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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없이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씨네21>과의 인터뷰를 통해 1998년부터의 김기덕을 다시 돌아보다

<씨네21>은 김기덕 감독의 초기작부터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온 매체에 속한다. 그와 나눈 인터뷰도 여러 차례다. 따라서 영화에 관한 김기덕 감독의 생각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짐작게 해주는 인터뷰 요약 발췌 모음을 준비했다. 여전히 중요해 보이는, 혹은 지금 보니 의미가 새로워 보이는 내용들을 중심으로 엮었다. 맥락과 분량을 위해 일부 편집을 거쳤으나 문답이 오고간 상황은 되도록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두 영화에 대해 나는 제작자라기보다는 후원자에 더 가깝다. 난 항상 감독이고 싶지, 제작자이고 싶진 않다. 평가를 하자면 <아름답다>는 참 괜찮은 소재인데, 완성된 것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베를린영화제에도 초청되고 감독에겐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영화는 영화다>는 꽤 만족스러운 완성도를 보이는데, 사실 시나리오는 훨씬 경쾌했다. 그걸 장훈 감독이 조금 무겁게 누른 것이다. 다들 거꾸로 알고 있지만. <영화는 영화다> 제작비는 정확히 6억5천만원 들었다. 제작자들에게 이 영화가 대안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결과가 좋기를 바란다.” 672호, <비몽> 개봉 직전, <아름답다>와 <영화는 영화다>의 제작자로서의 입장에 관하여 질문 받자

“내 영화는 만들면 적어도 20개국 이상 판매되고 있다. 내 영화에 대한 한국 관객만 따지면 2만, 3만명이지만, 전세계로 따지면 1천만명 정도다. 그중 한국은 2~3% 되기 때문에 넓게 봐서 수출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 것이다.” 588호, <> 촬영 중, 국내 개봉인데 왜 수출이라는 표현을 고집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말 없이도 소통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사실 처음부터 대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시나리오 쓸 때는 언제나 대사가 존재합니다만 가지 치듯이 서서히 쳐냅니다. 일단 시나리오상 대사를 다 쓴 다음에 대사를 없애고 액션을 보강해가는 과정이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나 스스로는 이미 시나리오를 작성하면서 많은 대사를 주고받은 거지요. 그리고 관객이 스스로 언어를 만들어내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기도 합니다. 마치 관객과 함께 시나리오를 다시 쓰는 것처럼. <빈 집>이 베니스에서 상영했을 때 저울 눈금이 제로가 되는 장면이 나오자 모두 박수를 쳤습니다. 그건 제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가능한 것이구나. 말도 안되는 구성과 형식이 영화라는 이름으로 충분히 소통이 가능하구나’ 하고 말이죠.” 471호, <빈 집> 개봉 직전, 자신의 영화에서 대사가 점점 줄어드는 것에 관하여

“맞다. 김영임씨가 부른 노래인데, 어떤 TV프로그램에 나와서 이 노래를 불렀을 때 듣고서 반했다. 흐드러지는 운율이 내 근저에 있는 심리를 건드렸다. 그래서 이 노래에 맞는 이미지를 찾았다. 이 노래가 먼저 있었고 노래에 맞춰 장면을 만들었다. 나중에 1차 편집하고 보니까 노래 끝하고 영화 끝이 딱 맞아떨어져서 더 자르고 붙일 필요도 없었다. 신기했다.” 419호,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개봉 직전, 김기덕 감독이 출연하여 맷돌을 끌고 산을 오르는 고행장면에 <아리랑>이 흐른다는 지적에

