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중순이 돼도 여름이 올 기미가 보이지 않던 영국 런던에 드디어 여름이 왔다. 이와 함께 밤 9시가 다 되어야 해가 지는 여름을 가진 런던의 영화광들을 위한 특별한 행사인 ‘루프톱 필름 클럽’의 인기도 점점 치솟고 있다. ‘루프톱 필름 클럽’은 야외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통해 고전부터 컬트, 액션,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이벤트로, 매년 5월경 시작해 8월 말까지 지속된다. 올해에는 런던의 젊은 아티스트들이 즐겨 찾는 런던 동부, 쇼디치에 위치한 바 ‘퀸 오브 혹스톤’ 옥상에서 열리고 있다. 6월 중순까지는 날씨가 쌀쌀하고 흐리고 비오는 날이 많아 ‘퀸 오브 혹스톤’을 찾는 영화광이 드물었으나, 날씨가 갑자기 좋아진 이후부터는 연일 매진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상영되는 영화의 장르는 다양하다. 마틴 스코시즈의 <택시 드라이버>를 비롯해 <토요일밤의 열기> 등의 1970년대 화제작과 <탑 건> <브리짓 존스의 일기> <나쁜 녀석들> <터미네이터> 등의 인기작,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인생은 아름다워> 등이 그것. 이미 한번쯤은 극장이나 TV 브라운관을 통해 관람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지만 이곳을 찾은 많은 이들은 상쾌한 여름밤, 아래층 바에서 막 튀겨낸 ‘피시 앤드 칩스’와 함께 야외에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의 매력에 대해 입을 모아 칭찬했다. 야외 상영이기 때문에 극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최고급 사양의 무선 헤드폰이 개별로 지급되기 때문에 오히려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것이 야외 상영장을 찾은 이들이 공통으로 전하는 장점이다. ‘루프톱 필름 클럽’의 프로그래머 중 한명인 게리 코틀 주니어는 “8월 말까지 티켓이 거의 대부분 매진된 상태”라며 “어둡고 칙칙한 일반 극장이 아닌 조금은 차가운 여름밤의 신선한 공기와 함께하는 영화 관람에 많은 이들이 열광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6월30일에는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1976년작 <택시 드라이버> 상영이 있었다. 영화가 다소 늦은 밤인 9시경에 시작되었음에도 야외 상영장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이날 상영장을 찾은 화학 선생님, 엘레니 피트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극장보다 몰입도 높다”
루프톱 필름 클럽 관객 인터뷰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사립학교에서 화학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방과 후 활동으로 영화촬영 수업도 진행하고 있다.
-‘루프톱 필름 클럽’에 참여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사실 영화 보기는 좋아하는데 극장은 좋아하지 않는다. 어두운 곳에 모여서 영화를 보는 것이 나에게는 별로 매력적이지 않다고 해야 할까. 30분씩 나오는 광고도 너무 지루하고. 영화를 특별하게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지난해에 ‘루프톱 필름 클럽’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야외 상영이라 아무래도 극장보다는 영화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질 것 같다. =헤드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다. 극장에서는 옆 사람의 팝콘 먹는 소리, 음료 마시는 소리 등으로 은근히 신경이 쓰였는데 이곳에서는 이 헤드폰을 통해 영화에서 나오는 소리를 좀더 집중해서 들을 수 있어 오히려 극장보다 몰입도가 높은 것 같다.
-오늘 상영작에 대해 한마디 해달라. =한마디만? 마틴 스코시즈의 수작 <택시 드라이버>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다. 어쩐지 씁쓸하기도 하고, 보고 나면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리기도 하는데, 볼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는 정말 특별한 작품 같다. 나는 1980년대에 태어나서 이 작품을 극장에서 보지 못했다. 이 작품이 ‘루프톱 필름 클럽’ 행사의 일환으로 상영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기뻤다! 그래서 영화 리스트가 공개된 지난 5월에 바로 예매했다! 일주일쯤 지나서 보니 벌써 매진됐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