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기세가 대단하다. <도둑들>이 1200만 관객을 그러모으는 와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420만명을 동원했다(8월30일 기준). <이웃사람>도 개봉 일주일 만에 140만명을 극장으로 끌어들였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통계를 보면 한국영화의 상승세는 더욱 뚜렷해진다. 지난해의 경우 1월부터 7월까지 한국영화가 동원한 관객 수는 3800만명인데 올해는 같은 기간 동안 5400만명이다. 대충 계산해봐도… 세상에, 40%나 높아진 수치다.
한국영화가 관객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그것도 별안간 받고 있는 데 대해서는 이미 많은 분석이 나왔다. <씨네21>도 지난 6월에 상반기 한국영화 상승세의 원인을 따져본 적이 있다(858호 ‘기세당당, 한국영화’). 그 기사에서 강병진 기자는 청소년 시절부터 한국영화를 즐겼던 30대가 확고한 시장 기반이 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여기에 (투자가 부진했던 탓이긴 하지만) 오랜 시간 기획개발된 영화의 저력이 나타난 측면도 있고, 조연들을 ‘떼’로 출연시키는 트렌드에 관객이 호응한 점도 있을 것이며, 할리우드영화들이 의외로 약했고 너무 이른 더위로 극장이 값싼 피서지로 각광받은 탓도 있을 터. 이러한 현상에 관해서는 보다 면밀한 분석이 있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이런저런 지표로 볼 때 한국영화가 회복세를 타고 있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특히 극장 흥행성적과 별도로, IPTV를 중심으로 부가판권시장이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질 때가 온 것이다. 한국영화계는 정상화됐는가? 2006년 부글부글 쌓였던 거품과 함께 우르르 무너졌던 한국영화의 기반이 회복됐냐는 말이다. 화려한 숫자들만 보면 한국영화계는 정상화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포스트 2006년 신드롬’을 생각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당시 많은 젊은 스탭들과 재능있는 작가들이 영화계를 빠져나갔다. 자본을 쥐고 있는 진영의 권력은 막강해졌고 창조력을 발휘하는 진영의 힘은 쪼그라들었다. 문제는 지금도 똑같은 상황이라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세컨드, 서드 스탭 구하기가 어렵고 임금 수준도 여전히 낮다. 한 촬영감독에 따르면 촬영할 때 포커스를 책임지는 포커스 풀러가 사라지고 있단다. 이 젊은 인력들이 한국영화의 미래라는 점을 생각하면 갑갑한 노릇이다. 자본과 창작 진영의 역관계는 말할 것도 없다. 과거 충무로의 담론을 이끌던 영화인회의나 한국영화제작가협회의 파워는 몰라보게 작아졌다. 그렇다면 영화진흥위원회는? 존재감이 거의 없다. 매일매일 화려하게 경신되는 한국영화의 숫자놀음이 그리 즐겁지만 않은 건 그 때문이다.
PS. 새 식구를 맞았다. 2009년 <씨네21> 영화평론상 수상자인 송경원이 취재기자로 일하게 된다. 영화뿐 아니라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등에 관심이 많은 성향이니 전문성과 유연성을 두루 갖춘 셈이다. 앞으로 그의 활약에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