“전에 한석규가 어느 인터뷰에선가 정말 지독한 악역을 해보고 싶다고 했어요. 몇몇 배우들이 계속 그런 인터뷰를 했거든요? <나쁜 남자>는 정말 지독한 악역인데도 뭐, 안 하던걸요? (일동 폭소) 유지태가 <리베라 메> 찍을 때도 <수취인불명> 시나리오를 직접 갖다줬는데, 연락도 없고, 기다리는 것도 자존심 상하고 그래서 신인으로 가자, 그랬죠. 예산도 스타들이 한다, 안 한다 하면 복잡하잖아요.” 325호, <수취인불명>과 <나쁜 남자> 사이. <와이키키 브라더스> 개봉을 맞은 임순례 감독과 대담하며 왜 기존 충무로 배우가 아닌 신인 배우들과 일하는지에 관하여

“해병대에서 5년을 보낸 뒤 제대한 뒤에도 자주 악몽에 시달렸다.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은 대개 비슷하게 느끼는 것이지만 군대 생활이 나를 세뇌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격성, 경계심, 의심, 적대감 그런 것이 뿌리깊게 남아 있다. 배우들이 2박3일간 해병대 지옥훈련을 하는 걸 보면서 다시 악몽을 꾸기도 했다. 군대는 굉장히 단순하고 무식한 조직이지만 뭔가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을 투명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인간이 이렇게 쉽게 길들여지는구나를 확인하게 된다. 적을 철조망 너머에서 찾을 게 아니다. 군대를 거쳐온 우리, 군대를 갈 우리가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내고 총질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건 가학이 아니라 자학이다.” 358호, <해안선> 개봉 직전, 개인적인 경험의 “악몽에서 벗어나려는 절박함”이 엿보인다는 질문자의 의견에

“저는 <악어>부터 종교영화라고 생각해요. 종교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고, 지금도 힘들 때면 사도신경을 많이 외워요. 제가 갖고 있는 기독교관은 모호해요. 내 영화는 위악과 독선과 자해가 혼재되어서 누구든지 골라먹을 수 있는 것처럼 보여요. 내 안의 불분명한 정체성 중에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저는 모르는 거예요. 저는 그중에 무엇을 고르기 위해 계속 영화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래서 <악어>부터 종교영화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물론 종교영화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죠. 스스로 행해 가는 의식적 자연과 물리적 자연을 저는 동일한 것으로 보거든요. 그건 다시 말하면 순수에 대한 회귀거든요. 지금은 너무나 많은 인공적 공법들이 그런 걸 해체했어요. 그래서 어느 시대보다 많이 고민을 하고, 많은 것을 동원하며 살아야 해요. 야생의 원시시대에는 의식보다는 어쩌면 시선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태초라면, 신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거죠. 명확하진 않지만 이런 이야기가 김기덕이 아닐까, 하는 거예요. 복잡하죠, 들어보니까. 제가 물리적으로 가스펠 송을 쓰니까 종교적이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악어>부터 저는 종교적이었어요. <악어>에서 위악적인 인간한테 가장 필요한 것은 복음이었을 것 같아요.” 339호, <나쁜 남자> 개봉 직후, 질문자가 마지막 장면에 복음성가가 흐르는 것을 지적하자

“이건 26살에 목매달아 죽은, 혼혈아인 내 친구의 이야기다. 내가 보고 싶어 만든 영화일 수도 있고 그 친구에 대한 제사 같은 영화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가슴 아픈 이야기를 하는 것일 뿐이다. 내 영화 성향이 점점 더 절망에 가까워지는 건 아니다.” 300호, <수취인불명> 개봉 직전, 전작들보다 더 절망적인 느낌이 든다는 질문자의 지적에

“<악어>나 <야생동물보호구역>처럼 내가 직관적으로 느낀 주인공을 등장시킨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다를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내가 아는 데까지의 여자 이야기다. 따라서 나는 빠져나와 있고 바깥에서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게 당연하다. 소재 면에서 다르므로 다르게 이해하고 들어가야 한다. 내가 문제를 던지고 해결하는 영화가 아니라 관객에게 ‘너라면 어떻게 할래’라고 묻는 영화다.” 174호, <파란 대문> 개봉 직전, <야생동물보호구역>과 <악어>와 달리 관조적인 면모가 엿보인다는 질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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