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의 이야기는 전부 끝났다. 기억상실증에 걸렸던 특수요원 ‘제이슨 본’은 세편의 본 시리즈(<본 아이덴티티> <본 슈프리머시> <본 얼티메이텀>)를 통해 결국 진실을 알아냈고 그를 그렇게 만든 상부 조직은 위기에 처했다. 본은 개인 대 국가의 싸움에서 승리한 가장 인상적인 영웅 중 하나로 영원히 남을 것 같았다. 하지만 우리가 본의 부활을 원했으니, 혹은 우리가 그럴 것이라고 믿는 본 시리즈의 제작진이 있었으니 그는 돌아오고야 만다. 다만 다른 배우와 인물로 돌아온다. 맷 데이먼이 더이상 출연하지 않을 때 영화는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하는가. 제작진은 본 시리즈 3편 전부의 각본을 맡은 토니 길로이를 연출 의자에 앉혔고 제레미 레너라는 새롭게 떠오르는 액션배우를 주연배우로 내세웠으며 그의 중요한 적수를 에드워드 노튼에게 맡겼다.
그렇게 하여 각기 다른 두 장소에서 <본 레거시>가 시작한다. 국방부 본부 그리고 알래스카 특수공작단 훈련소. 제이슨 본이라는 인물이 출현하여 CIA 산하 기관 트레드스톤을 위기에 몰아넣고 있을 때다. 트레드스톤이 주도한 인간 병기 육성 프로그램의 실체가 낱낱이 밝혀질 위기에 처해 있다. 하지만 트레드스톤만 그런 프로그램을 개발한 게 아니었던 것. 국방부에도 아웃컴이라는 유사한 비밀 프로그램이 있었다. 아웃컴을 이끄는 바우어(에드워드 노튼)는 문제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아웃컴 프로그램과 관련된 모든 이들을 제거하기로 결정한다. 알래스카 특수공작단 훈련소에서 훈련 중인 특수요원 애론(제레미 레너)이 그중 하나다. 한편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과학자 마르타(레이첼 바이스) 역시 제거 대상이다. 애론은 본능적으로 마르타가 자신의 조력자가 될 것임을 직감하고, 마르타의 목숨을 구해주면서 둘은 한배를 타게 된다.
무엇보다 본 시리즈의 강력한 추종자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했을 것이다. 제작진이 선택한 방식은 전작들로부터 최대한 벗어나는 게 아니라 전작들을 최대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일단은 이야기와 인상을 끌어들인다. 일단 제이슨 본을 주인공으로 한, 특히 <본 얼티메이텀>을 중심으로 한 A의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 <본 레거시>라는 A1의 이야기를 다시 설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본만 있었던 게 아니라 본에 버금가는 또 다른 영웅 애론이 있었다는 설정이다. 초반부에는 본을 떠올리게 하는 애론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예컨대 물속에 떠 있는 애론의 실루엣이 그가 등장하는 첫 장면이다. 본의 마지막 모습으로 가장 유명했던 장면을 애론의 첫 장면으로 환기시켜 인상을 유지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니 (864호 ‘신전영객잔’에 실린 김혜리 기자의 정확한 지적을 참고할 때), <본 레거시>는 본 시리즈의 이야기를 ‘리부트’한 결과물이다.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의 액션 디렉터 댄 브래들리가 다시 액션 디렉팅을 맡았으니 액션 연출에 있어서도 전작들의 특징이 고수되고 있다는 건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이를테면 장소에 따른 액션 연출들. 대자연의 공간 알래스카, 마르타의 이층집, 빽빽한 판자촌들이 즐비한 마닐라의 도심지 등 공간과 장소에 따라 액션이 만들어진다. 대체로는 예의 본 시리즈의 액션에 비추어도 크게 손색이 없다. 다만 영화의 후반부 마닐라의 도로를 질주하며 완성된 오토바이 추격 신은 마무리가 좀 싱거운 편이다. 오히려 군중 신이나 추격 신보다 심리적 스릴이 강조되는 장면에서는 역시 연출자 토니 길로이의 장점이 엿보인다.
사실 <본 레거시>는 아무리 잘해도 본전치기가 될 가능성이 높은 프로젝트였다. 그 우려에 비한다면 선전한 편이다. 맷 데이먼과 제레미 레너 혹은 본이 처한 상황과 애론이 처한 상황에서 무게감의 차이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이 영화의 약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의 실력 발휘라면 새로운 영웅의 진로를 궁금하게 만드는 데에는 일단 성공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