 매각되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때 직원들에게 이렇게 얘기했어요. ‘그룹에서 매각을 하라면 난 한다. 그러나 우리가 잘하고 있는데 그룹에서 뭐라고 하면 (잘하고 있는데) 왜 그런 결정을 내리냐고 할 거다. 잘하고 있으니까. 결국 살아남는 건 우리가 결정하는 거다. 앞으로 2, 3년 동안 그것을 위한 작업을 함께해나가자.’ 그때 쇼박스가 좀더 내실을 갖추려면 콘텐츠의 질적 향상과 콘텐츠의 풀을 확장하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콘텐츠의 질적 향상을 위해 구체적으로 쇼박스 시스템의 어떤 부분에 손을 댔나요. =과거에는 감독, 제작사, 투자배급사 딱 세 가지 구조였어요. 누군가가 준비해놓은 프로젝트를 잘 골라 시장에 내놓는 방식이었죠. 그러나 기획개발부터 최적의 시스템을 갖추는 게 필요했어요. 가령, 어떤 아이템은 이 제작사가 잘할 것 같고 이 제작사와 그 감독이 만나면 좋은 호흡을 보여줄 것 같다고 하면 기획부터 캐스팅까지 각 파트가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파트너 제작사와 함께 최적의 조합을 매칭시키는 데 주력했어요. 장훈 감독의 <의형제>가 그렇게 내놓은 첫 케이스였어요. 2008년부터 2, 3년간 ‘최적화 시스템’을 적용해 준비한 작품이 이제 시장에 나오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내실을 기할 겁니다. 여기서 내실이라고 하면 배급에 마케팅을 합친 개념입니다.

-지난해 개봉한 <모비딕>이나 <고지전>을 보면 감독의 개성을 어느 정도 존중한다는 인상도 받습니다. =가장 듣기 좋아하는 말이 ‘흥행했다’가 아닌 ‘감독이 잘했더라’, ‘배우가 살아 있더라’, ‘제작이 훌륭했다’ 같은 말입니다. <고지전>의 흥행 성적은 아쉽지만 상도 많이 받았고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어요. 지난해 최고의 한국영화 중 한편으로 꼽힌 <모비딕>도 그렇고. 시장에서 흥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도 그런 영화들을 만들 겁니다.

-서강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습니다. 처음부터 영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닌가 봅니다. =중•고등학생 때 단성사, 대한극장을 돌며 영화를 하루에 세편씩 보고 그랬어요. 멀티플렉스를 온몸으로 겪은 셈이죠. 그만큼 영화와 드라마 같은 콘텐츠에 관심이 많았어요. 첫 직장이 삼성전자였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 조기에 나왔어요. 제조업 산업은 더이상 비전이 없다고 느꼈거든요. 나오자마자 들어간 게 LG애드라는 광고대행사였습니다. 중간에 방송국 PD로 전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안 갔어요. 광고를 할 만큼 했다 싶어 딴거 해보고자 메가박스, 라이즈온(베니건스, 오 마켓)을 거쳐 여기까지 온 거죠. 영화를 할 거라는 생각은 안 했지만 콘텐츠쪽으로 나가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은 있었어요.

-가장 좋아했던 영화는 어떤 작품인가요. =루이지 코지 감독의 <라스트 콘서트>를 대한극장에서 네번 봤어요. 음악이며, 애절한 감성이며,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어요. <다이 하드>도 그렇게 재미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좁은 공간에서 말 그대로 ‘다이 하드’한 영화를 어떻게 만들 수 있지 하며 감탄했을 정도예요. 유일하게 안 보는 영화가 호러예요. (웃음) 회사에서 호러를 하긴 하지만 시나리오를 읽을 때 그리 재미있게 읽진 않아요.

-남성적이고, 선이 굵은 성격이라 들었습니다. 본인이 좋으면 바로 실행하는 결단력도 있다고. 그런 성격의 장단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성격이라기보다는 대표인 제가 가져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답이 없는 산업입니다. 다수결로 결정할 수 없습니다. 통섭(統攝)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전체를 도맡아 다스린다는 뜻인데, 영화 역시 여러 지식이 하나로 모였을 때 결정을 내려야 될 시기가 있어요. 저는 통섭이라는 말을 믿어요. 어떤 아이템을 두고 ‘이건 되겠다’고 말할 때는 제 내부에서 쇼박스 직원들의 역량 전부를 고려한 거거든요. 분명 의사결정이 빠른 건 맞아요. 사실 영화는 잘되면 직원들 덕이고, 못되면 제 책임입니다. 윗사람은 책임지라고 있는 겁니다. 대표가 책임을 질 줄 알아야 직원들이 세공 조절을 할 수 있어요. 뭐가 잘못되면 남을 보지 말고 일단 스스로를 돌아봐야 합니다. 제게도, 직원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입니다.

-쇼박스를 운영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과 가장 아쉬웠던 순간을 꼽는다면. =인생을 살아오면서 이런 생각을 항상 염두에 둡니다. 어제는 이미 지나갔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지나간 어제에 대해 아쉬워한 적 없고, 오지 않는 미래를 두고 걱정하는 건 바보 같다는 말이다. 가장 기뻤던 순간은 <도둑들>이 관객 1200만여명을 동원한 거고 아쉬운 건 없어요. 오늘이 가장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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