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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상 우혜경의 이론비평 요약문

오즈의 빈자리에 어떻게 앉을 것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론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걸어도 걸어도>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인 가족들의 기념촬영은 사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도 빈번히 등장하는 ‘사건’이다. 그런데 고레에다의 가족 사진은 이미 떠나간 가족을 찍은 반면에 오즈의 가족 사진은 이제 떠나갈 가족을 찍은 것이어서 고레에다의 가족 사진은 마치 오즈의 영화 이후를 찍은 사진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고레에다의 영화는 오즈가 멈추었던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레에다는 1995년 <환상의 빛>을 시작으로 2011년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하 <기적>)까지 총 8편의 장편을 만들었는데, 데뷔작 <환상의 빛>이 플래시백으로 시작한다는 점과 2004년 <아무도 모른다>를 기준으로 이후 4편의 영화에서는 플래시백이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초기작 세편에서 그의 관심의 대상은 바로 이 ‘상실 이후 살아남은 자’들이다. 이때 플래시백은 산 자들이 죽은 자들을 각자의 방식으로 불러내 마지막으로 기억한 뒤 자신과 분리하여 떠나보내는 애도의 과정이 된다. 남아 있는 사람들이 그 과정을 통해 비로소 사라진 이들의 빈자리, 결핍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아무도 모른다>는 그런 의미에서 고레에다의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영화다. 이 영화에서 관객의 마음을 가장 많이 움직이는 것은 4명의 아이들이 엄마가 떠나가는 과정을 반복해서 연습할 때다. 그 연습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어느 순간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고레에다의 전작들에서와 달리 이 영화에서는 연습 이후 ‘실전’(實戰)이 시작된다. 큰아들 아키라는 이제 장을 보고 음식을 하며 동생들을 돌보는 가장의 ‘역할’을 대신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해도 엄마의 빈자리는 채울 수 없다. 결핍은 어떻게 해도 채워지지 않는다.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사무라이가 죽은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 하는 것(<하나>), 남자들의 성적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만들어진 인형이 그들과 섹스를 해야 하는 것(<공기인형>), 산타클로스도 없고 기적도 일어나지 않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기적>)도 마찬가지다. 결핍을 채운다는 것은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이때 <기적>은 고레에다가 내린 (중간) 결론 같은 영화처럼 보인다.

<아무도 모른다>

주인공 형제의 엄마, 아빠가 함께 사는 일은 왜 ‘기적’이 되어버렸을까? (다시) 돌아갈 자리가 없기 때문은 아닐까? ‘쓸데없는 것들을 위한 자리’가 점점 사라지면서 인디밴드 뮤지션인 아빠와 친정에 내려와 마트에서 일하는 엄마가 함께 사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가고시마에서 평생을 살아온 할아버지는 신칸센이 새로 놓이고 동네가 개발되면 자신이 ‘쓸데없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루칸 떡을 만들어 팔아보려 하지만 예전의 그 맛은 나지 않는다. 어쩌면 결국 이 가족은 점점 더 변두리로 밀려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들이 함께 사는 건 정말 ‘기적’이 되어가는 중이다. 말하자면 이 영화에서 전제하고 있는 (형제가 함께 살지 못하게 된) ‘사건’은 애도하며 떠나보낼 수 있는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이들에게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는 현재진행형의 ‘살아 있는 화산’과 같다. 즉, <아무도 모른다> 이후 플래시백이 사라진 것은 고레에다가 사건 ‘이후’의 여파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이미 영화에 등장하는 그 여파들이 거꾸로 ‘사건’에 대해 더 잘 보여주는 단면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쩌면 다큐멘터리 작업을 해온 그가 극영화로 다큐의 ‘정신’을 이어가는 방식인 것 같다. ‘완벽한 허구를 통해서도 리얼리티를 보여줄 수 있다’는 그의 믿음이 그를 결국 ‘오즈 이후’의 자리로 향하게 한 것이 아닐까?

전쟁 전후를 모두 겪으며 영화를 만들었던 오즈는 끝까지 자신의 영화에서 거의 어떠한 전쟁의 흔적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당시 오즈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건 그런 상처를 잊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면, 고레에다는 이제는 그 상처를 다시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상처받은 이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함께 고민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마찬가지로 고레에다도 오즈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즈의 빈자리를 인정하고 자신만의 영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상실의 시대에 서 있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이라고 고레에다는 생각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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