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자가 보면, 제대 뒤 첫 작품이니 굉장히 노심초사하고 고심한 것 같잖아요? 그냥 모든 게 잘 맞아떨어졌어요. 로케이션도 가까운 편이고, 제작기간도 짧고, 한 공간에서만 사건이 일어나는 거라 (연기) 감 익히기에도 좋을 것 같고, 새로운 장르에 안 해본 캐릭터고.” 물론 홍콩 여행 중에 접한 <두개의 달> 시나리오는 여행을 방해할 정도로 흥미로웠고, 2년 동안 못한 연기를 다시 하려니 현장에선 가슴이 벅찰 정도로 행복했다. 김지석은 솔직했다. 그리고 청산유수였다. 군대에서 대화의 기술이라도 연마한 건지, 그의 얘기는 청자를 춤추게 했다. 김지석은 말하길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리액션이 좋은 대화 상대였다.
게스트와 호스트 자리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김지석의 대화법은 그의 연기와도 닮아 있다. <두개의 달>에서 김지석이 맡은 대학생 석호는 소희와 인정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중심추 역할을 한다. 영문도 모른 채 숲속 낯선 집의 지하실에서 눈을 뜨는 세 사람은 각자의 성격대로 돌파구를 찾으려 한다. 그중 석호는 인정의 까탈스런 투정과 소희의 미심쩍은 제안을 모두 받아내면서 상황에 적절히 녹아드는 인물이다. 한편으로 석호는 지나치게 평범해 보이기도 한다. “세상의 모든 남자를 대변하는 한 사람으로 캐릭터의 큰 틀을 잡았어요. 진짜 평범한 대학생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죠. 그런데 평범한 게 제일 힘든 거 아세요? 드라마, 영화에 나오는 평범한 실장님 연기가 실은 무척 어려운 거예요.” 그렇다고 김지석의 연기가 처음부터 끝까지 맹물 같은 건 아니다. 영화의 중·후반, 석호는 자신을 둘러싼 상황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격렬히 분노한다. 눈을 희번덕거리고 여배우에게 쌍욕을 날린다. 이 모든 연기가 김지석에겐 첫 경험이었다. “친근하고 잘 웃고 어수룩한 캐릭터가 아닌 강렬한 캐릭터에 대한 갈망”이 늘 김지석의 가슴 한구석에 존재했다. 드라마 <일단 뛰어> <미우나 고우나> <개인의 취향>과 영화 <아빠가 여자를 좋아해> 등 전작들이 증명하듯 그간 김지석은 로맨틱코미디나 말랑말랑한 드라마에서 밝고 건강한 이미지를 쌓아왔다. <국가대표>의 칠구나 드라마 <추노>의 왕손이 정도가 예외일 거다.
게다가 <두개의 달>에선 청일점이었다. “좋았을 것 같죠? 다른 남자배우들이 보면 부러워할 상황이죠. 그런데 동시에 외로웠어요. 전 남자배우들이랑 작품을 많이 했거든요. <추노> <국가대표> 보세요. 얼마 전까지도 군대에 있었고. 그러다보니 여배우들과 함께하는 게 오히려 어색하더라고요.” 박진주는 “지석 오빠가 자상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현장에서 자신을 여러모로 챙겨줘 매우 고마웠다”고 했다. 그 얘기를 대신 전하니 김지석은 진지하게 “진주는 저한테 밥 한번 사야 해요”라고 받았다. 사실 김지석은 자신이 뭐 대단한 선배라고 후배를 가르치고 챙기겠냐며, 그런 게 다 “꼴값”이라 말했다. “제가 그럴 위치는 아니죠. 그리고 열정만큼 안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진짜 답답한데, 옆에서 누가 툭 건드려주기만 하면 되거든요. 제가 신인 때도 선배들이 그렇게 해주셨고요. 그리고 전 자상한 사람이지만 자상해 보이는 걸 싫어하는 거예요. (웃음)”
3월에 제대하자마자 영화 한편을 뚝딱 찍은 김지석은 현재 tvN 드라마 <로맨스가 필요해 2012>에 출연 중이다. <두개의 달>을 포함해 그동안 “비주얼을 포기”한 캐릭터만 주로 맡았는데 이번 드라마에선 작정하고 멋있는 인물, 신지훈을 연기한다. “로맨스가 흥건한 작품을 해본 적이 없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팅돼 있는 캐릭터를 해본 적이 없었어요.” 김지석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장르,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하고 있었다. 그 열정은 쉽게 식지 않을 것 같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게 되어 있다고 믿는 김지석은 속도로 경쟁하는 삶이 아니라 밀도있게 내실을 다지는 삶을 꿈꾸는 배우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